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이는 양국 내부 문제를 넘어 동아시아와 동남아 질서 전반에 파급력을 미친다.
태국: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태국은 이날 하원 500석(지역구 400석, 비례대표 100석)을 뽑는 총선을 실시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총리가 세 차례나 교체되며 정치 혼란을 겪어온 태국으로서는, 이번 선거가 체제 불안의 고리를 끊을 분수령으로 여겨졌다.
보수 진영의 핵심 인물인 현 총리 아누틴 찬위라꾼이 이끄는 품짜이타이당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협상력과 기득권 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프아타이당 역시 탁신 친나왓 전 총리 가문의 정치적 유산을 등에 업고 ‘킹메이커’ 역할을 노리고 있다.
이번 총선의 또 다른 변수는 헌법 개정 국민투표다. 2017년 군부 주도로 제정된 헌법을 바꿀 것인지를 묻는 이번 투표는 태국 정치 구조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찬성이 나오더라도 추가 국민투표와 장기 절차를 거쳐야 하며,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치 불확실성의 장기화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문제는 경제다. 태국의 성장률은 2%대 초반에 머물고 있고, 가계부채와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정치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질 경우 투자·관광·제조업을 축으로 한 국가 경쟁력 회복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태국 선거의 본질은 ‘누가 이기느냐’보다 ‘이긴 쪽이 실제로 통치할 수 있느냐’에 있다.
일본: 승리의 크기가 곧 국정 동력이다
같은 날 일본에서는 눈 속에서 중의원 총선이 치러졌다. 총 의석 465석(소선거구 289석, 비례대표 176석)을 놓고 진행된 이번 선거는, 지난해 10월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중의원을 전격 해산하며 치른 ‘신임 재확인’ 성격의 승부였다.
일본 선거의 특징은 결과가 비교적 명확하게 권력 구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집권 연합이 과반을 확보하면 내각은 안정적 기반을 얻고, 정책은 속도를 낸다. 여론조사와 주요 언론 전망에 따르면 자민당과 연정 파트너는 약 300석 안팎을 노릴 수 있는 구도다.
관건은 ‘얼마나 크게 이기느냐’다. 261석을 넘기면 상임위원회를 장악할 수 있고, 310석에 근접하면 입법 저지선도 상당 부분 무력화된다. 큰 승리는 곧 강한 국정 드라이브로 이어진다.
다만 대가는 따른다. 다카이치 총리가 내건 식료품 소비세 한시 중단과 적극 재정 정책은 단기적으로 민생에 호소력이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 경제에는 부담 요인이다. 국채금리와 엔화 변동성은 선거 이후 곧바로 시장의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방위비 증액, 대중 견제 강화, 헌법 개정 논의 재점화 등 보수적 노선이 탄력을 받을 경우 동북아 안보 구도는 더욱 경직될 수 있다. 이는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중 갈등의 압력을 한국에 전이시키는 이중적 효과를 낳는다.
아시아 정치의 두 모델
이번 두 선거는 아시아 정치의 두 가지 모델을 상징한다.
일본은 “선거 → 권력 안정 → 정책 집행”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직선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정권의 성패는 유권자의 판단에 의해 비교적 명확히 결정된다. 반면 태국은 “선거 → 연정·사법·제도 검증 → 집권 여부 재확인”이라는 우회로를 거친다. 민주적 정당성과 실질적 통치권 사이에 구조적 간극이 존재한다.
이 차이는 경제에도 직결된다. 일본은 정책의 ‘내용’이 시장을 흔들고, 태국은 정책의 ‘가능성’ 자체가 투자 판단을 좌우한다. 정치 제도의 신뢰도가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태국의 불안정성은 동남아 전체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이고 일본의 정책 가속은 동북아 금융·안보 변동성을 키운다.
한국에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다. 정치가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느냐가 관건이다.
태국이 다시 연정 갈등과 제도 충돌에 빠질 경우 동남아 공급망과 투자 환경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일본이 강한 승리를 바탕으로 재정·안보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환율·금리·외교 환경의 변동성은 커진다.
한국은 이 두 흐름 속에서 외교·안보 리스크 관리, 공급망 다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제도적 신뢰 유지라는 과제를 동시에 떠안고 있다.
선거는 하루로 끝나지만, 통치의 질은 수년간 국가의 방향을 좌우한다. 2월 8일 태국과 일본의 투표는 아시아가 이제 ‘성장 경쟁’에서 ‘통치 경쟁’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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