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대화를 전면 단절하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간에 든든한 공조 협의를 바탕으로 해서 북한과 관계를 개선해야 되겠다”면서도, “지금은 너무 적대화되고 불신이 심해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변호사 일을 하면서 부부 갈등 상담을 많이 했다”며 “부부 클리닉을 가서 역할을 바꿔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상황이 많다. 남과 북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했다. 또 “(흡수통일은) 엄청난 희생과 갈등을 수반한다”며 “가능하면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득 되는 길을 가고, 동질성을 조금씩 회복해 가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이 대통령의 대북관은 흡수통일 배제, 공동번영, 점진적인 동질성 회복, 역지사지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 12월 19일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떠한 무력도발도 용납하지 않으며, 북한을 무력으로 흡수할 의사가 없으며, 남북한 간 평화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북 3대 원칙(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남북 평화·협력 추진)을 밝힌 것과 다르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3 원칙에 입각한 ‘햇볕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기초가 됐다.
이재명 정부도 김대중 정부의 대북 3원칙과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평화우선의 한반도 정책을 계승하여 남북관계를 복원하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이 선대의 유훈을 부정하고 있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김정은 시대 달라진 북한은 선대의 ‘통일유훈’인 ‘민족대단결론’, ‘우리민족제일주의’, ‘우리민족끼리정신’ 등을 계승하지 않고, ‘핵을 가진 전략국가’를 앞세우며 ‘우리국가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이후 북한은 통일·민족·삼천리금수강산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과거에 사용하던 ‘남조선’이라 용어 대신에 ‘대한민국’ ‘한국’이라는 우리 국호를 그대로 사용한다.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보지 않고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대북·통일정책과 관련한 쟁점이 부각하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의 대선 공약집에서는 ‘경제안보와 한반도 평화’ 비전을 제시하면서 한반도문제를 경제안보의 하위범주로 다루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제1의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갖은 노력에도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이를 반영한 듯 대선에서는 “포괄적·단계적 비핵화로 평화체제를 향한 실질적 진전을 이루겠다”는 공약을 경제안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경제안보 차원의 ‘평화경제론’을 밝혔을 뿐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세인식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추진하는 데 북한문제가 지정학적 리스크, 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2023년 말부터 북한이 ‘교전중인 적대적 두 국가론’을 펴면서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상태에서 어떤 미사여구를 써도 북한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대화 단절이 바보짓’이라고 하지만 대화 복원은 녹록지 않다. 남북관계 역사에서 관계가 단절 되면 복원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거나, 아예 단절을 복원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김정일 시대에는 남북관계 교착을 풀기 위한 특사교환이 이뤄진 전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우리 특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장시간 만나 설득하여 오해를 풀고 관계를 정상화한 것이다.
남북 사이에는 신뢰를 잃게 되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의 경우 중단 이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피격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가 중단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대량의 현금이 북한의 핵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관광객 피격사건이 벌어지자, ‘평화로운 관광지에서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사망케 하는 나쁜 정권’이란 프레임을 씌워 금강산 관광사업을 중단시켰다. 북한이 우리가 요구한 재발방지 약속 등 관광재개를 위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이명박 정부는 관광을 재개하지 않았다.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당국은 금강산 지역의 남측 시설물을 철거하고 국제관광특구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지구에 남측이 건설한 이산가족면회소도 철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개성공단 지역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불만과 대북전단을 문제 삼아 2020년 6월 16일 폭파했다. 그 무렵 북한은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했다. 윤석열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8·15 통일독트린’ 등을 통해서 ‘자유의 북진통일’을 공공연히 추진하면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개성공단 재가동 등 남북경협 재개 기대감에 남북 경협주가 꿈틀거리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재개할 때는 공단을 통해서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민족공동번영 차원에서 임금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남측의 중소기업과 ‘한계기업’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김정은 시대 북한이 과거 방식의 개성공단 운영을 재개할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남측의 보수정부나 민주정부 모두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목표로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을 추진했다고 하면서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로 보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는 헌법적·물리적 조치를 취하고 있어 김정은 위원장이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남북관계 복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복원된다고 해도 민족 내부의 잠정적 특수관계보다는 국가 대 국가로의 관계 재설정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 복원이 이뤄지기까지 대북확성기방송과 대북전단 중단과 같이 우리가 일방적으로 취할 수 있는 신뢰조성 조치를 계속해서 선제적으로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관계 복원을 위한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그 전기는 북·미관계 진전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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