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BTS아리랑에서 K-헤리티지 글로벌로]② 전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호출되지 않을 뿐이다

전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불리지 않을 뿐이다.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것은 기록 속에, 기억의 바닥에, 반복되는 감정의 리듬 속에 남아 있다. 문제는 존재 여부가 아니라 호출의 방식이다.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그것을 다시 불러내느냐의 문제다.


BTS가 ‘아리랑’을 선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물었다. “왜 하필 지금 아리랑인가.” 그러나 질문은 거꾸로 던져야 한다. “왜 이제야 아리랑이 다시 호출됐는가.”
아리랑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교과서 속에 있었고, 행사장의 배경음악으로 흘렀으며, 지역 축제의 프로그램으로 반복돼 왔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아리랑은 ‘작동’하지 않았다. 전통은 존재했지만, 살아 있지는 않았다.

그래픽지피티
[그래픽=지피티]


전통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는 뜻이 아니다. 원형이 잘 유지돼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살아 있는 전통이란 현재의 언어와 감정 속에서 다시 쓰이고, 다시 해석되며, 각자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전통은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접속의 대상이다.


아리랑은 애초에 완결된 작품이 아니었다. 특정 작곡가도, 하나의 정본도 없다. 지역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달랐다. 이별과 이동, 상실과 재회의 감정이 세대를 건너 반복되며 수천 개의 변주가 쌓였다. 이 유연성 때문에 아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정되지 않았기에 끊어지지 않았다. 전통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순수성’이 아니라 ‘열림’이었다.


문제는 근대 이후의 관리 방식이었다. 우리는 전통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고정시켰다. 정답을 만들고, 원형을 규정했으며, 그 틀을 벗어나는 변주는 오류처럼 다뤘다. 그 결과 전통은 안전해졌지만 멀어졌다. 존중받았지만 사용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라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됐다.


BTS의 ‘아리랑’은 이 흐름을 거꾸로 돌렸다. 그들은 아리랑을 재현하지 않았다. 민요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지도 않았고, 원형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대신 아리랑이 품고 있던 감정의 구조를 현재의 리듬 위에 올렸다. 이별과 연대, 길 위의 반복이라는 정서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작동시켰다. 그 순간 아리랑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이 됐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설명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BTS는 “이 노래는 한국의 전통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문화적 배경을 강의하지도 않았다. 다만 무대 위에 놓았고, 세계는 그 감정을 각자의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호출은 설득이 아니라 개방을 통해 이뤄졌다.


이 장면은 K-헤리티지 논의 전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는 그동안 전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설명을 늘려왔다.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의미, 상징의 유래를 덧붙였다. 물론 필요했던 과정이다. 그러나 설명이 길어질수록 전통은 체험이 아니라 정보가 됐다. 이해는 늘었을지 몰라도, 감정적 접속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세계가 BTS의 ‘아리랑’을 불편해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성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감정의 리듬을 있는 그대로 내놓았다. 해석의 여백을 남겼고, 각자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전통이 작동하는 순간은 그것이 닫힐 때가 아니라 열릴 때다.


이제 질문은 개인이나 한 팀의 선택을 넘어선다. 우리는 전통을 호출할 준비가 돼 있는가. 기록은 충분한가. 호출 이후를 감당할 구조는 있는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콘텐츠 소비가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머물 수 있는 맥락과 시스템은 준비돼 있는가.


‘K-헤리티지’가 관광 상품으로만 소비될 때 힘을 잃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고, 설명을 듣는 경험은 오래 남지 않는다. 반면 감정적으로 접속한 경험은 반복을 낳는다. 다시 듣고, 다시 보고, 다시 찾게 만든다. 전통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바로 이 반복성에 있다.


전통은 유산이기 이전에 운영체제다. 한 사회가 감정을 처리하고, 상처를 기억하며, 공동체를 이어온 방식의 집합이다. 이 운영체제가 현재의 언어와 결합할 때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자원이 된다.


BTS의 ‘아리랑’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전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호출되지 않을 뿐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우연처럼 열린 이 호출을 반복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K-헤리티지는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글로벌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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