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경영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모래 위에서 꽃피운 정주영의 도전정신 : 정의선의 No.1 휴머노이드 로봇, 새만금서 이어진다

“이봐, 해봤어?”

한국 기업사에서 이 문장만큼 시대의 공기를 바꾼 말이 또 있었을까. 정주영은 ‘가능’을 말로 증명한 사람이 아니라, 불가능의 현장에 몸을 던져 ‘가능’이라는 단어를 새로 쓰게 만든 사람이었다. 조선소가 서기엔 너무 허허롭던 백사장에 세계가 놀란 계약서를 얹고, 빈손에 가까운 나라의 자신감부터 공장처럼 찍어냈다. 그에게 경영은 책상 위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배짱과 국가의 운명을 동시에 움직이는 “개척의 기술”이었다.


그 정주영을 추모하는 음악회에서 정의선이 다시 한 번 ‘사람’의 언어로 조부를 불러냈다. 그는 “할아버지의 신념과 모든 도전은 사람에서 시작됐다”고 말하며, “뭘 망설여, 해 봐!”라는 정주영식 대답을 오늘의 청중 앞에 되살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이어지는 울림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기아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 이어지는 울림'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추모가 과거를 기리는 일에 그친다면, 그것은 박물관의 정서로 끝난다. 그러나 정의선의 말은 달랐다. ‘울림’은 회고가 아니라 다음 발걸음의 리듬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쩌면 M&A의 유혹에 너무 쉽게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합병과 인수는 효율을 높이고 규모를 키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새로운 땅’을 만들지 못한다.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이 빛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는 ‘남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사는 데 돈을 쓰기보다, 길 자체를 새로 내는 데 인생을 걸었다. 창업은 단지 회사를 여는 행위가 아니라, 시장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개척은 더더욱 그렇다. 모래밭에서 꽃을 피우는 일은, 숫자와 계약서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믿음, 집념,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제 그 개척의 무대가 새만금으로 옮겨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북 새만금에서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현대차그룹의 AI 데이터센터 설립과 로봇 제조공장 구축 등을 “호남권 전체의 경제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며 환영했다. 


나아가 새만금을 “누구나 일상에서 로봇을 편리하게 사용하는 미래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기업이 지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규제와 행정 지원의 문턱을 파격적으로 낮추겠다”고도 약속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봐야 한다. 첫째, 정의선의 선택은 단지 ‘투자’가 아니라 ‘방향’이다. 둘째, 정부의 언어가 단지 ‘환영’에 머물지 않고 ‘실행’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북은 오랜 시간 “삼중 소외”라는 표현으로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왔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영남·호남의 역사적 갈림, 그리고 호남 내부에서조차 전북이 소외된다는 체감…. 이재명 대통령은 전북 타운홀미팅에서 그 정서를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인정하며 “전북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균형발전은 “시혜적 배려가 아닌 국가 생존전략”이라고도 했다. 


이 말이 진짜가 되려면, 균형발전은 ‘캠페인’이 아니라 ‘산업의 주소지’로 증명돼야 한다. 주소지가 바뀌어야 사람의 흐름이 바뀌고, 사람의 흐름이 바뀌어야 도시의 운명이 달라진다.


새만금은 그 주소지를 바꿀 수 있는 드문 공간이다. 넓은 부지와 신산업 실증의 여지, 에너지 전환의 잠재력,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새로 설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정주영식 개척의 문법은 늘 ‘빈 땅’에서 강했다. 이미 복잡하게 얽힌 규제와 이해관계가 촘촘한 곳에서는, 도전이 속도를 잃기 쉽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은—사실은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곳이다. 


정주영이 그랬다. 백사장은 모래뿐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조선소가 서 있었다. 오늘 새만금이 바로 그런 시험대다.


다만 여기에서 경고도 함께 적어야 한다. “지원”이란 말이 지역에서 가장 자주 오해되는 단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원은 특혜가 아니다. 지원은 ‘국가전략의 비용’이며, 미래 산업이 뿌리내리기 위한 인프라 투자다. 기업이 지역에 내려오면, 단지 공장 하나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협력사, 연구기관, 인재교육, 주거와 문화, 그리고 가족의 삶이 함께 이동한다. 그러니 전북과 정부가 “화끈한 지원”으로 답해야 한다는 말의 뜻은 분명하다. 과감하되 투명해야 하고, 빠르되 공정해야 한다. 행정은 친절해야 하고, 규정은 명료해야 한다. 


기업이 ‘불안해서 못 간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말한 “문턱을 파격적으로 낮추겠다”는 약속은, 문턱을 낮춘 뒤 책임의 기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구현돼야 한다. 


정의선의 선택 역시 ‘정주영 정신’의 복원이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복원은 향수다. 필요한 것은 진화다. 정주영이 개척한 시대는 ‘제조의 시대’였고, 정의선이 마주한 시대는 ‘지능의 시대’다.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데이터센터와 결합해 학습하고, 물류와 산업 현장에서 인간의 위험을 덜어주며, 나아가 고령사회에서 돌봄의 빈틈까지 메우는 기술이 된다.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공장에서 양산된 로봇이 AI 데이터센터와 연동돼 “끊임없이 학습”하는 산업 구조가 새만금에 안착한다면, 전북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경제의 오래된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왜 정주영 같은 경영인이 다시 나오기 어려운가.” 답은 한 줄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시대의 기업가정신은 개인의 기질만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업가정신은 국가의 규제 철학, 금융의 위험 감수, 지역의 수용성, 교육의 실용성, 사회의 존중이 함께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산물이다. 정주영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비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시대가 ‘개척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오늘 한국은 다시 개척을 요구받고 있다. 다만 이번 개척은 해외 공사판이 아니라, 국내의 지역 격차와 산업 전환의 현장이다. 수도권이 미어터지고 지방이 소멸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국가는 경쟁력을 잃는다. 대통령이 “국가 생존전략”이라고 말한 균형발전의 무게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이제 공은 정부와 전북으로 넘어간다. 기업이 결단을 내렸다면, 공공은 실행으로 답해야 한다.

첫째, 규제특례는 ‘선언’이 아니라 ‘원스톱 체계’로 구현돼야 한다.

둘째, 전력·용수·통신·물류 등 산업 인프라를 시간표로 못 박아야 한다.

셋째, 인재를 붙잡을 교육·주거·문화의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젊은 사람이 머무는 도시” 없이 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넷째, 지역의 이익이 지역민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대기업의 공장만 들어오고, 지역의 중소기업과 청년이 주변부로 밀려나면 ‘균형’은 또 다른 불균형이 된다.


정주영이 남긴 유산은 “대단한 회사”가 아니라 “대단한 방향”이다. 정의선이 이어야 할 것도 그 방향이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기술을 사람에게 돌려주며, 산업의 지도를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전북이 붙잡아야 할 것도 그 방향이다. 이제 전북은 소외를 말하는 지역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지역이 될 수 있다. 새만금이 그 전환의 무대라면, 오늘 필요한 것은 박수보다 설계도다. 환영보다 공정표다. 그리고 말보다 실행이다.


모래 위에 꽃을 피우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한 번 피면, 그 꽃은 ‘모래가 아니라 땅’이 된다. 정주영이 그랬고, 이제 정의선이 새만금에서 그 길을 잇겠다고 한다. 


정부와 전북은 그 도전을 ‘구경’할 것이 아니라, ‘동반’해야 한다. 정의선의 도전에 가능한 모든 것을 지원해야한다.그때 비로소, 균형발전은 미래 세대의 희망 좌표가 되고, 5200만을 하나로 묶는 한민족 서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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