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게임의 스토리콘텐츠가 영업비밀인가

박성호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성호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한양대]
현재 온라인 게임 회사 두 곳이 분쟁 중이다. 한쪽은 한국 게임 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이고, 다른 한쪽은 그 회사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새로 만든 회사이다.

신생 회사가 만든 게임의 스토리콘텐츠가 대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였다는 것이 분쟁 내용 중 하나다. 법원 1심 판결은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였다. 게임의 스토리콘텐츠를 베꼈다면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저작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고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했다. 지적재산법을 공부하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직감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다.

비유하자면 한쪽은 대형 연예기획사이고, 상대방은 그곳에서 방출된 연예인들이 만든 인디 밴드이다. 인디 밴드의 신곡이 크게 히트를 치자 연예기획사 쪽에서 그 신곡이 저작권 등을 침해하였다고 재판을 걸었다. 그런데 법원이 신곡의 멜로디와 리듬, 하모니 등이 연예기획사의 음악저작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지만 영업비밀을 침해한 것으로는 인정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온라인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 장르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회사에서 배틀로얄 장르 게임을 개발하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데 어느 날 게임을 개발하던 동료들이 내부 규정 위반 혐의로 쫓겨나고 게임 개발마저 중단되었다면, 그리고 장르를 달리하는 극사실주의 밀리터리 1인칭 슈팅 게임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양자택일(take-it-or-leave-it)뿐이다. 일부는 회사에 남았을 것이고 또 일부는 떠났을 것이다. 떠난 사람들이 모여 '엎어진 게임'을 되살리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배틀로얄 장르와는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의 게임을 만들었다면, 그런데 그 게임이 '대박'을 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은 온라인 게임을 잘 모르는 필자가 판결문을 읽고 이리저리 생각해 본 것이다. 그렇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법학자나 변호사, 판사들 중에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젊을수록 그렇다. 그들은 '아이게이머 챌린지'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력자들이다.

그런 게임 덕후들에게 이 사건 분쟁에 대해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인다. 특히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된 것에 대해서는 그 반응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런데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게임의 스토리콘텐츠가 과연 영업비밀인가? 그래서 필자는 올여름 학술지 '정보법학'에 "영업비밀과 저작물의 교차 영역에서 발생하는 쟁점"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1심 판결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영업비밀의 성격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보았다. 지적재산법 학자 한 분은 자기가 아는 한 이러한 유형 구분은 처음 본다고 그 의미를 평가해 줬다.

첫째는 코카콜라 배합비율,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양념비법 같은 것이다. 영업비밀로 유지·관리만 잘하면 영원히 보호된다. 둘째는 영업비밀이 구현된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유통되는 경우 역설계나 역공정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영업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경우이다. 셋째는 패션 디자인이나 영화의 스토리, 온라인 게임의 스토리콘텐츠처럼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유통되는 순간 누구에게나 영업비밀이 밝혀지는 경우이다.

이번 게임 스토리콘텐츠 사건은 셋째 유형이다. 기술정보와 경영정보를 보호하고자 마련된 영업비밀 보호제도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유형이다. 물론 게임에서 스토리는 중요하다. 게임의 서사 구조는 상업적 성패와 직결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SF 소설작가 김보영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영화 '설국열차'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이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1990년대 말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지금처럼 큰 산업이 아니었고 가난한 인디 밴드 같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과거의 인디 밴드는 '봄버맨 사건' 등을 이겨내고 오늘날 메이저 연예기획사로 성장하였다. 현재의 인디 밴드도 이번 사건을 이겨내고 미래의 대형 연예기획사로 탈바꿈하였으면 좋겠다. 예전의 인디 밴드 시절을 되돌아본다면 '사다리 걷어차기' 식으로 현재의 인디 밴드의 성장 발판을 가로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한국 게임 산업에 상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