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도 칼럼] 신산업 육성, 官 주도 탈피한 혁신적 접근을

김학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신산업 육성정책, 관(官) 주도 한계를 넘어 지역 혁신으로
 
신산업 육성은 21세기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다. 4차 산업혁명,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등 복합적 변화 속에서 신산업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자 지역균형발전의 동력이다. 이재명 정부는 AI를 축으로 한 신산업 육성 의지를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실에 AI 수석을 신설하고, 첨단기술 전문가들을 내각에 대거 포진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밝힌 “향후 5년은 선도 경제 도약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진단, “제조 강점을 AI와 결합한 AI 주도 성장”이라는 방향성도 설득력 있다. 다만 새 정부의 신산업 육성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 정책의 반복된 오류를 넘어서는 ‘실질적 혁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신산업 육성정책은 김대중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체계화됐다. IMF 외환위기 이후 성장잠재력 확충과 산업구조 고도화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반도체, IT, 바이오, 환경, 에너지 등 미래 유망 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시작됐다. 이후 각 정부는 시대 상황에 따라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신산업 또는 첨단산업 육성 정책을 다양하게 추진했고, 창업과 고용 활성화, 글로벌 진출 지원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ICT 인프라와 창업 환경도 크게 개선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정책이 지나치게 중앙정부 주도로 설계되고 집행되면서 민간의 창의성과 시장의 자율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렸고, 단기적 성과에 치중한 나머지 장기적인 생태계 조성과 인재 양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무엇보다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에 첨단산업이 집중되고, 지역 간 격차는 오히려 심화되는 부작용이 반복되었다.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 지역 기업의 혁신 역량 부족, 창업생태계 미성숙, 투자 및 판로 확보의 어려움 등에 기인한 지방정부와 지역 혁신주체의 소통 부족은 정책 효과의 편차와 지역경제 활성화의 한계로 이어졌다.
 
이제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역대 정부가 남긴 성과와 한계를 냉정히 평가하고 반복된 오류를 넘어서야 한다. 그렇다면 신산업과 지역경제정책의 실질적인 초점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첫째,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지역특화산업을 지정하고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스스로가 산업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촉진·지원하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전국 모든 지역에서 AI, 반도체, 자율주행차를 육성·지원할 수는 없다. 지역별 산업 생태계, 인재, 시장 환경 등 실질적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특화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민간의 창의와 혁신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규제혁신, 투자환경 개선, 네트워크 지원, 민간주도형 R&D 지원 등에 힘써야 한다.
 
둘째, 정부 변화와 무관한 중장기 신산업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인재 양성, 생태계 조성, 기술 개발 등 장기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신산업 육성 로드맵’을 마련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거버넌스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사업의 공모 중심 선정 방식도 재검토해야 한다. 지역의 사전 요건과 특성을 정밀 분석해 선정하되 보다 광역권 중심으로 지원하면서 지방정부 간 인프라 협업을 유도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존 사업에 대한 연속성이나 후속 보완 없이 신규 프로젝트를 공모하는 것은 효율적 자원 배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큰 방향과 자원을 각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게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면 지방정부와 지역 내 혁신 주체들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정책의 큰 틀을 제공하되 지방정부는 지역 실정에 맞는 세부 실행 방안을 마련하고 ‘지·산·학·연(지자체-산업계-학계-연구기관) 협력체계’를 통해 혁신의 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 산업 육성의 성공은 혁신주체 간 실질적 협업과 네트워크 구축에 달려 있다. 앵커 기업과 스타트업의 연계, 산학연 공동연구, 지역 대학의 인재 양성, 지역 연구소의 기술 이전 등 지역 혁신인프라의 실질적 연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지역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과 생태계 조성이 지역균형발전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수도권과 대기업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지역 중소·벤처기업 육성, 지역 대학·연구기관에 대한 맞춤형 R&D, 투자·판로 지원, 지역 인재 양성, 지역 기반 창업 생태계 조성 등 지역의 혁신 역량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지역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인턴십, 해외 투자 유치, 수출 판로 개척 등 글로벌 네트워크와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다섯째, 신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규제혁신을 가속화해야 한다. 단순히 규제샌드박스 확대에 그치지 말고 현장 중심의 규제 발굴, 신속한 규제 개선, 규제 네거티브 도입 등 실질적으로 기업과 창업가가 체감할 수 있는 규제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특화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규제특구, 맞춤형 세제·금융 지원 등 지역별 산업 특성에 맞는 과감한 규제혁신과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여섯째, 인재 양성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역특화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지역산업 맞춤형 인재의 양성 및 정주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다. 지역 대학-기업 연계 인턴십, 직업훈련, 재교육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대학-기업-연구기관 간 산학협력 강화, AI·바이오 등 미래 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 프로그램, 실무 중심의 직업훈련, 지역 청년 창업·취업 지원 등 인재와 고용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신산업 육성정책의 성공은 중앙정부의 자원과 방향성, 지방의 실행력과 현장감각, 그리고 지역 혁신주체의 창의적 역량이 융합될 때 가능하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실행, 현장 중심의 규제혁신, 인재와 네트워크, 글로벌 연계가 어우러질 때 신산업 정책은 국가의 미래와 지역의 성장을 동시에 이끌 수 있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통상교섭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현 충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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