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 “슬의생은 SF드라마”라는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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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1-07-2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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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본 소아외과 지원 '0' 현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연출 신원호, 극본 이우정)은 병원에서 일어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의사들의 사랑 얘기도 주요 소재다. 휴먼과 멜로가 어우러진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이렇게 소개한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20년지기 친구들의 케미스토리를 담은 드라마

드라마를 보면 제작진이 실제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취재를 정말 꼼꼼하고 철저히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료와 수술 장면은 생생하고 매 회 에피소드도 진짜 일어났던 사건이 많다고 한다.

지난해 시즌1에 이어 요즘 매주 목요일 오후 9시 tvN에서 방영하는 시즌2도 시청률 10%대를 훌쩍 넘는다. 유일한 ‘본방 사수’ TV 프로그램이라는 열성팬들이 꽤 많다.

사극이나 외국 제작 드라마와 달리 이런 드라마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드라마 내용을 종종 내가 겪었던 경험, 기억과 비교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슬의생>을 휴먼·멜로가 아닌 SF(공상과학)드라마라고 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실제 병원과 의료진에는 슬의생 주인공들(아래 사진. 왼쪽부터 김대명, 유연석, 조정석, 전미도, 정경호)과 같은 의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슬의생 시즌2 홈페이지 캡처. 사진=tvN]

99학번 의대 동기, 대학종합병원 교수들인 이들 모두 하나같이 최고의 능력자와 인격자다. 외래진료와 수술에서 이들 5인은 제각각 ‘어벤저스급’ 능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음악 밴드를 만들어 매주 새로운 곡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가진 의사로서의 태도와 자세, 마음은 인간적이고 인격적이다. 환자, 보호자 모두에게 증상과 병명 등을 친절히, 자세히 설명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한다. 간호사와 후배 의료진을 막 대하지 않고 진심으로 성의를 다한다. 

실력, 취미를 놓고 보면 의사 사회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터. 그러나 시청자들, 특히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직접 경험한 전직 환자, 보호자들은 슬의생에 나오는 인간미 넘치는 자상한 의사들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아니 상상 속 판타지에서만 존재할 의사라는 거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SF물이라고 비꼬며 한국의 의료 현실, 의사들을 향해 야유를 보낸다.

주인공 중 ‘천사’라고 불리는 안정원(유연석 분) 소와외과 교수가 특히 그렇다. 유소아 환자, 보호자, 간호사 등 모두에게 안정원 교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은 의사다. 의료재단을 소유한 가문의 유일한 의사이자 잘 생긴 막내 아들인 안 교수는 ‘키다리 아저씨’다.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환자들에게 수술비를 남모르게 지원한다. (시즌2에서 이 역할은 전미도가 분한 채송화 교수가 맡음)

그런데 방금 전 본 뉴스는 ‘슬의생=SF드라마’라는 비꼼을 진짜라고 믿게 했다. 26일자 연합뉴스 기사에는 안정원 교수가 몸담고 있는 소아외과 관련 소식을 전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의료계와 대한외과학회가 7월 치러진 외과 세부 분과 전문의 시험 응시인원을 집계한 결과, 소아외과 전문의 응시자는 ‘0명’이었다. 올해 분과 전문의 시험에 응시한 외과 전문의는 총 60명이었다. 유방외과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간담췌외과 16명, 대장항문외과 10명, 내분비외과 6명 순이었지만 선천성 기형아, 응급 소아 환자를 수술하는 소아외과 지원자는 없었다.

이우용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소아외과 분과 전문의 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원자가 전무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소아 중증 환자 치료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지원하지 않는 전문의 후보자들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제대로 된 처우, 일과 휴식의 조화가 보장되지 않는 곳을 사명감 하나로 무작정 택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정부의 지원 정책이다. 의료수가(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금액)를 재조정하고 소아외과 전문의 육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소아외과 전문의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을 찾아봐야 한다. 이는 출산율 개선과도 이어진다. 우리 의료당국은 아기를 건강하게 낳아 기를 수 있는 든든한 보호막이 될 소아외과 의사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슬의생을 SF물이 아닌 현실감 충만한 휴먼·멜로드라마로, 앞으로 오래오래, 시즌 10까지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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