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갈등이 무역 관세를 넘어 군사적 충돌 가능성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은 일본·호주 등 주요 동맹국에 역할 분담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도 해양조사선과 군사 훈련을 통해 무력 시위를 본격화하며 맞불을 놓고 있어 인도·태평양 지역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일본과 호주 국방 당국에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놓고 전쟁을 벌일 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압박했다. 이는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4자 안보 협의체(쿼드)의 일원인 일본과 호주가 유사시 대중국 작전에 참가할 것을 사전에 약속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 소식통은 “(콜비 차관의) 요구는 미국조차 대만 안보 보장에 관한 약속이 없는 상황에 일본과 호주 정부를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이는 미국이 사실상 대만 방어 의지를 명문화하려 한다는 의지로 보인다.
미국은 그동안 대만 방어 여부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는데, 조 바이든 전 대통령만이 공개적으로 대만 방어를 언급한 바 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대만 유사시 직접 적용될 구체적 작전 구상과 훈련들이 일본, 호주와 함께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대만 비상사태라는 가정적인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며 “헌법과 국제법, 국내 법규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도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역할을 주문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일 용산에서 열린 제22차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에서 댄 케인 미국 합참의장은 "북한과 중국은 그들 자신의 의제를 추진하기 위해 명확하고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전례 없는 군사력 증강을 계속하고 있다"며 "미국의 초점은 억지력을 재정립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3국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북한의 위협에만 초점을 맞춘 반면 이제는 중국의 위협도 거론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을 촉구한 것이다.
올 초에는 미국, 일본, 호주의 F-35 전투기들이 괌에서 처음으로 공동 훈련을 실시한 사실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확인됐다. 이 훈련에는 약 3000명의 병력이 참여했으며 이는 2013년 훈련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규모로 기록됐다. 아직 미·중 간 직접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양국의 군사 훈련 등이 이뤄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일본, 호주는 사상 처음으로 3자 해군 군수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협정은 미사일 재장전, 연료 보급 등 군수 상호지원을 공식화한 것으로 인도·태평양에서의 연합 대응력을 크게 강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협정은 2019년부터 미국과 호주 간 이뤄지던 협력을 정식 제도화한 것이며 미국 해군은 Mk-41 미사일 발사기와 호환 가능한 해상 재장전 시스템을 공동 개발해 2024년 시범 운용에 성공했고 2025~2026년 추가 시험도 예정돼 있다.
협정에 서명한 미 해군 제프 재블롬 부참모총장은 “이번 협정은 평시 훈련부터 위기 상황까지 해상에서의 탄력적 대응을 가능하게 할 물류 탄력성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WSJ는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대응해,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병력 배치 및 합동훈련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해양조사선들이 최근 대만 동부 해안과 괌 동쪽 해역 등 서태평양 지역에서 정밀 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양정보 분석기업 ‘스타보드 마리타임 인텔리전스’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과 2024년의 항로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자국 인근에 머물던 중국 해양조사선들이 대만 동부 및 괌 동서쪽 약 250마일(약 402km) 해역까지 진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상양훙 6호를 포함한 조사선 6척은 지난해 대만 동해안 인근 해역을 25차례 이상 직선으로 이동했으며 해저 지형 스캔, 해류 분석, 수중 드론 활용 등 군사적 활용이 가능한 정밀 탐사를 수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 동부 해안은 대만군 주요 공군·해군 기지가 있어 군사 충돌 시 중국 해군이 가장 먼저 장악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측되는 중요한 해역이다.
또 괌은 미국 전략폭격기, 핵추진 잠수함이 주둔하는 서태평양의 핵심 군사 기지로 대만 유사시 미군이 병력을 출동시키는 거점이다. 따라서 중국의 해양조사 활동은 향후 군사 작전 수행을 위한 사전 정보 수집 작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지난 9일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대비한 대규모 군사 훈련인 '한광 41호' 훈련을 개시하자 중국도 대만 근처 푸젠성에서 실사격 훈련을 벌이며 대만해협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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