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이재명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신설하고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대응에 중요한 정부과제를 설정하여 강력한 기후변화 목표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40%로 상향했다. 금년 말까지는 2035년 감축목표를 최종 확정하여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근 구성된 8기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원전·전력 전문가 비중은 줄이고, 기후·탄소중립·재생에너지 분야 전문가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다. 에너지정책 기조가 기후대응과 탄소중립강화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제사회도 파리협정 이후 2050 탄소중립을 공동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고탄소제품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고, 각국은 장기적 온실가스감축 계획을 담은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만들어 이행노력을 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RE100 확산과 투자기관의 감축 연계투자 확대가 공급망 전체의 저탄소화를 요구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이제 중소기업에 저탄소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중소기업의 ESG 경영과 탄소중립 노력은 국가 경쟁력을 지탱하는 핵심이자 신성장동력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가진 절박한 현실이다. 중소기업이 중요한 이유는 고탄소 업종의 중심이자 국가 감축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산업부문에서 중소기업(300인 미만 추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1억800만톤으로 약 31%를 차지하며, 이는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15%에 해당한다. 대기업만으로는 국가적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중소기업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실질적인 감축이 불가능하다.
또한 중소기업은 대·중견기업 대비 배출 상위 업종의 분산도가 크고 구성도 다양하여 대량·분산구조에 적합한 정책설계가 반드시 요구된다. 배출 상위 업종의 업체 수가 중소기업에서는 대부분 2000개를 상회하고, 개별 업체당 평균 배출량은 대·중견기업의 0.3% 수준에 불과해 단위당 감축 효율이 낮다.
10대 고탄소 업종의 배출 원인은 업종별로 상이하고 공정 특성과 에너지 효율, 연료·원료의 조건이 복합적이므로 획일적인 정부 정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업종별 특성에 맞춘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석회 가공업은 공정 특성상 이산화탄소 배출이 필수적이며, 금속 가공업 등 뿌리업종은 많은 전력 사용으로 에너지 효율화가 시급하다. 또한 정치 논리에 따른 급격한 목표 설정 변화 역시 중소기업의 적응을 가로막는 애로사항이다.
결국 이 거대한 국가적 목표의 성공 여부는 우리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참여와 노력에 달려 있다. 이달 초 철강, 화학, 시멘트 등 8개 업종별 협회는 2035 NDC 및 배출권거래제와 관련해 중국발 공급과잉, 관세 인상 등으로 인한 수익성 저하와 경영위기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합리적 목표 설정과 정부 지원을 건의한 바 있다. 중소기업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탄소중립을 단순히 비용이 아닌 'ESG 경영 리스크 관리 및 신성장 동력 확보'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러한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면밀히 검토하여 이들의 '다양한 업종 특성'과 '역량 부족'을 보완하는 맞춤형 인프라 및 인센티브 전략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중소기업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전환할 '중소기업 맞춤형 K-ESG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 고탄소 10대 업종을 대상으로 공정별로 표준화된 저탄소 패키지를 마련하고 인증과 보조금을 연동하여 도입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테스트베드 성과를 국가 표준으로 확산하는 작업을 병행하면 현장 적용성이 크게 높아진다.
둘째, 탄소중립 수준 진단을 제도화하고 감축 성과지표 달성도에 따라 금리와 보조율을 차등화함으로써 데이터 기반의 성과 연동 지원을 구현해야 한다.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과 데이터를 상호 연계해 실시간 감축검증체계를 구축하면 신뢰성과 투명성이 강화된다.
셋째, 금융, 설비, 컨설팅을 삼각형으로 묶어 녹색금융을 설비 투자와 현장 컨설팅에 동시 연계하는 방식으로 ‘자금만 조달되고 기술은 미도입되는’ 문제를 차단해야 하며 CCUS, 전기화, 수소화 등 핵심 설비군에는 장기·저리 금융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공급망 공동플랫폼을 통해 공통기준, 공동교육, 공동구매를 운영하고 RE100 전환을 위한 전력구매계약(PPA)과 재생에너지 신용공유 모델을 도입해 중소기업의 전력원 전환 비용을 낮춰야 한다.
다섯째, 지역 혁신거점은 권역별로 확장하고 앵커 기업의 참여를 촉진해 민간투자를 레버리지하며, 지역특화업종에 맞춘 인프라를 설치해 실질적인 효율을 높여야 한다. 인력과 교육은 현장 중심으로 재설계해 공정별 에너지관리사 양성과 현장 직무교육을 ESG 채널과 통합하고, 작업자에게 ‘보이는 효율화’ 매뉴얼과 성과 공유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실행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여섯째, 탄소중립으로 수익성 저하가 예상되는 업종에는 자금, 세제, 입지로 구성된 전환 패키지를 사전 제시하고, 실패 리스크를 완화하는 부분은 보전하면서 성공보수형 컨설팅을 도입해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ESG 경영과 탄소중립은 공급망의 지속 가능성과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이며, 신성장산업으로 전환을 촉진하는 절호의 기회다. 중소기업의 저탄소화는 국가의 미래이며, 우리는 더 과감하고 더 정교한 지원으로 중소기업의 도약을 뒷받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소기업의 탄소중립은 정부의 ‘일관된 목표 설정’과 ‘맞춤형 지원’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야 한다. 신설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과거의 규제에 익숙한 부처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의 입장에 서서 현실적인 감축목표와 집행계획을 마련하고, 저탄소 투자를 성장의 기회로 만드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진흥 부처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곧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강한 중소기업의 경쟁력에서 나오는 성장을 이끌어 내는 길이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통상교섭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현 충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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