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을 중국의 사회주의와 유사한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패권 경쟁자인 중국의 고속 성장 모델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진단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미국식 국가자본주의로 향하는 미국’이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집권 이후 정책과 조치를 집중 조명했다.
WSJ이 ‘미국식 국가자본주의’의 사례로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로 확보한 1조5000억달러(약 2090조원) 규모의 투자 유치 약속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승인 대가로 확보한 ‘황금주식’(거부권 주식) △엔비디아·AMD의 대(對)중국 특정 반도체 판매 수익 15% 미국 정부 이전 △인텔 립부 탄 CEO에 대한 사임 요구 등을 꼽았다.
WSJ는 이 같은 조치가 “국가가 사기업의 의사결정을 이끄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형태”라며 이를 ‘미국적 특색의 국가자본주의’로 명명했다.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방위생산법’ 발동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개입이 일시적이었던 것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체계적·상시적으로 구현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경제적으로 불리한 기관이나 인사에 대한 ‘보복성 조치’도 서슴지 않고 있다. WSJ는 이날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한 언론사나 금융기관, 로펌 등에 보복성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는 ‘엡스타인 의혹’을 보도한 WSJ와 모기업 뉴스코프의 루퍼트 머독 회장을 상대로 100억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은 연방준비제도(Fed)와 불리한 고용 통계를 발표한 노동통계국은 수장이 압박을 받거나 실제로 교체됐다.
이런 행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공개 비판 후 IPO 취소·거액 벌금 부과 등으로 압박했던 사례를 연상시킨다고 WSJ는 전했다. 특히 US스틸 인수 과정에서 확보한 황금주식은 중국이 민간기업에 공산당 황금주 발행을 의무화하는 제도와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WSJ는 국가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왜곡·낭비·정실주의를 수반해 민간 시장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며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경고했다. 또한 중국의 성장도 국가 통제보다는 시장 개방 덕이었으며 시 주석 집권 후 강화된 국가 통제로 철강·자동차 분야에서 과잉 생산과 이익 급감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국가안보 명분의 정부 개입이 실패로 끝난 사례가 있다. 폭스콘의 위스콘신 LCD(액정 디스플레이) 공장과 테슬라의 뉴욕 태양광 패널 공장 프로젝트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과 투자가 지원됐지만, 생산 부진과 계획 축소로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WSJ은 “트럼프가 시진핑을 모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가자본주의가 미국에서 자본주의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 얼마나 잘 유지되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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