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난항을 겪고 있다고 알려진 한·미 관세 협상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전격 타결되었다. 한·미 정상회의가 열리는 직전까지만 해도 대미 투자와 관련해 한·미 양국의 입장 차가 커서 정상들이 만난다고 해도 타결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특히 우리나라가 약속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액 가운데 현금을 얼마로 할 것인지(현금 투자 비중)를 놓고 양국이 팽팽히 대립해 경제 통상을 제외한 안보 협력 위주의 큰 틀에서 부분 합의마저 거론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과 달리 핵심 쟁점이었던 매년의 투자 상한액이 양국이 그동안 주장해 온 중간선에서 합의점을 찾으면서 협상은 타결로 급선회하였고, 결국 우리 정부의 협상 타결 발표로 이어졌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상호관세 발표 이후 시작된 양국의 관세 협상이 일단락되었다.
한·미 관세 협상의 최종 결과가 조만간 문서로 공개되겠지만 일단 다음과 같은 평가는 가능할 것이다. 우선 그동안 우리 경제의 먹구름이었던 관세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었으며, 대미 핵심 수출품인 자동차도 경쟁국인 일본이나 유럽연합(EU)과 같은 환경에 놓여 그동안의 관세 불이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종전의 한·미 FTA로 인한 무관세 혜택이 사라진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엉망이 된 글로벌 통상질서 속에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핵심 쟁점인 투자와 관련해서는 무난한 결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최근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3500억 달러 전부를 현금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을 고려한다면 현금 투자를 2000억 달러로 막아낸 것은 나름 성과로 볼 수 있다. 특히 매년의 투자 상한액을 200억 달러로 설정하고, 사업의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하게 만들어 우리 외환시장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한 한 점은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이라는 점에서 무난하다고 본다. 다만 최근 한은 총재가 대미 현금 투자 규모와 관련해 150~200억 달러를 언급한 적이 있어 연간 현금 투자 한도를 150억 달러로 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전체적으로 투자 부문은 미국이 일본과 합의한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와 유사한 구조이지만 내용은 일본보다 나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의 대미 투자액 5500억 달러 가운데 현금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임기 종료 직전인 2029년 1월까지 5500억 달러를 투자하되, 미국 대통령이 투자안을 일본에 통보하면 일본은 통보일로부터 45일 이내 해당 자금을 미국이 지정하는 계좌에 이체하게 되어 있어 우리의 10년 이상에 걸친 투자에 비하면 확실히 우리 합의안은 투자의 안정성에서 일본보다 나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일본보다 나중에 협상한 시간의 이점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경제 구조, 특히 외환시장의 취약성을 미국에 적극 설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우리 협상팀의 노고를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이번 한·미 관세 협상 투자 부분 합의를 미국과 EU와의 투자 부분 합의와 비교해 비판할 수도 있다. 특히 EU의 경우는 대미 투자는 민간 기업 중심으로 합의 내용도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EU가 미국과 합의한 투자 합의는 처음부터 EU 민간 기업 주도의 대미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이다. 이에 따라 EU 기업이 2028년까지 미국 내 전략 분야에 60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are expected to invest)고 표현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가 지난 7월 미국과 큰 틀에서 합의한 투자 부문 내용은 일본과 유사하게 정부가 대미 투자를 보증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물론 처음부터 투자는 민간이 주도하는 것으로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미국과 합의를 이룰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한·미 협상 결과와 미-EU와의 합의 내용을 단순히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렇다면 EU가 미국산 농산물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관세도 대폭 낮추었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농업계가 우려했던 쌀, 쇠고기, 대두 등의 대미 추가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평가할 대목이다. 다만 정부가 언급했듯이 수입검역 관련 합의도 추후 합의문서가 공개되면 확인해 볼 부분이다.
이제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합의를 마무리하였으니 남은 과제는 중국과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일이다. 특히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번에 빠른 시일 내 불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 못지않은 우리의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원칙을 세워 대응하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와 함께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기회로 미국과 중국 이외의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이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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