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명동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공짜 점심

  • K-컬처 이후를 견뎌낼 기업가정신을 묻다

독일의 전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피리 소리는 마법이었다. 그가 피리를 불자 마을의 쥐들이 홀린 듯 따라나섰고, 마침내 아이들까지 그 뒤를 쫓아 사라졌다.
2025년 서울 명동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에는 피리 소리 대신 ‘K-컬처’라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아이들 대신 중국인 관광객들이 지갑을 열고 몰려든다.

명동의 한 패션 매장 앞. 아이돌 에스파의 카리나 사진이 걸려 있자 중국인 관광객들이 “에스파”를 연호하며 4만3000원짜리 털모자를 집어 든다. 명동은 다시 붐비고, 상인들의 표정에는 화색이 돈다. 통계상 외국인 관광객 수 역시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외국인 10명 중 8명 이상이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구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외국인 10명 중 8명 이상이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구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겉으로 보면 화려한 부활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라면 이 장면 앞에서 축배 대신 계산기를 꺼내 들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free lunch)”는 냉혹한 시장의 원리 때문이다.

‘제품’은 없고 ‘이미지’만 있는 상권

지금 명동의 호황은 ‘제품의 승리’라기보다 ‘이미지의 승리’에 가깝다. 관광객들은 모자가 따뜻해서가 아니라, 카리나가 썼기 때문에 산다. 구매 동선은 ‘품질 비교’가 아니라 ‘아이돌 → 이미지 → 구매’로 이어진다. 이를 두고 일부는 “소비 동선을 설계했다”고 말하지만, 냉정히 보면 이는 마케팅의 성공이지 산업 경쟁력의 증명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마케팅 자산이 우리 통제 안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상권을 지탱하는 힘은 ‘물건’이 아니라 ‘문화’라는 외부 연료다. 그 연료가 떨어지거나, 피리 소리가 멈추면 어떻게 될까.

명동 매출의 약 70%는 외국인, 특히 중국인 관광객에게서 나온다. 이는 명동이 ‘글로벌 쇼윈도’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부 변수에 상권의 생사가 묶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드(THAAD) 사태와 팬데믹을 통해 외부 의존도가 높은 상권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이미 경험했다. 그럼에도 명동은 내수라는 안전판을 마련하기는커녕, 다시 ‘외국인 올인’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다.

거품이 꺼진 뒤에 남는 것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 거품은 모두 실체 없는 기대가 만든 비극이었다. 지금 명동의 K-컬처 붐이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상품력’보다 ‘이미지’가 앞서 있다는 점에서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도 사실이다.

K-컬처는 엔진이 아니라 스타터 모터다. 시동은 걸어줄 수 있지만, 차를 계속 달리게 하는 것은 결국 엔진—상품 경쟁력이다. 아이돌 사진을 걷어낸 뒤에도 외국인들이 가격을 감수하며 그 물건을 살 것인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명동은 모래 위에 지은 성에 불과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밀물처럼 들어왔다면, 언젠가는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도 온다. 그때 명동에 남는 것이 경쟁력 있는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이 아니라 텅 빈 아이돌 포스터뿐이라면, 그 청구서는 고스란히  상인과 한국 경제가 떠안게 될 것이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약속된 대가를 받지 못하자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러나 명동의 미래가 전설처럼 끝날 필요는 없다. 관건은 K-컬처라는 피리가 울리고 있는 지금, 그 시간과 수익을 자생력에 투자하느냐다. 아이돌 이미지가 끌어온 발걸음을 일회성 구매로 끝내지 않고, 상품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 반복 구매를 만드는 브랜드 신뢰로 연결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외국인 관광객이 만들어준 이 호황은 ‘공짜 점심’이 아니라 선불로 주어진 기회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샴페인이 아니라 재투자다. 문화가 열어준 문 안쪽에서 제품 경쟁력과 내수 연결고리를 차근차근 쌓아 올릴 때, 명동은 유행의 거리에서 위기에 견디는 상권으로 넘어갈 수 있다. 피리 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사람들이 다시 찾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명동이 이번엔 놓쳐서는 안 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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