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③ "밋밋한 건축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토마스 헤더윅,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과의 대화

아이디어와 발명에 매료된 한 소년은 어느덧 세계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건축·예술·엔지니어링의 경계를 넘나드는 토머스 헤더윅, 그는 ‘영국의 다빈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종이 위 아이디어가 아닌 ‘만들어진 결과’를 중시하고, 제약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는 그는 24세에 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30년간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질문을 던져왔다. 런던 올림픽 성화대, 영국 파빌리온, 뉴욕 롱샴 플래그십,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까지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도시의 풍경을 바꿔놨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왜 만드는가’, 그리고 ‘건축이 인간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토마스 헤더윅 사진 김호이 기자
토마스 헤더윅 [사진= 김호이 기자]

발명에 매료된 소년, 세계적 디자이너로

“어렸을 때 에드워드·빅토리아 시대 특허집을 들여다보며 발명가들의 꿈에 매료됐어요. 콧수염이 젖지 않는 컵, 차를 따르기 쉬운 주전자 같은 발상이 어린 저에게는 경이로움이었죠.”
그는 11살 때 런던 디자인 센터를 방문한 경험을 전환점으로 꼽는다. 미래 도시 모형, 전기를 쓰지 않는 로봇 팔, 실험적인 가구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혁신의 세계와 마주했다. 이후 디자인과 기술을 배우며 자신감을 키웠고, 21세에는 첫 파빌리온을 완성했다.

“저는 특정 스타일보다 ‘아이디어 그 자체’에 관심이 있습니다. 건축도 발명처럼 직관과 분석, 집중된 사고의 결합으로 보는 거죠.”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을 보며 공예·조각·건축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을 체험한 것도 그의 진로를 결정지었다. 대학 시절 테렌스 콘란 경과의 인연은 독립 스튜디오 설립으로 이어졌고, 이후 그는 국제적 무대에서 ‘만드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건축은 기술이 아니라 질문이다”

헤더윅은 건축을 기술적 성취가 아닌 철학적 질문으로 접근한다. “왜 만드는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건축은 사람을 더 나은 상태로 이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의 눈에 오늘날의 도시는 지나치게 밋밋하다. 반짝이는 유리와 알루미늄 패널로 덮인 획일적 건물은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정신 건강을 해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연의 복잡성 속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건물들은 너무 단조롭죠. 건축은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영양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축, 그것이 인간적인 건축입니다.” 그는 건물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처칠이 ‘우리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고 했듯이, 건축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적 건강, 공동체의 삶에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서울에서 발견한 역동성과 가능성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그는 한국 사회의 에너지와 잠재력에 주목한다.

“서울은 늘 역동적이고 낙관적입니다. 격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잃지 않았죠. 거리 문화, 전통 건축, 한강 재생 프로젝트에서 그 야망을 봤습니다.” 그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영혼 없는 건축을 낳기도 했지만, 동시에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된 도시라고 말한다. “한국은 디지털 혁명의 선구자입니다. 이제 건축과 도시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혁신하는 선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비엔날레를 통해 그는 건축이 단순한 스타일 논쟁을 넘어 “사회적 건강과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대중과 공유하려 한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랑받는 건축을 만들자”

헤더윅은 건축가가 아닌 사회 전체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건물에 무관심하면 건축은 철거됩니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어떤 공간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시민 모두가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는 모든 신축 건물이 일정한 ‘기쁨과 매력’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쁨을 주는 건축은 단순한 미적 쾌락이 아니라, 인간의 연결을 촉진하고 사회적 활력을 불어넣는 필수 조건입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그는 고군분투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건강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죠. 한국 사회는 열려 있고, 변화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희망을 가져도 좋습니다.”

밋밋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건축’을 말하는 헤더윅. 그의 질문은 우리에게 되묻는다. “우리가 정말로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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