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집권당인 공화당이 참패했다. 이로써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하반기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레임덕이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했던 대내외 정책들도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미국 민주당 후보들이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규제를 강화하거나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고 공약함으로써 반도체 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도 주식이 폭락하는 등 미국 중간선거의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의 주된 패인 중 하나는 이란 전쟁 수행에 따른 물가 상승을 꼽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설득당해 이란을 침공했지만 이란 신정체제와 후티 등 ‘저항의 축’의 반발로 전쟁을 조기에 종식하지 못하고 장기전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 해외 전쟁을 피하겠다며 ‘끝없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이를 뒤집고 이란 전쟁을 감행하여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집권하면 24시간 내에 끝낼 수 있다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째 지속되고, 지도부만 제거하면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던 이란 전쟁은 중동 전쟁으로 확산됐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피아 구분 없이 관세를 퍼붓고, 핵 개발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이란 전쟁이 물가를 자극해 트럼프를 지지했던 러스트 벨트와 농업·운송업 종사자, 이민자 등 중산층 유권자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 이번 중간선거의 패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무리한 대외정책이 국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다수 의석 차지에 실패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중간선거의 패배 원인도 경제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 찬 구상들이 중간선거에서 부정적 심판을 받은 것은 트럼프의 독선적 리더십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는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이른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 트럼프의 독주를 견제했기에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1기 때 국정 수행 경험에서 자신감을 얻은 트럼프 대통령이 2기 때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임하는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등 충성도가 높은 참모들을 거느리고 무차별적인 고율의 관세 부과,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압송, 이란 전쟁 수행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 것이 부작용으로 나타나 이번 중간선거에서 심판을 받았다. 이란 전쟁의 책임을 물어 피터 헤그세스를 교체하거나 마코 루비오가 사표를 낼 것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정작 교체된 인물은 백악관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비서실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참패 사흘 만에 백악관 비서실장을 수지 와일스에서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으로 교체했다. 후임 비서실장이 강성 충성파란 점에서 기존 정책에 변화를 주기보다는 강성 충성파를 충원해서 기존 정책을 지속하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트럼프 시대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전략경쟁 중인 중국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관세를 무기로 중국을 약화시키려 했지만 희토류 수출금지와 농산물 수입금지 등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활용한 중국의 반격으로 관세 부과를 유예하며 뒤로 물러섰다. 미국이 이란 전쟁을 조기에 종식하지 못함으로써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와 ‘재균형(rebalancing)’ 전략 추진도 차질을 빚게 됐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부터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과 중동 중시의 대외정책을 아시아 중시 전략으로 수정하고자 했지만 트럼프의 관세전쟁과 이란 전쟁 수행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 우방인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등에는 관세를 무기로 투자를 압박하지만 정작 전략경쟁 중인 중국에 대해서는 관세전쟁을 유예하는 등 ‘관계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이 레임덕을 막기 위해 대외정책에서 성과를 거두려 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란 전쟁 종전 협상 지속,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자 협상,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미·러 정상회담 또는 미·중·러 3국 정상회담,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이를 치적으로 부각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약화된 패권을 반영하여 ‘세력권 정치’를 본격화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미국이 세력권 정치 전략을 본격화하면 세계 전체를 미국이 일률적으로 관리하던 ‘규칙기반질서’에서 벗어나 강대국끼리 서로의 영향권을 인정하는 거래·협상을 추진할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이 세력경쟁을 본격화하면 세력권이 겹치는 ‘단층선(fault line)’ 지역의 안보 불안정은 커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대만·한국 등이 세력권 사이의 단층선에 존재하는 가장 위험한 나라들이다. 한반도는 미국 세력권과 중국 세력권이 중첩된 단층선 지역이다. G2인 미·중은 한국전쟁에서 충돌한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이자 한국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경쟁 중인 두 세력권의 핵심 국가들이다. 중간선거 이후에 트럼프 행정부가 미·중 전략경쟁을 본격화하거나 세력권 정치를 모색한다면 한국의 대미·대중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중간선거 패배와 관계없이 프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 외교 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규칙기반질서와 가치동맹을 중시하고 있어 트럼프의 독주를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역점사업이 차질을 빚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미국의 대미 투자와 통상 압박, 방위비 증액과 파병 압박에 대응해야 하고, 핵추진 잠수함 도입과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결정과 미국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있을지 모를 북·미 직거래에 따른 비핵화 원칙 약화 위험 등에 대비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