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사법경찰 인지수사권과 금융지주 지배구조 태스크포스(TF) 등 굵직굵직한 금융권 핵심 현안을 두고 금융위원회가 주도권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를 사실상 이원화하려 했던 새 정부 기조하에서는 어느 정도 예견된 혼선이지만, 금융정책의 최종 컨트롤타워인 금융위의 존재감이 급격히 희미해지면서 사안이 제때 정리되지 못하고 혼란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금감원 특사경에 한정적인 인지수사권을 부여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감원이 설치하는 수사심의위원회에 금융위 인력이 참여할 경우 독립적 운영이 훼손될 수 있는 데다, 감독·정책 권한을 둘러싼 마찰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금감원만 인지수사를 검사 승인 대상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금융위가 추가로 입장을 조정하거나 반론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책 방향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문제의식을 드러낸 만큼, 향후 제도 설계 과정에서도 금융위의 영향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위가 특사경 이슈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배경으로는 여당 등 정치권을 상대로 충분한 논리와 설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 꼽힌다. 금감원은 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이 있어야 금융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도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웠지만, 금융위는 “공권력 남용이 우려된다”는 원칙론적 입장만 반복했다는 평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법체계에 대한 관심이 많은 금감원장은 명확한 메시지를 내놨지만, 금융위는 이를 뛰어넘는 논리와 설득력을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며 “금감원과 달리 공무원 신분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위가 특사경 인지수사권 이슈와 함께 스테이블코인 입법화,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 등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정부 입법안 발의를 목표로 했지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은행 중심 제한과 대주주 규제 등을 둘러싸고 5개월여 동안 한국은행은 물론 국회 여당과의 의견 조율에 실패했다.
업계에서는 “국내에만 적용되는 역차별 규제로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입장을 잇따라 내놨지만, 이를 충분히 반영하기보다 정책실장의 의중이 담긴 법안을 고집했다는 말도 나온다. 금융위는 이날 정책위원회 의장을 통해 정부안을 관철시켰으나, 실무 역할을 맡아온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를 건너뛰면서 반발이 커진 상황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TF에서 받아주지 않으니 정책위 의장에게 직접 가 입장을 전달했고, 국회의원들을 사실상 무시한 셈”이라며 소통 부재를 지적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TF를 둘러싼 대응도 늦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 과정을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뒤 같은 해 12월 초 TF 출범 계획을 공개했다. 이후 대통령이 금융지주사를 겨냥해 ‘부패한 이너서클’이라며 전면 조사를 주문하자, 금융위는 금감원보다 한 달 늦게 TF 합류 준비에 나섰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에 대통령 측근 인사가 거듭 임명되면서 금융위의 영향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에는 금융위와의 관계가 공공기관장 인사로 이어지는 구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예금보험공사나 서민금융진흥원 등 주요 기관장 자리를 대통령 측근들이 맡으면서 금융위의 인사·정책 조율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체계가 계속 흔들릴 경우 정책의 일관성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체계는 금융정책의 한 축인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이 지속되면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금융위가 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분명히 하고 리더십 복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 측은 "특사경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결정했고 설득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라며 "금감원의 과도한 요구를 대부분 차단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한 만큼 주도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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