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 칼럼] 北의 '국경선 요새화'와 잠재된 군사 충돌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로를 개척하던 우리 국군 장병 3명이 지뢰폭발사고로 부상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5일 지뢰 폭발 원인을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이남에 설치한 수지반보병지뢰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북한군 지뢰지대에 대한 제거 작전을 전격 단행했다. 합참은 “유엔사와 합동정보조사팀은 최종적으로 GPS를 이용해 3개 지점이 MDL 이남 10여 m로 확인되어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MDL 이남에 북한이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정전협정 위반에 대한 상응 조치가 불가피해졌다. 남북 당국 사이에 책임 공방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상응 조치와 관련한 남남 갈등도 커질 수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며 선을 긋고 나섰다. 북한은 9월 30일 김여정 부장의 담화를 통해 “이번 사건은 도발 시기와 수법에 있어서 10여 년 전 세상을 소란하게 했던 ‘목함지뢰사건’을 그대로 방불케 하는 명백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지뢰폭발사고는 2015년 목함지뢰사건과 같다고 할 수 없다. 목함지뢰사건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남쪽 통문 일대에 목함지뢰를 의도적으로 매설한 것에 의해 우리 군이 피해를 당했기에 북한의 도발로 특정할 수 있었고 상응 조치로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우리 군이 국경선 요새화 작업을 추진하는 북한군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수색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여서 북한의 의도와 고의성을 단정하기 어렵다. 폭발 현장의 증거물과 폭발 지점 주변에서 발견한 지뢰가 북한이 매설한 것으로 확인됨으로써 합참이 북한 책임을 적시하고 사과와 지뢰 제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군은 이번 사건을 북한이 2023년 말부터 정책화한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른 남부국경선 요새화 작업의 일환으로 MDL 이남에 매설한 지뢰에 의한 폭발사고로 판단하고 북한에 요새화 중단을 요구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번 사건의 핵심 원인을 군사분계선 문제로 보고 “남과 북, 그리고 유엔군사령부가 측정하는 선이 다르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적어도 군사분계선(MDL)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측정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73년이 지나면서 군사분계선 경계 표시 중 상당 부분이 유실됐고 남과 북이 사용하는 GPS 장비가 달라 약간 오차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군이 이번 사고 지점이 군사분계선 10여 m 남쪽 지역이라고 밝혀 북한의 지뢰 매설은 명백한 도발에 해당한다. 하지만 군사분계선 측정 선이 다르면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통일부 장관이 군사분계선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측이 새로운 수색로를 개척할 가능성이 높은 곳에 북측이 의도적으로 매설한 지뢰라면 도발로 확정할 수 있다. 북한이 ‘명백한 자작극’이라며 발뺌하고 있지만 유엔군사령부와 우리 군은 합동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군사분계선 위치 확인과 지뢰 제거 작업 등 상응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2015년 목함지뢰사건 당시에는 대북확성기 방송이 재개되고 이에 대한 북한군의 포사격과 우리 군의 대응사격이 있었지만 남북고위급회담을 성사시켜 지뢰 도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시를 받아냈다. 김정은 정권 초기에 북한이 의도적 도발을 감행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대화를 통한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례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단절하는 국경선 요새화를 진행하고 있어 의도를 가진 국면전환용으로 보기 어렵다. 김여정 부장은 9월 30일 담화에서 “세상이 다 알다시피 우리 군대는 두 해 전부터 국경강화사업 일환으로 남부국경 일대에서 차단물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그 어떤 군사적 목적과는 무관한 철저한 주권행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두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목적이 대한민국과 관계를 단절하고 남측에서 올라오는 영향력을 차단하는 데 있기 때문에 남측과 얽히는 도발을 자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여정 부장은 이어진 10월 2일 담화에서 북한이 국경선을 요새화하는 진의는 “한국과 마주 설 일이 없게, 들짐승마저도 드나들 수 없게 영영 문을 닫아 매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한국이라는 족속들을 의식하는 것조차 소름이 끼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2020년 6월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대남 비난 강도를 높여왔다. 2022년 8월 19일 김여정 부부장 담화를 통해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여정 담화에 비춰볼 때 재발 방지를 위한 남북대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비무장지대를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가 나서서 정전협정에 입각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유지·관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유엔사는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변경하고 요새화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관할권을 내세우고 우리의 주권 행사에 많은 제약을 가한 것에 비하면 북한의 국경선 요새화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변경하는 것은 정전협정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 4㎞의 완충구역이 무력화되면 군사 충돌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지금은 북한이 육상에서 ‘국경강화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북방한계선(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경비계선’이 서로 달라 서해에서 해상경계선를 둘러싼 갈등은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3대 청사진(포용적 평화공존, 안정적 평화공존, 책임 있는 평화공존)을 밝히고 “긴장과 갈등을 통제할 제도, 위기와 확전 방지를 위한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유엔사와 함께 접경지역 충돌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남북 사이의 연락창구가 차단된 상황에서 군사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 관리를 하면서 정전협정 관련 당사국들과 양자·다자 대화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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