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① "건축은 질문이다, 답이 아니다" – 토마스 헤더윅의 철학

아이디어와 발명에 매료된 한 소년은, 어느덧 전 세계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토머스 헤더윅. 그는 건축, 예술, 엔지니어링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국의 다빈치’라 불린다. 종이 위 아이디어보다 실제로 만들어지는 것을 중시하고, 제약을 창조의 재료로 삼는 그는 24살에 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30년간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세상에 질문을 던져왔다. 이 인터뷰는 그의 시작과 철학, 그리고 ‘왜 만드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토마스 헤더윅 사진 김호이 기자
토마스 헤더윅 [사진= 김호이 기자]

24살 때 스튜디오를 오픈했는데 어쩌다가 이 일을 하게 됐나. 이 일을 하기 전 어떤 경험들을 해왔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나
 - 저는 항상 아이디어와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 영국 에드워드 시대와 빅토리아 시대의 특허로 가득 찬 책을 가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는 새로운 종류의 디자인 도면이 수백 장이나 실려 있었는데, 차를 들지 않고도 차를 따를 수 있는 개선된 주전자, 멀리 걷지 않아도 되는 움직이는 포장도로, 콧수염이 젖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컵 등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발명가들의 희망과 꿈이 담겨 있었다. 저는 그들의 순수한 의도와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예술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서 제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제가 11살 때 아버지가 저를 런던의 디자인 센터에 데려가셨다. 안타깝게도 20여 년 전에 문을 닫았지만 그곳은 제가 관심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곳에는 새로운 종류의 전자 뜨개질 기계, 미래 도시의 거대한 모형,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로봇 팔, 아름다운 디자인의 산업 제품, 가구 등 다양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혁신적인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엔지니어링에서 건축, 마스터 플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디자인으로 간주됐다. 학교에서 디자인과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피드백을 통해 용기를 얻고 계속 나아가면서 점점 더 잘하게 되는 긍정적인 강화의 선순환이 일어나곤 한다.

그래서 저는 항상 특정 스타일에 집착하기보다는 아이디어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발명가의 시각을 통해 건축과 디자인을 바라보고 있다. 저에게 디자인은 직관, 합리화, 분석, 집중된 생각의 혼합이다. 저는 이 과정을 항상 흥미롭게 생각했고, 필연적으로 건물, 지역, 심지어 도시와 같이 인간이 발명하는 가장 큰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학위를 받자마자 저는 건축 규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를 방문했을 때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을 본 것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갑자기 공예, 조각, 발명, 건축의 세계가 연결되는 것을 봤다. 학부생이던 21살에 첫 번째 건물을 짓고, 23살에 석사 학위를 졸업하고 두 번째 건물을 지었다. 그 후 24살에 스튜디오를 시작했고, 어느덧 30년이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저는 처음부터 디자인을 민주화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다. 테렌스 콘란 경은 제품 디자인, 주택 디자인, 식품 디자인 분야에 혁명을 일으켰고 심지어 영국 가정에 이불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번은 그가 우리 대학을 방문했을 때 용기를 내서 복도에서 그를 멈춰 세웠더니 “제 사무실로 오세요”라며 명함을 주더라. 저는 그의 사무실에 가서 제 작품을 보여드렸고, 놀랍게도 그는 제가 학생 시절에 지은 두 번째 건물을 짓는 동안 자신의 집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제안했다. 그토록 야심차고 흥미로운 사람의 주변 분위기를 배우고 흡수하고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볼 수 있는 놀라운 기회였다. 이 경험은 졸업 후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고 제 스튜디오를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영국의 다빈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했던 때를 꼽는다면 언제인가

-단 하나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들리겠지만, 제 인생은 항상 지금 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흘러오지 않았나 싶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순간도 없었다. 대신 제 경력은 점차 집중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 수많은 미세한 순간들로 이루어진 발전적인 과정이었다.

제가 꼽을 수 있는 순간은 많다. 맨체스터 폴리테크닉에서의 마지막 학위 전시회는 학부생이 실제 건물을 지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큰 성취감을 느꼈다. 저는 파빌리온을 만들었고, 그 후 30년 동안 조각 공원에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런던에 있는 제 스튜디오에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을 격려하고 도발하기 위해 전시하고 있다. 이 건물을 짓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교훈을 얻지 않았다면 스튜디오를 시작할 자신감을 갖지 못했을 거다.

1997년 런던 패션 위크를 위해 하비 니콜스에 설치한 작품도 마찬가지다. 저와 제 스튜디오가 이렇게 크고 대중에게 공개되는 작품을 만든 것은 처음이었고, 매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일시적인 것을 만드는 데도 영구적인 것을 만드는 것과 같은 양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2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커먼웰스 게임을 위한 조형물인 “B of the Bang”은 큰 순간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가장 높은 조형물이었다. 그리고 상하이에 영국 파빌리온을 설치한 것도 엄청난 순간이었다. 2010년 엑스포를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털로 된 건물을 만들었다. 영국 큐 가든의 밀레니엄 시드 뱅크 팀과 협력하여 25만 개의 다양한 식물 씨앗을 제공받았고, 이를 6만 개의 막대/털 건물에 심었다. 우리는 250개 이상의 전시관에서 최고상을 수상했고, 중국 전역의 사람들과 단체들과 갑자기 큰 인맥과 우정을 쌓게 된 순간이었다.

그 전에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은 부동산 개발업체인 Swire가 홍콩의 퍼시픽 플레이스 재개발을 위해 우리를 선택한 것이었다. 예산은 우리가 이전에 해왔던 모든 작업보다 많았지만 4배는 아니더라도 두 배는 더 많았다. 기존의 대형 건물을 재건축하는, 영구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죠. 이전에 작업했던 뉴욕의 롱샴 플래그십 스토어도 생각난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고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시겠나. 각 프로젝트는 사다리의 한 단계와 같다. 2012 런던 올림픽 성화대, 런던 2층 버스, 가든 브리지, 비록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저희에게는 정말 큰 순간이었다. 도쿄에 첫 번째 지구인 아자부다이 힐스 단지를 오픈하면서 규모도 커졌다. 시안의 두 번째 지구는 크리스마스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은 경험, 회복력, 자신감을 바탕으로 성장한 결과이며, 저에게는 1991-92년 맨체스터 폴리테크닉의 첫 번째 파빌리온에서 얻은 자신감에서 시작됐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작업에 응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작업에 응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헤더윅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무엇을 주로 의뢰하나

-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타협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종이 건축의 세계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아이디어, 개념, 가능성이 거의 실현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 저는 만들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디자인과 제작은 늘 연결되어 있었다. 저는 건축 되지 않는 것에는 그다지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타협으로 보지 않고 현실로 본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현실의 제약 속에서 위대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에서 저는 세상에서 가장 큰 타협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저에게는 모든 프로젝트가 거대한 협업이다. 스튜디오에서 우리는 한계를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한계와 싸우지 않고 그 한계를 사랑하고 그 한계가 우리에게 영감을 주도록 노력한다. 우리는 낙담하거나 냉소적으로 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대신 항상 낙관적인 관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대부분의 경우 프로젝트 팀은 프로젝트를 망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낸다. 하루 종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타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기술이다. 목욕탕에 누워서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은 거의 없다(웃음). 대신, 우리는 끊임없이 타격을 받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부정적인 에너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한다.

우리는 단일 디자인 솔루션보다 각 프로젝트의 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마치 각 프로젝트에 대한 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처럼 프로젝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를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타협하지 않는다. 이러한 가치를 표현하는 방법은 재료, 기법, 기술 또는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가치 중심적인 태도는 모든 프로젝트가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고객들이 저희를 선택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토마스 헤더윅 감독과 사진 김호이 기자
토마스 헤더윅 감독과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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