우리는 영화속에서 단종의 눈빛과 세조의 침묵을 따라 걸었다. 이제 조선의 역사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세종의 이상은 문종에서 멈추었는가. 왜 단종의 유배지는 하필 청령포였는가. 그리고 세조는 왜 풍수를 거슬러, 혹은 이용하여 자신의 왕조를 완성하려 했는가.
영화 속 첫 장면 가운데 하나는 세조의 얼굴이다. 붉은 전투복을 입고 칼을 쥔 채 말 위에 오른 수양대군. 그의 눈은 결연하다.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그 눈빛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스친다. 왕위는 칼로 잡을 수 있어도, 정통성은 칼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종대왕의 이상은 장남 문종에게 온전히 이어지지 못했다. 문종은 병약했고, 통치 기간은 짧았다.
영화는 문종의 죽음을 짧게 처리한다. 그러나 역사의 카메라는 능지 선정 장면을 길게 비춘다. 태종과 세종의 능역 인근, 헌인릉 부근에 처음 자리를 정했다가 광중에서 물이 솟는다. 물은 생명의 상징이지만, 묘지에서는 흉조로 해석된다. 돌이 나오는 장면은 더욱 상징적이다. 역사의 카메라는 물과 돌을 비추고, 세조의 얼굴을 교차 편집한다. 침묵. 그리고 결단.
문종은 결국 구리 동구릉의 현릉으로 옮겨진다.
문종의 왕후 현덕왕후는 더 기구하다. 세조는 경기도 안산 바닷가에 능을 썼다. 훗날 세조는 소릉을 파헤치기 까지한다. 시신은 훼손되고, 한참 지나서야 동구릉에서 문종과 합장된다. 그 합장 구조는 다소 이질적이다. 현릉은 그 불균형을 길게 보여준다. 봉분의 위치, 석물의 배열, 그리고 묘역의 기울기를 통해 균열을 암시한다.
자연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단종. 어린 왕의 얼굴은 청령포의 바람과 함께 등장한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편에는 험한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싼 지형. 카메라는 드론으로 청령포를 돌며 위에서 내려다본다. 하늘만 열려 있고 사방은 막혀 있다. 물 감옥이자 산 감옥이다. 전통 풍수에서 말하는 ‘산수수류’, 산은 가두고 물은 흘러나간다. 풍수지리학자인 김두규 우석대 명예교수는 "왕은 포로가 되고 제후는 망한다는 형국"이라고 단언한다.
왜 청령포였는가. 영화는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면은 대답한다. 세조는 단종을 정치적으로만 제거하지 않았다. 공간적으로도 고립시켰다. 자연의 형세를 이용하여 정통의 맥을 차단하려 했다. 청령포의 밤, 어린 왕이 별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점이다. 바람은 차고 물은 흐른다. 그러나 단종의 시선은 하늘을 향한다. 인간은 갇혀도 하늘은 막을 수 없다.
세조는 경기도 남양주시 광릉에 묻혀 있다. 울창한 숲이 감싸고, 사방은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는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질까 염려하여 능역을 엄격히 보호하게 했는가. 권력자는 죽어서도 불안을 놓지 못한다. 역사는 광릉의 깊은 숲길을 따라 카메라를 천천히 이동시킨다. 적막. 새소리. 그리고 역사의 자막 한 줄.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의경세자의 경릉, 예종,성종으로 이어진 혈맥. 결국 조선은 세조의 계통으로 이어졌다. 역사적 결과는 냉정하다. 그러나 영화는 묻는다. 성공은 정의인가. 풍수를 거슬러 얻은 권력은 과연 하늘과 자연의 인정을 받았는가.
단종의 부인은 남양주 사릉에 홀로 묻혀 있다. 남편과 떨어져 눈길이 닿을 수 없는 거리. 그 고독한 능역을 비추는 장면에서 역사의 카메라는 말을 멈춘다. 부부가 합장되지 못한 왕릉의 역사.
세조는 단종을 청령포로 보내고 왕후를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역사는 오래 기억한다. 숙종 때 이르러 단종의 묘는 장릉이 되고, 왕후의 묘는 사릉이 된다.
그는 무인적 기질과 학문적 식견을 겸비했다. 풍수를 공부했고, 국토의 형세를 읽었다. 그러나 풍수는 산천의 이치를 따르는 학문이지, 인간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산과 강을 비춘다.
세종의 영릉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문종의 동구릉은 균형을 회복하려는 듯 단정하다. 청령포는 고립되고, 광릉은 울창하되 폐쇄적이다. 공간은 인물의 성정을 닮는다.
세종의 이상은 왜 이루어지지 못했는가. 문종의 병약함 때문만은 아니다. 권력의 승계는 혈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하의 마음, 시대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얽힌다. 세조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역풍수라 부르든, 정치적 결단이라 부르든, 그는 공간을 재배치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청령포의 물결을 다시 비춘다. 물은 흘러간다. 세월도 흐른다. 단종은 영월 청령포인근의 장릉에 묻혀 있다.지역의 길지중 길지라고 한다. 시간이 흐른 뒤 복권되었다. 역사에는 지연된 정의가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이렇게 결론에 이른다. 권력은 공간을 장악하지만, 자연은 끝내 균형을 찾는다. 인간의 야심은 산천을 흔들 수 있으나, 산천의 질서는 오래 남는다. 세조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묻는다. 그는 승자였는가. 아니면 자연 앞에서 끝내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한 인간이었는가.
왕은 산을 옮길 수 없다. 다만 산을 해석할 뿐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결국 역사라는 큰 산맥 속에서 다시 평가된다. 청령포의 바람은 지금도 분다. 그 바람은 묻는다.
왜 청령포와 장릉에 사람들이 몰리는가? 그리고 단종비인 정순왕후의 사릉이 뒤늦게 뜨거운 관심과 조명을 받는가?
동구릉과 사릉인근의 세조 광릉은 왜 적막강산인가?
역사의 신과 종교의 신, 하늘과 자연은 모두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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