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일본 찾는 한국 관광객 '연 700만명'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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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입력 2017-11-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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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이 522만명에 육박했다는 일본정부관광국(JNTO)의 집계가 얼마 전 보도됐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40.3%가 증가해 사상 최다였다는 것이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방일 한국인 여행객은 500만명을 넘어섰던 지난해보다 200만명 증가한 7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총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수치로, 매년 10명 중 한 명 이상이 일본으로 놀러 가는 셈이다.

왜 이렇게 일본을 찾는 것일까?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다음의 이유를 꼽는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중국 대신 일본을 많이 찾았다는 분석, 100엔당 환율이 1000원을 넘나드는 엔화 약세, 늘어난 저가항공 등이 그것이다. 
 
모두 수긍이 간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물가다. 단적으로 말해 서울 물가는 도쿄나 오사카의 그것보다 높다. 호텔비는 말할 것도 없고, 음식값도 대체적으로 더 비싸다. 그러니 일본으로 놀러 가는 것이다.

필자는 집필, 자료 수집 등을 위해 최근 일본을 많이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서울 물가가 너무 턱없이 높다는 확신이었다. 도쿄 중심부로 서울 명동에 해당하는 긴자(銀座)나 이태원이라 할 수 있는 롯폰기(六本木) 등에서 여러 번 묵었는데, 1박에 10만원 초반대면 매우 깨끗하고 좋은 호텔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명동이나 강남에서 웬만한 호텔을 잡으려면 10만원 후반대나 20만원을 넘어선다.

필자는 메밀국수(소바)를 좋아해 일본에 갈 때마다 이를 많이 먹는데, 자주 가는 긴자 소바집에서 5000원 정도면 훌륭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7000원 이상이 들어간다. 생선초밥(스시)도 마찬가지다. 긴자 스시집에서 두 사람이 생맥주에 도미머리찜을 곁들여 스시를 실컷 먹고도 10만원이 조금 넘었다. 서울의 웬만한 일식집에서는 도미머리찜 하나만 해도 10만원에 육박할 것이다.

일본을 치켜세우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음식점 서비스는 결코 한국이 일본을 쫓아갈 수 없다. 일본도 최근 세대가 바뀌면서 친절도가 낮아진 곳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여전히 매우 친절하다. 음식점 주방의 청결 상태나 위생문제도 그렇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서비스도 부족한 데다 친절하지도 않고, 품위 있는 도자기 그릇이 아니라 플라스틱 쪼가리에 담겨진, 위생 상태가 좀 찝찝한 음식을 더 비싸게 먹는 기분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서울은 왜 도쿄보다 물가가 비싸야 할까? 소비자를 위한 모든 객관적 지표에서 도쿄가 더 앞서는데도 말이다. 이 물음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은 땅값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은 기형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서 물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물 주인들이 저마다 임대료를 비싸게 매기다 보니, 가게에 세 들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판매하는 상품 값을 비싸게 받고 상대적으로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줄여야 한다. 지금 서울의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우리 국민의 GDP나 월 평균소득 수준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면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왜 비싸고 거품이 있을 수밖에 없는가. 이에 대해서는 논문 한 편을 써도 모자라지만, 긍극적으로는 이제껏 정부 정책과 관료들이 이를 옹호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나오지도 않은 물건을 사야 하고, 원가가 얼마 드는지도 모르는 지금의 아파트 분양제도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는 집’을 파는 시스템이 없는데, 오직 한국만이 원가가 얼마인지 전혀 모르면서 합판때기 견본주택만 보고 10억원 이상의 돈을 지불한다. 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선분양 시스템을 후분양으로 고치고, 원가가 얼마 드는지를 알려달라는 것은 나라 하나 세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 재벌들과 관료들이 이를 줄기차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으로 가는 우리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비싼 대학 등록금이나 혀를 내두르게 하는 대학가 방값 등의 물가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한국의 구직자 수 대비 구인자 수 비율이 0.62인데 반해, 일본은 1.52로 사람보다 일자리가 50% 많아 취업에 유리하다는 점도 큰 이유다. 그러나 일본 물가가 비싸서 유학비가 서울 유학보다 더 많이 들어간다면, 일본에 일자리가 많다고 해도 선뜻 유학가기 어려울 것이다.

충격적인 통계가 하나 있다. 독도와 위안부 등 문제로 한·일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가운데서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한인 귀화자 수가 매년 5000명 안팎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생활의 터전을 닦는 신재일동포, 이른바 ‘뉴커머’ 숫자는 현재 15만명에 이른다.

왜 일본으로 놀러가고 유학을 가며,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이 늘어나는가. 지극히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아비규환의 상황, 그로 인해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해야 하는 ‘4포 세대’가 출현한 이 망국의 구조를 뜯어고치지 못한다면 땅 치며 통곡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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