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이 25년에 걸친 협상 끝에 자유무역협정(FTA) 문서에 공식 서명했다.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양측은 장기간 교착 상태를 겪어온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 중 하나를 구축하게 될 전망이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메르코수르 사무국은 이날 파라과이 아순시온의 파라과이 중앙은행 대강당에서 EU·메르코수르 FTA 서명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행사는 파라과이 정부가 운영하는 공영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이날 서명식에는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야만두 오르시 우루과이 대통령 등 메르코수르 회원국 정상들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참석했다. 브라질에서는 일찌감치 불참을 예고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대신 마우루 비에이라 외교부 장관이 자리를 대신했다.
메르코수르 정회원 가입 승인을 받은 볼리비아의 로드리게스 파스 대통령과 준회원국인 파나마의 호세 라울 물리노 대통령도 자리를 함께했다.
양측은 이번 FTA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보호무역 기조에 맞서 자유무역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합의라는 점을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겨냥해 "우리는 관세보다 공정한 무역을 선택했으며, 고립보다 생산적인 장기적 파트너십을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이번 협정은 우리의 가치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정치 환경을 헤쳐 나가는 데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데 있어 진정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파 성향의 친미 외교 노선을 취하고 있는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은 "긴장이 고조된 글로벌 환경 속에서 국제 무역을 지지하는 명확한 신호"라고 언급했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밀레이 대통령은 미국 정책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이번 FTA는 메르코수르 창설 이래 최고의 업적"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세이프가드 또는 그와 동등한 효과를 가진 메커니즘의 도입은 협정의 핵심 목표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U와 메르코수르는 1999년 협상을 시작해 2024년 12월 FTA 체결에 합의했다. 그러나 프랑스 등 일부 EU 회원국에서 농산물 분야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농민 시위가 이어지는 등 진통을 겪었고, 합의 1년여 만인 지난 9일에서야 EU 측 최종 승인이 이뤄졌다.
협정이 발효되면 인구 약 7억2000만명, 국내총생산(GDP) 22조 달러(약 3경2400조원·전 세계의 약 30%)를 포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 중 하나가 형성된다. 국제사회에서는 EU가 리튬 등 핵심 광물의 안정적 확보와 함께 자동차를 비롯한 주력 산업의 새로운 수출 동력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르코수르 역시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이라는 거대 소비 시장에 본격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EU와 메르코수르 간 교역 규모는 1110억 유로(약 190조원)에 달했다. EU의 주요 수출 품목은 기계류와 화학 제품, 운송 장비인 반면, 메르코수르의 수출은 농산물과 광물, 목재 펄프, 종이류에 집중돼 있다. AFP통신은 EU가 자동차·와인·치즈 수출에서, 메르코수르는 쇠고기·가금류·설탕·쌀·꿀·대두 수출에서 각각 이점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협정의 최종 발효까지는 유럽의회 승인 등 각국의 비준 절차가 남아 있다.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반대 국가 내 농민들의 반발이 거센 만큼 막판까지 진통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 4개국이 무역 장벽을 철폐하며 1995년 출범한 공동시장이다. 베네수엘라는 2012년 가입했으나 정치·외교적 문제로 현재는 정회원 자격이 박탈됐으며, 최근에는 볼리비아가 새 회원국으로 합류했다.
한편 지난주에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캐나다 총리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찾아 전기차·유채씨 관세 인하에 합의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 바람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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