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미국의 생산성은 왜 뛰었나…AI 앞에서 갈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업가정신이었다

미국 경제가 다시 숫자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분기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전기 대비 연율 기준 4.9% 상승했다. 2년 만의 최고치다. 같은 기간 단위노동비용은 1.9% 감소했다. 생산성은 오르고, 인플레이션 압력은 낮아졌다. 경기 둔화와 고용 냉각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조합이다.

이 수치를 단순한 경기 반등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미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통계에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시장의 공통된 해석은 분명하다. 인공지능(AI)이 노동생산성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현장 역시 이 흐름을 확인시켰다. 전시장의 중심은 더 이상 로봇의 ‘몸’이 아니었다. 판단하고 예측하며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AI의 ‘두뇌’가 전면에 나섰다. 제조·물류·에너지·금융 전반에서 AI는 보조 기술이 아니라 업무 구조를 다시 짜는 전제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기술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기업들이 앞선 이유는 AI 알고리즘의 성능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다. AI를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생산성 재설계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자동화할 것은 과감히 AI에 맡기고, 그 대신 남은 영역에서는 사람의 판단과 책임을 더 분명히 했다. 이 선택의 누적이 노동생산성 4.9%라는 숫자로 돌아왔다.

이 지점에서 한국 경제는 불편한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은 장기간 저성장 국면에 머물러 있다. 잠재성장률은 2% 아래로 내려왔고, 인구 구조상 노동 투입을 더 늘리기도 어렵다. 재정과 통화 정책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결국 남은 해법은 하나다.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문제다.

그럼에도 한국의 AI 논의는 여전히 기술 도입이나 규제, 정부 전략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AI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는 묻지만, AI를 전제로 사업 구조와 조직, 의사결정 방식을 바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적다. 기술은 빠르게 도입되지만, 경영의 중심은 좀처럼 이동하지 않는다. 이 간극이 곧 성장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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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트북LM]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기술은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성과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경영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AI 시대에도 이 문장은 그대로 유효하다. 분석과 예측은 기계가 대신해준다. 그러나 그 분석을 어디까지 신뢰할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는 여전히 기업가의 판단 영역이다. 기술은 선택지를 늘려주지만, 결단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미국 기업들의 공통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AI를 도입하면서도 책임의 위치를 흐리지 않았다. 실패 가능성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지 않았고, 규제가 완비되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대신 “이 선택의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는 전제 아래 조직과 프로세스를 바꿨다. 이것이 기술을 생산성으로 전환시키는 마지막 한 걸음이었다.

반대로 AI를 관망의 이유로 삼는 순간, 기술은 성장의 해법이 되지 못한다. AI는 중립적 도구다. 결단이 없으면 생산성을 높이지도, 성장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 보유 여부가 아니라 기업가정신이 실제로 작동하는가에서 갈린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기업가를 “새로운 결합을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AI는 그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결합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주체는 여전히 기업가다.
미국의 생산성 반등은 AI의 승리가 아니다. AI를 전제로 경영의 구조를 다시 짠 기업가들의 승리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문턱을 넘으려면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AI를 더 논의할 것이 아니라, AI 이후에도 책임을 질 준비가 된 기업가가 얼마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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