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다시 관세 리스크에 휩싸였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관세 담판에 나섰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한·미 통상 환경에 불확실성이 더 짙어진 것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 이행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한국산 주요 품목에 대한 상호관세를 현행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대상 품목으로는 자동차, 목재, 의약품 등이 거론된다. 양국 정상이 어렵게 합의했던 관세 인하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다시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내 들면서 국내 기업들에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실제 국내 수출 기업들은 관세를 올해 가장 큰 대외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1000여 개 수출기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40%가량이 미국 관세 인상을 최대 리스크로 꼽았다.
업계에서는 관세 인상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관세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상시화된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계 관계자는 "작년에도 오락가락 관세 정책에 기업들은 대미 물량을 줄이고 다른 지역으로 돌릴지, 현지 생산 비중을 더 늘릴지 생산 포트폴리오를 두고 고민이 컸다"며 "올해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연간 사업계획 수립과 투자 집행 일정이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역대급 호황기에 올라탄 반도체 업계는 딜레마가 더 복잡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인공지능(AI) 서버용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에 힘입어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며 고공 행진 중이다. 다만 미국발 고율 관세 논의가 본격화하면 이들의 장밋빛 시나리오에도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은 이미 중국산 첨단 반도체와 제조장비에 대해 고율 관세와 수출 통제를 동시에 가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일정 수준 이상 부가가치를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한 반도체 제품에 대해서도 추가 관세를 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서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지만 자동차 관세 사례와 같이 합의가 언제든 번복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재계 전반에 퍼진 상황이다.
글로벌 경쟁 구도 역시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은 공격적인 설비투자와 HBM 제품 라인업 확장을 바탕으로 AI용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SK하이닉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중국에선 국가가 직접 키운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수백억 위안 규모를 추가로 조달해 베이징·상하이 등지에서 웨이퍼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가격 공세가 향후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관세 리스크까지 겹친 글로벌 경영 상황에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 메모리 업계로서는 고민이 깊어지는 형국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단기간에 끝날 이슈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상시적인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유사한 압박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시장에선 '25% 관세 폭탄' 위협이 현실화하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정부 예상치인 2%에서 1% 중반까지 내려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미국의 고율 관세가 다시 성장률 하방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와 기업 모두 관세 리스크에 상시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계 관계자는 "국가 간 통상 협상력을 발휘해 기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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