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바둑 이야기 ② | 인간·문화·자연] 바둑은 우주다, 흑백의 361점에 새긴 한국 바둑 81년의 도(道)

  • 제9회 바둑의 날에 돌아본 한국 현대바둑 81년, 조남철에서 조훈현·이창호·이세돌·신진서까지

  • 『도덕경』·『논어』·『주역』·『천부경』으로 읽는 바둑의 철학…정태순이 이끄는 한국기원, 실사구시와 지행합일로 K-바둑의 새로운 100년을 열다

바둑판에는 우주가 있다. 가로 열아홉 줄과 세로 열아홉 줄이 만나 이루는 361개의 교차점, 그 위에 놓이는 흑과 백의 돌은 단순한 승부의 도구가 아니다. 흑과 백은 음과 양이고, 돌이 놓이는 공간은 하늘과 땅이며, 그 사이에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대국자는 인간이다. 작은 돌 하나가 전체의 형세를 바꾸고, 보잘것없어 보이던 한 수가 승부의 운명을 결정한다. 바둑은 인간과 자연, 우주의 질서를 응축한 작은 세계다.

바둑은 스포츠이고 게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바둑의 본질을 설명할 수는 없다. 바둑에는 경쟁과 공존, 생성과 소멸, 선택과 책임, 욕망과 절제라는 인간 문명의 근본 문제가 담겨 있다. 『도덕경』의 무위자연(無정爲自然), 『논어』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주역』의 음양과 변화, 『천부경』의 하나와 우주 질서를 함께 떠올리게 하는 까닭이다.

2026년 11월 5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신관에서 제9회 바둑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정태순 한국기원 이사장을 비롯한 바둑계 관계자들이 모여 한국 현대바둑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다짐했다. 이날은 1945년 11월 5일 조남철이 한성기원을 설립한 지 정확히 81년이 되는 날이었다.

해방의 폐허에서 출발한 한국 바둑은 세계 정상에 올랐고, 인간과 인공지능이 맞선 문명사적 대결의 중심에 섰으며, 이제 AI를 활용한 새로운 바둑의 시대를 열고 있다. 조남철에서 김인으로, 조훈현과 서봉수에서 이창호와 유창혁으로, 이세돌에서 박정환과 신진서로 이어지는 81년의 역사는 한 민족의 문화적 도전과 성취를 보여주는 장대한 서사다.

그러나 이번 바둑의 날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과거의 영광을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해운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온 정태순 이사장이 한국기원의 새로운 경영을 맡으면서, 한국 바둑은 승부의 영역을 넘어 교육과 문화, 산업과 국제교류를 포괄하는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바둑의 도를 지키면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 전통을 계승하면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 바로 한국 바둑이 다음 100년을 향해 놓아야 할 한 수다.

 
『천부경』의 하나, 바둑의 첫 돌에 우주가 열린다
우리 민족의 전통 사유를 이야기할 때 『천부경』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81자 본문은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경전으로 읽히지만, 그 성립 시기와 전승 과정, 고대 문헌으로서의 역사적 위상을 둘러싸고는 학술적 논쟁이 존재한다. 따라서 『천부경』의 우주론을 과학적 사실이나 확정된 고대사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철학적 사유 체계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첫 구절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다. 하나는 시작이되 시작 없는 하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마지막 구절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다. 하나는 끝이되 끝없는 하나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 두 구절을 바둑에 비추어 보면 흥미로운 통찰이 나타난다.

한 판의 바둑은 첫 번째 돌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첫 돌은 완전한 무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이미 바둑판에는 열아홉 줄의 질서가 있고, 대국자에게는 오랜 학습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첫 수는 시작이지만 그 이전의 세계와 단절되어 있지 않다.

마지막 수 역시 마찬가지다. 대국은 끝나지만 그 승부에서 얻은 교훈은 다음 대국으로 이어진다. 승리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패배한 사람은 복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바둑판의 361개 교차점은 유한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위에서 펼쳐지는 변화의 수는 인간이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다. 전통적인 바둑 문화에서는 바둑판의 구조를 천문과 역법, 우주의 질서에 연결해 해석하기도 했다. 다만 361이라는 숫자가 실제 태양년의 날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기계적인 일치가 아니라 작은 공간에 거대한 세계를 담아내려는 인간의 상상력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함께 사유하는 천지인(天地人)의 관점에서도 바둑은 특별하다. 하늘은 무한한 가능성이고, 땅은 돌이 놓이는 현실의 공간이며, 인간은 그 사이에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다.즉 人中天地一 이다.

바둑판이 있어도 돌을 놓는 사람이 없다면 승부는 시작되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해도 인간이 선택하지 않으면 현실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우주의 질서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지만, 그 질서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는 있다.

바둑을 오래 둔 사람일수록 자신이 모르는 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강해질수록 오히려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수많은 승부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혜의 출발점은 모든 것을 안다는 자만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주역』의 음양, 흑백은 적이 아니라 하나의 질서다
바둑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주역』만큼 흥미로운 경전도 드물다. 『주역』의 핵심은 변화다. 세상은 정지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관계와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

『주역』 「계사전」에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는 구절이 있다.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는 뜻이다.

바둑판의 흑과 백도 그렇다. 두 색은 서로 경쟁하지만 절대적으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흑이 없으면 백의 승부도 없고, 백이 없으면 흑의 존재 이유도 사라진다. 서로 다투면서 하나의 바둑을 완성한다.

공격이 수비로 바뀌고, 약한 돌이 강한 세력으로 성장하며, 유리했던 형세가 한순간에 불리해진다. 상대의 돌을 잡기 위해 공격하다가 오히려 자신의 돌이 위험해지기도 하고, 작은 영토를 포기함으로써 전체의 승리를 얻기도 한다.

초보자는 눈앞의 돌을 바라보지만 고수는 전체의 변화를 읽는다.

이 차이는 기업 경영과 국가 운영에서도 나타난다.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면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잃을 수 있고, 장기적인 비전만 이야기하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하면 당장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바둑의 세력과 실리는 미래와 현재의 관계를 보여준다. 세력은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고, 실리는 지금 확보한 확실한 성과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좋은 바둑을 완성하기 어렵다.

『주역』의 변화 정신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을 읽고 그 안에서 적절한 길을 찾아가는 데 있다.

그러나 변화에도 중심이 있어야 한다. 원칙 없이 흔들리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표류다. 『주역』의 변화와 『논어』의 덕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덕경』의 무위, 가장 강한 수는 때로 싸우지 않는 수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고, 부드럽지만 오랜 시간 단단한 바위도 변화시킨다.

바둑에서 진정한 고수의 모습도 물과 닮았다.

상대가 강하게 공격한다고 반드시 더 강하게 맞받아칠 필요는 없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형세를 정비할 수도 있고, 싸움을 피하면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바둑에서 가장 화려한 수가 반드시 가장 좋은 수는 아니다. 상대의 돌을 대량으로 잡는 수보다 자신의 약점을 조용히 보강하는 수가 더 훌륭할 수 있다.

이것은 『도덕경』의 무위(無爲)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사물의 흐름과 이치에 맞게 행동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노자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의 지혜를 가르친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바둑에서는 이 원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미 이길 수 있는 형세에서 무리하게 더 큰 승리를 추구하다가 패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모든 돌을 살리려는 욕심이 오히려 대마를 죽이기도 한다.

바둑의 중요한 기술 가운데 사석(捨石)이 있다. 전체의 승리를 위해 일부 돌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작은 것을 버림으로써 큰 것을 얻는다.

인간의 삶도 그렇다.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잃기 쉽다. 모든 사업을 붙잡으려는 기업은 경쟁력을 잃을 수 있고, 모든 욕망을 충족하려는 사람은 인생의 중심을 잃을 수 있다.

바둑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앞서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묻는다.

승부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욕망을 다스리는 수양의 세계인 것이다.
 
『논어』의 인의예지신, 바둑은 인간을 완성하는 수양이다
공자의 『논어』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경전이다. 공자는 지식과 능력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인격과 예의를 갖춘 군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바둑은 상대를 이기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둑판 앞에서는 누구나 같은 규칙을 따른다. 나이가 많다고 유리한 수를 얻을 수 없고, 지위가 높다고 상대의 돌을 마음대로 거둘 수 없다. 승부는 정당한 규칙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예(禮)다.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패배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자신의 승리를 과장하지 않는 것은 인(仁)과 연결된다. 불리한 형세에서도 정당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의(義)이고, 전체의 형세를 읽고 적절한 수를 선택하는 능력은 지(智)다. 자신이 놓은 돌에 책임을 지고 약속과 규칙을 지키는 태도는 신(信)이다.

인의예지신은 바둑의 공식적인 규칙이 아니다. 그러나 바둑을 통해 인간의 덕성을 성찰할 때 매우 유익한 기준이 된다.

공자는 일흔의 경지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설명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처음 바둑을 배우는 사람은 규칙을 의식해야 한다. 돌의 활로를 계산하고, 집의 크기를 세며, 정석을 외운다. 그러나 오랜 수련을 거친 고수는 규칙을 매 순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좋은 수를 찾아간다.

기술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인격이 되며, 인격이 하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한국 바둑의 81년은 바로 그런 수양과 계승의 역사였다.
 
조남철, 해방의 폐허에서 한국 바둑의 첫 돌을 놓다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오른쪽이 김인 9단왼쪽과 대국하고 있다사진한국기원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오른쪽)이 김인 9단(왼쪽)과 대국하고 있다[사진=한국기원]

1945년 11월 5일, 조남철은 서울 남산동에 한성기원을 설립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불과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해방의 감격과 혼란이 뒤섞인 나라에서 바둑의 제도를 세우겠다는 결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조차 막막했던 시절, 바둑의 미래를 꿈꾸는 일은 누군가에게 한가한 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남철은 달리 생각했다.

나라가 독립했다면 문화도 독립해야 한다. 한국인이 자신의 언어와 정신으로 살아가듯 바둑 역시 한국인의 문화로 발전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조남철은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 문하에서 현대적인 바둑을 배웠다. 당시 일본은 전문 기사 제도와 기전 운영에서 앞서 있었다. 조남철은 그곳에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와 현대바둑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의 정신을 상징하는 말은 기도보국(棋道報國)이었다. 바둑의 도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조남철의 업적은 단순히 기원을 설립한 데 있지 않다. 그는 바둑의 보급자였고 교육자였으며 제도 설계자였다. 뛰어난 승부사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데 머물지 않고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성기원은 이후 조선기원과 대한기원을 거쳐 한국기원으로 발전했다. 1950년 한국전쟁은 그가 품었던 꿈에도 시련을 안겼지만, 전쟁이 끝난 뒤 바둑인들은 다시 모였다. 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출범했고, 1956년 국내 최초의 프로기전인 국수 제1위전이 창설되었다.

폐허 속에서도 바둑판을 지켰다는 사실은 인간이 생존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람에게는 밥이 필요하다.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밥과 일만으로 인생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는 꿈이 필요하고, 정신의 자유가 필요하며, 자신보다 더 큰 세계를 상상할 문화가 필요하다.

조남철이 놓은 첫 번째 돌은 바둑판 위의 한 점이 아니었다. 한국 바둑이라는 거대한 판 전체를 여는 첫 수였다.
 
김인의 도전, 조훈현과 서봉수의 경쟁이 세계의 문을 열다
1960년대 한국 바둑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김인은 1966년 국수전에서 조남철을 꺾으며 한국 바둑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올랐다. 개척자의 시대를 넘어 경쟁과 세대교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공자의 후생가외(後生可畏), 곧 뒤에 태어난 사람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가르침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개척자의 위대함은 자신의 권위를 영원히 유지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보다 뛰어난 후배가 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있다.

김인의 시대를 거쳐 한국 바둑은 조훈현과 서봉수라는 두 천재의 경쟁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1989년 제1회 응씨배 우승으로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에 올린 조훈현 9단사진Wikimedia CommonsCC BY-SA 30
1989년 제1회 응씨배 우승으로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에 올린 조훈현 9단[사진=Wikimedia Commons(CC BY-SA 3.0)]

조훈현은 정교한 수읽기와 세련된 감각으로 한국 바둑의 정상을 지배했다. 서봉수는 강인한 승부 근성과 실전적인 판단으로 그에게 도전했다.
두 사람의 기풍은 서로 달랐다. 조훈현이 치밀한 질서와 균형의 바둑을 두었다면, 서봉수는 전투와 집념의 바둑을 두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천재가 치열하게 경쟁했기에 한국 바둑의 수준은 더욱 높아졌다. 『주역』의 음양처럼 두 사람은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완성했다.

바둑에서 강한 상대는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존재다.

1989년 제1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는 한국 바둑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었다. 조훈현은 중국의 녜웨이핑과 맞붙어 최종국까지 이어진 승부 끝에 3승 2패로 우승했다.

한국이 세계 바둑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올라서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 뒤를 이어 1993년 제2회 응씨배에서는 서봉수가, 1996년 제3회에서는 유창혁이, 2001년 제4회에서는 이창호가 우승했다. 한국은 응씨배 초대 대회부터 네 차례 연속 정상에 올랐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연이 네 번 이어지면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개인의 천재성을 넘어 한 나라의 바둑 문화와 교육, 경쟁 체계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1990년대 한국 바둑은 조훈현과 서봉수, 이창호와 유창혁을 중심으로 세계를 호령했다. 한국이 일본의 바둑을 배우던 나라에서 세계가 연구하는 나라로 변모한 것이다.

여기에 일본 바둑계에서 활약한 조치훈의 존재도 특별하다.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치훈은 일본 바둑의 최고 권위 타이틀들을 석권하며 한국인의 이름을 빛냈다.

한국 바둑의 역사는 국경 안에서만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다. 일본에서 배우고 중국과 경쟁하며 세계의 기사들과 교류하면서 성장한 열린 문화의 역사다.

따라서 한국 바둑의 자부심은 다른 나라를 배척하는 우월감이어서는 안 된다. 서로 경쟁하면서 함께 발전하는 것이야말로 바둑이 보여주는 동아시아 문화의 아름다움이다.
 
이창호, 침묵으로 세계를 정복한 돌부처의 도
대국에 임한 이창호 9단왼쪽 이창호는 올해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사진Wikimedia CommonsCC BY-SA 30
대국에 임한 이창호 9단(왼쪽). 이창호는 올해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사진=Wikimedia Commons(CC BY-SA 3.0)]

한국 바둑의 역사에서 가장 깊은 인간적 울림을 주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이창호다.

그의 바둑은 화려하지 않았다. 거친 전투로 상대를 압도하기보다 조용히 기다렸고, 한 번의 기발한 묘수보다 오랫동안 쌓아온 정확한 판단을 중시했다.

상대가 공격해도 쉽게 흥분하지 않았다. 형세가 불리해도 표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승리했을 때도 과장된 몸짓을 보이지 않았고, 패배했을 때도 변명보다 복기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그를 돌부처라고 불렀다.

그러나 돌부처라는 별명은 그의 진면목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창호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더욱 특별하다.

전주에서 태어난 이창호는 일찍부터 남다른 바둑 재능을 보였다.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조훈현의 문하에서 생활하며 바둑을 배웠다. 스승의 집에서 숙식하며 수련하던 시절, 조훈현의 부인 정미화 여사의 보살핌도 그의 성장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세계적인 천재의 탄생에는 눈부신 재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제자를 받아들인 스승의 결단이 있었고, 낯선 서울에서 생활하는 소년을 가족처럼 돌보았던 가정의 따뜻함이 있었다.

바둑의 역사는 흔히 승패와 기록으로 쓰이지만, 그 기록의 뒤에는 밥을 차려주는 사람과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 어린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이 있다.

이창호라는 거대한 바둑의 나무도 그런 인간적 토양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제자가 성장하면 언젠가 스승을 넘어야 한다.

1990년대 초반 이창호는 조훈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어린 제자가 세계적인 스승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 시작하자 바둑계는 충격에 빠졌다.

스승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쳤고, 제자는 그 가르침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이것은 동양의 사제 관계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는 일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쓰라릴 수 있다. 제자의 입장에서는 존경하는 스승을 이겨야 자신의 길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은 제자가 스승의 그림자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는 일이 아니다. 스승이 도달하지 못한 곳까지 제자가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이창호는 세계 정상에 올라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한국 바둑의 위상을 높였다. 2005년 농심신라면배의 '상하이 대첩'은 그 정신을 상징한다.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남은 이창호는 연승을 이어가며 극적인 우승을 완성했다.

그 승리는 단순한 기술의 승리가 아니었다. 무거운 책임을 홀로 감당하면서도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이 만들어 낸 승리였다.
2026년 이창호는 통산 2000승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2000승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많은 경기를 이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정상급 경쟁을 이어가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는 뜻이다. 수많은 패배와 좌절을 견디면서도 다시 바둑판 앞에 앉았다는 의미다.

한 번의 세계대회 우승은 천재의 재능으로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십 년의 꾸준함은 인격과 습관, 자기 절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논어』의 종심소욕불유구, 곧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는 경지가 그의 바둑과 닮았다.

이창호의 위대함은 세계를 많이 이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평생 한길을 걸어가는 인간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세돌과 알파고, 인간은 기계 앞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2016년 3월 알파고와의 4국에서 78수로 승리를 거둔 이세돌 9단사진Wikimedia CommonsCC BY 20
2016년 3월 알파고와의 4국에서 78수로 승리를 거둔 이세돌 9단[사진=Wikimedia Commons(CC BY 2.0)]

2016년 3월, 서울에서 세계 문명사의 방향을 바꾸는 대결이 벌어졌다.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맞붙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컴퓨터가 인간 최고의 바둑 기사를 이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방대하고 직관과 창의적인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계가 인간을 쉽게 넘어설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알파고는 이세돌에게 4승 1패로 승리했다.

세계는 경악했다. 인간의 지성이 마지막까지 우위를 지킬 것으로 믿었던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이 대결을 단순히 인간의 패배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네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은 알파고를 상대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78수는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앞선 세 판을 패한 뒤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가 인간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 한 수는 단순한 바둑의 묘수가 아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문명사적 질문이었다.

인간은 계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실패를 경험하고 두려움을 느끼며, 그 두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한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의 가치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간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자신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수를 보여주었다. 기존의 정석과 포석 이론을 흔들었고,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판단을 뒤집었다.

인간의 자존심에는 상처가 되었지만 바둑의 지평은 더 넓어졌다.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인간을 이긴 기계가 인간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을 인간의 패배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인간이 새로운 지적 동반자를 얻은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판단을 도울 수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와 삶의 의미까지 대신 결정해서는 안 된다.

바둑의 승부는 AI가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승부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인간으로 성장할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신진서·박정환, AI와 함께 진화하는 K-바둑의 새로운 기수들
지난 10월 제12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에서 우승한 신진서 9단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제12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에서 우승한 신진서 9단[사진=연합뉴스]

한국 바둑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신진서와 박정환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조훈현과 서봉수, 이창호와 유창혁이 세계 바둑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면, 오늘의 신진서와 박정환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도구를 활용해 한국 바둑의 또 다른 전성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신민준과 변상일, 강동윤과 김명훈 등 정상급 기사들의 치열한 경쟁도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2026년에도 한국 바둑의 저력은 세계 무대에서 확인되고 있다. 박정환은 지난 2월 제1회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 결승에서 중국의 왕싱하오를 2승 1패로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신진서는 10월 제12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에서 중국의 리웨이칭을 제압하며 대회 사상 최초의 2회 우승자가 되었다.

한국기원의 11월 초 국내 랭킹에서도 신진서와 박정환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하고, 신민준과 변상일, 강동윤이 뒤를 잇고 있다. 한·중·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국제 경쟁에서 한국 기사들이 세계 정상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음을 보여주는 성과다.

물론 세계 바둑의 모든 대회를 한국이 독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두터운 선수층과 일본의 재도약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바로 그 치열한 경쟁이 한국 기사들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오늘의 기사들이 앞선 세대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AI를 대하는 자세다. 이들에게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존심을 위협하는 경쟁자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수를 발견하고, 기존의 정석을 검증하며, 자신의 사고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지적 동반자다.

조훈현의 시대가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다면, 이창호의 시대는 완성의 시대였고, 이세돌의 시대가 인간과 기계의 충돌이었다면, 신진서의 시대는 인간과 AI가 함께 진화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뛰어난 수를 제시해도 바둑의 도까지 대신 깨우칠 수는 없다.

『주역』의 변화와 『도덕경』의 무위자연, 『논어』의 인의예지신이 가르치는 것은 계산의 속도가 아니라 전체를 바라보는 지혜와 인간의 품격이다. 『천부경』의 하나와 우주 질서를 바둑에 비추어 읽을 때도 중요한 것은 숫자의 신비가 아니라 작은 돌 하나가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이다.

신진서와 박정환을 비롯한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이 AI의 과학적 분석에 동양철학의 깊이와 인간의 창의성을 결합한다면, 한국 바둑은 승부의 세계를 넘어 새로운 정신문화의 세계를 열 수 있을 것이다.

후배 기사들은 선배들이 남긴 세계 제패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새로운 바둑을 창조해야 한다.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 못지않게 세계인이 한국 바둑을 배우고 그 철학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 바둑의 새로운 기수들은 신진서와 박정환을 비롯한 오늘의 기사들이다. 이들이 AI라는 현대 문명의 지혜와 동양의 도,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을 함께 발전시켜 나간다면, K-바둑은 세계 최강의 승부를 넘어 세계인이 함께 향유하는 문화로 성장할 것이다.

한국 현대바둑 81년의 역사는 바로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 여자 바둑, 또 하나의 세계를 열다
한국 바둑의 81년을 이야기하면서 여자 바둑의 역사를 소홀히 다룬다면 그것은 절반의 역사만 기록하는 일이 된다.

바둑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문화로 인식되었다. 전문 기사 제도와 대회 운영에서도 여성에게 주어진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한국 여자 바둑은 그런 제약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했다.

루이나이웨이는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세계 여자 바둑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바둑이 국적과 성별을 넘어 실력으로 경쟁하는 세계임을 보여주었다.

박지은은 한국 여자 바둑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높였고, 조혜연은 오랜 기간 정상급 기사로 활약하며 후배들에게 길을 열었다.

그 뒤를 이어 최정이 등장했다.

최정은 여자 바둑의 한계를 규정하려는 오래된 편견에 도전했다. 여자 세계대회에서 수많은 성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남자 기사들과의 경쟁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2022년 삼성화재배에서는 결승에 올라 세계 바둑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상급 통합 세계대회에서 여자 기사가 결승까지 진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바둑사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뒤를 이어 김은지 등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

여자 바둑의 발전은 단순히 여자 기사들의 우승 횟수가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바둑을 즐기고 배우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지는 일이며, 오랫동안 제한되어 있던 가능성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 과정이다.

바둑판에는 흑과 백의 구별이 있지만 남자와 여자의 구별은 없다.

열아홉 줄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승부는 돌을 놓는 사람의 성별이 아니라 수읽기와 판단, 준비와 집중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기에 여자 바둑의 발전은 한국 바둑 전체의 발전이다.

앞으로 한국 바둑이 다시 세계를 선도하려면 여자 기사들의 활동 기회를 더욱 넓히고, 어린 여자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진정한 문화 선진국은 뛰어난 소수의 천재를 배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

한국 바둑의 미래도 그 원칙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정태순, 바다를 경영한 사람이 바둑의 미래를 경영하다
정태순 한국기원 이사장사진연합뉴스
정태순 한국기원 이사장[사진=연합뉴스]

2026년 11월 5일 열린 제9회 바둑의 날 기념식은 그런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정태순 한국기원 이사장과 하근율 대한바둑협회장, 조한승 한국프로기사협회장, 이창호 9단을 비롯한 바둑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태순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바둑의 교육적 가치를 전국에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대회 우승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보다 먼저 바둑의 교육적 가치를 강조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국 바둑이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바둑을 통해 사고력과 인내심을 배우는 일은 그보다 훨씬 긴 미래를 바라보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태순은 바둑계 출신의 전문 행정가가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 해운산업에서 오랫동안 기업을 경영해 온 기업인이다.

장금상선을 이끌며 해운산업의 성장과 국제 경쟁에 참여했고, 한국해운협회장과 아시아선주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2025년 9월 한국기원의 제22대 총재로 추대되었으며, 이후 직제 개편을 거쳐 이사장을 맡았다.

해운업은 바둑과 닮은 점이 많다.

바다에는 고정된 길이 없다. 항로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 항해에서는 날씨와 파도, 해류와 국제정세, 항만의 상황과 시장의 변화까지 살펴야 한다.

선장은 목적지를 알아야 하지만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바뀐다.

기업 경영자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해운시장은 국제무역과 환율, 유가와 운임,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망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면 장기적인 경쟁력을 잃을 수 있고, 지나치게 먼 미래만 바라보면 당장의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바둑의 세력과 실리, 공격과 수비,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해운 경영에서도 중요한 이유다.

정태순이 해운기업을 이끌며 축적한 경험을 한국 바둑의 발전에 접목한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우선 경영의 전문화다. 한국기원이 전통과 관행에만 의존하지 않고 명확한 목표와 책임, 투명한 의사결정과 성과 평가를 통해 운영되는 조직으로 발전해야 한다.

다음은 바둑 산업의 확장이다. 프로기사의 경기 운영뿐 아니라 교육과 방송, 콘텐츠와 디지털 서비스, 국제 교류와 문화사업을 함께 발전시키는 종합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은 세계화다. 한국의 세계적인 기사와 뛰어난 교육 콘텐츠를 하나의 문화적 자산으로 연결해 세계인이 함께 배우고 즐기는 K-바둑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모든 과제가 정태순 이사장의 공식 정책으로 확정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그의 경영 경험과 현재 한국 바둑의 과제를 바탕으로 제시하는 발전 방향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기원이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기원은 80주년을 기념하는 콘텐츠 사업을 진행했고, 현대바둑의 역사와 AI 시대의 미래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바둑의 역사를 기록하고 미래의 방향을 탐색하는 작업은 단순한 기념사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조직이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기업을 경영한 사람이 바둑계의 수장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산업과 시장, 국제 경쟁을 경험한 경영자의 시각이 한국 바둑의 전통적인 운영 방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실사구시와 지행합일, 한국기원이 바뀌어야 할 이유
실사구시는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이다. 지행합일은 앎과 실천이 분리될 수 없다는 양명학의 핵심 가르침이다.

두 개념은 사상사적 기원과 맥락이 서로 다르지만,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이해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조직 경영에 함께 적용할 수 있다.

정태순 이사장이 이끄는 한국기원이 앞으로 이 두 원칙을 중심에 놓기를 기대한다.

한국 바둑이 세계 정상에 올랐다는 과거의 영광만으로 미래를 보장받을 수는 없다.

바둑 인구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어린이들이 바둑을 배우는 환경은 충분한가. 프로기사들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가. 지역 기원은 얼마나 활력을 유지하고 있는가. 여자 바둑의 성장 기반은 튼튼한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교육 콘텐츠와 디지털 서비스는 얼마나 발전했는가.

이 질문에 정확한 통계와 현장의 목소리로 답하는 것이 실사구시다.

문제를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둑의 교육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실제로 학교와 지역사회에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세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해외의 바둑 단체와 협력하고, 다국어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며, 국제적인 대회와 문화행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지행합일이다.

양명학에서 강조하는 치양지(致良知)의 정신도 생각해 볼 만하다.

양지는 인간에게 내재한 도덕적 앎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앎은 관념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바둑을 잘 아는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바둑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둑의 철학을 설명하는 사람이 반드시 바둑의 예의를 실천하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도가 완성된다.

한국기원의 새로운 100년도 이 원칙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기사를 배출하는 조직에서 세계적인 바둑 문화를 창조하는 조직으로, 대회를 운영하는 기관에서 바둑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교육, 문화를 발전시키는 기관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변화가 실현된다면 정태순 이사장의 시대는 한국 바둑의 또 다른 전환기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K-바둑의 세계화, 바둑을 한국의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만들자
오늘날 세계는 한국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K-팝과 K-드라마, 한국 영화와 음식, 한국의 첨단기술과 디자인이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문화의 세계화는 대중음악과 영상 콘텐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에는 오랫동안 축적된 정신문화의 자산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둑이다.

한국 바둑은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증명했다. 조훈현과 이창호, 이세돌과 신진서의 이름은 세계 바둑계에서 깊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세계적인 바둑 문화산업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다르다.

이제 한국은 그 간극을 메워야 한다.

이를 K-바둑의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다.

K-바둑은 단순히 한국 선수가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이 축적한 바둑의 기술과 철학, 교육과 콘텐츠, 문화와 산업을 세계인이 함께 향유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우선 바둑 교육을 세계화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한국형 바둑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베트남어와 인도네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제공할 수 있다.

바둑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부터 전문적인 수련을 원하는 기사까지 단계별 교육 체계를 갖춘다면 한국은 세계적인 바둑 교육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둘째, 바둑 콘텐츠의 세계화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기사들의 명국을 단순한 승부 기록으로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과 철학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영화,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조남철이 해방 직후 한성기원을 설립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적인 역사 드라마가 될 수 있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 관계는 인간의 성장과 세대교체를 보여주는 훌륭한 서사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이미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문명사적 사건이다.

신진서와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는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미래를 보여주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셋째, 바둑을 국제 문화교류의 중요한 매개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바둑이라는 공통의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바둑판 앞에서는 같은 규칙으로 대화할 수 있다.

바둑은 언어가 달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주,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도 바둑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세계화는 서울의 한국기원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해외의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지도자 한 사람, 한국 바둑의 매력을 알리는 해설자 한 사람, 새로운 국제대회를 만드는 후원자 한 사람이 모두 세계화의 주역이다.

넷째, 바둑과 AI를 결합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바둑 교육과 연구, 해설과 방송,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과거에는 프로기사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고급 분석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하도록 제공할 수 있고, 어린이의 수준에 맞춘 맞춤형 교육도 가능하다.

AI를 활용한 가상 대국과 국제 온라인 대회, 실시간 해설 서비스와 교육 플랫폼은 K-바둑의 세계화를 가속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투자와 전문적인 경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국제 해운시장을 경험한 정태순 이사장의 경영 능력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바다는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다. 해운기업은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협력 없이는 성장하기 어렵다.

바둑 역시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국 바둑의 미래는 한국 안에서만 완성될 수 없다.

세계인이 한국 바둑을 배우고, 한국의 기사들과 교류하며, 한국이 만든 콘텐츠를 즐길 때 비로소 K-바둑은 세계적인 문화가 될 수 있다.

제9회 바둑의 날, 영광의 주인공은 세계 챔피언만이 아니다

2026년 11월 5일 열린 제9회 바둑의 날 기념식에서는 모두 13건의 표창이 수여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은 해성산업과 장계상 광주광역시바둑협회장 등 바둑 발전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 돌아갔다. 대한체육회장 표창과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표창 역시 프로기사와 기업인, 지역 바둑협회 관계자, 교육자와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에게 수여됐다.

이 명단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수상자들은 모두 세계적인 프로기사만이 아니다. 기업인과 지역 바둑협회 관계자, 교육자와 언론인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오늘 기념식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바둑의 역사는 승리한 사람들만의 역사가 아니다. 누군가는 대회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했고, 누군가는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쳤으며, 누군가는 지역의 바둑 동호회를 운영하고 대회를 개최했다. 또 누군가는 바둑의 가치를 기사와 방송으로 세상에 알렸다.

세계 챔피언은 무대의 중앙에 서지만, 그 무대를 만든 사람들은 대개 뒤편에 있다.

성공한 사람의 이름은 기억되지만 그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수많은 사람의 헌신은 쉽게 잊힌다.

바둑은 그 사실을 일깨워 준다.

한 판의 바둑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돌은 마지막에 놓인 한 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한 점이 힘을 발휘하려면 앞서 놓인 수많은 돌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돌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이미 잡힌 돌이 전체의 형세를 유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조남철이 한국 바둑의 첫 돌을 놓았다면, 그 뒤를 이은 수많은 바둑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돌을 놓았다. 어떤 돌은 역사에 크게 기록되었고, 어떤 돌은 이름 없이 사라졌지만, 그 모든 돌이 모여 오늘의 한국 바둑을 완성했다.

이번 바둑의 날 기념식에서 정태순 이사장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적 가치를 강조한 것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제 한국 바둑은 세계 챔피언을 배출하는 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바둑을 통해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청소년들이 인내와 집중력을 배우며, 중장년층이 삶의 여유를 찾고, 노년층이 지적 활동과 사회적 교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둑은 특정한 연령과 계층만의 문화가 아니다.

어린아이와 노인이 같은 바둑판 앞에 앉을 수 있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말없이 대국할 수 있다. 국적과 직업, 경제적 형편이 달라도 흑과 백의 돌 앞에서는 누구나 동등한 상대가 된다.

이것이 바둑이 가진 문화적 힘이다.
 
한국 바둑 100년, 도와 덕과 경영이 하나가 되는 길
2045년이면 한국 현대바둑은 100주년을 맞는다. 앞으로 19년이다.

그때 한국 바둑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있을까.

세계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한국 바둑도 좋다. 세계 랭킹의 상위권을 한국 기사들이 차지하는 모습도 자랑스럽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미래를 그려볼 필요가 있다.

전국의 어린이들이 바둑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청소년들이 승부를 통해 인내와 책임을 배우며, 중장년층이 바둑을 통해 삶의 여유를 찾고, 노년층이 친구들과 함께 바둑판 앞에서 지혜를 나누는 사회다.

한국의 바둑 교육이 세계 여러 나라의 학교에서 활용되고, 한국의 기사들이 세계적인 문화인으로 존경받으며, 한국기원이 세계 바둑 문화의 중심 기관으로 성장하는 미래다.

그 미래를 위해서는 도와 덕, 경영이 함께 가야 한다.

도는 방향이다. 왜 바둑을 두고, 왜 바둑 문화를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덕은 사람이다. 바둑을 통해 인간의 인격과 관계를 발전시키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경영은 실천이다. 좋은 철학과 목표를 실제 제도와 사업으로 구현하는 능력이다.

도만 있고 경영이 없으면 이상은 현실이 되지 못한다.

경영만 있고 도가 없으면 조직은 이익과 성과만을 추구하게 된다.

덕이 없으면 도와 경영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과 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세 가지가 함께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문화가 만들어진다.

정태순 이사장이 이끄는 한국기원이 이 조화를 이루는 기관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그의 해운 경영 경험은 현실을 읽는 능력을 제공할 수 있고, 한국 바둑의 오랜 전통은 문화적 깊이를 제공할 수 있으며, AI 시대의 새로운 기술은 미래를 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한국기원이 앞으로 어떤 제도를 만들고 어떤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 세계 정상에 도전하는 기사, 지역에서 바둑 문화를 지키는 지도자, 바둑을 통해 삶의 기쁨을 찾는 시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실사구시와 지행합일이 지향해야 할 한국기원의 모습이다.
 
마지막 한 수, 한국 바둑은 이제 우주를 향해 나아간다
다시 바둑판을 바라본다. 열아홉 줄의 가로와 세로가 만나 361개의 교차점을 만들고, 그 위에 흑과 백의 돌이 놓인다.
그 작은 공간에서 우주의 변화와 인간의 삶이 펼쳐진다.

흑과 백은 서로 다투지만 하나의 바둑을 완성한다. 공격과 수비는 서로 다르지만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과거와 미래는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 놓는 한 수를 통해 연결된다.

『도덕경』의 무위자연, 『논어』의 인의예지신, 『주역』의 음양과 변화, 『천부경』의 하나와 우주 질서는 서로 다른 사상적 전통이지만, 바둑이라는 작은 세계를 통해 인간이 성찰할 수 있는 공통의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언제 싸우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가.

자신의 이익과 전체의 조화를 어떻게 함께 이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유한한 삶 속에서 어떻게 무한한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

바둑은 그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생각할 기회를 준다.

1945년 조남철이 한성기원을 설립했을 때 그가 놓은 첫 번째 돌은 작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한 수는 81년의 세월을 건너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다.

김인과 조훈현, 서봉수와 유창혁, 이창호와 이세돌, 박정환과 신진서는 각자의 시대에서 새로운 수를 놓았다.

어떤 사람은 세계의 문을 열었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기풍을 만들었으며, 어떤 사람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서 문명사적인 도전을 감행했다.
그 모든 수가 모여 한국 바둑 81년의 역사가 되었다.

이제 정태순 한국기원 이사장에게도 새로운 바둑판이 주어졌다.

그가 놓아야 할 돌은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한 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 바둑의 교육과 산업, 문화와 철학, 국내의 저변과 세계의 시장을 함께 연결하는 큰 포석이어야 한다.

해운 경영자가 바다에서 배운 지혜는 바둑판에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바다에는 정해진 길이 없지만 항해에는 원칙이 있다. 파도와 바람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목적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
바둑도 그렇다.

세계 바둑의 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인간의 지혜와 품격, 문화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실사구시로 현실을 읽고, 지행합일로 변화를 이루며, 『도덕경』의 무위자연으로 조직의 조화를 살피고, 『논어』의 인의예지신으로 사람을 존중하며, 『주역』의 변화 정신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영이 실현된다면 한국기원은 단순한 바둑 행정기관을 넘어 세계적인 정신문화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K-바둑의 세계화는 한국이 세계를 이기는 일이 아니다.

한국이 축적한 지혜를 세계와 나누는 일이다.

바둑을 통해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다른 세대가 대화하며, 인간과 인공지능이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K-바둑의 미래다.

2026년 11월 5일, 제9회 바둑의 날 기념식은 그렇게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날은 단순히 한국 현대바둑 81년의 역사를 기념한 날이 아니다.

조남철이 시작한 기도보국의 정신을 계승하고, 한국 바둑이 세계와 미래를 향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한 날이다.

한국 바둑의 새로운 100년은 승부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문화를 넓혀가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바둑판 위에는 흑과 백이 있지만 인간의 삶은 흑백으로만 나눌 수 없다.

승리 속에도 패배의 씨앗이 있고, 패배 속에도 새로운 승리의 가능성이 있다. 작은 돌 하나가 전체의 형세를 바꾸고, 버려진 돌 하나가 더 큰 승리를 가능하게 한다.

인생도 그렇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바둑판 위에서 살아간다. 누구나 언젠가는 마지막 돌을 놓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남긴 한 수는 다음 세대의 바둑판에서 다시 살아난다.

조남철이 놓은 첫 돌이 이창호와 신진서의 시대까지 이어졌듯이, 오늘 놓는 돌도 먼 훗날 누군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천부경』의 일시무시일과 일종무종일을 다시 떠올린다.

시작은 끝없는 시작이고, 끝은 끝없는 끝이다.

한 판의 바둑은 끝나지만 바둑의 도는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은 끝나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한국 바둑의 81년은 지나갔지만 새로운 100년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바둑은 스포츠를 넘어 문화이고, 문화를 넘어 철학이며, 철학을 넘어 인간과 우주의 질서를 사유하는 도(道)다.

그리고 그 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흑백의 돌은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우주는 끝이 없다. 한국 바둑 81년, 이제 그 작은 돌 하나로 세계와 미래를 다시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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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닌 사회규범이고, 일본 국교인 신도(일본 불교에서 파생), 불교, 기독교(일본의 소수신앙)만 강제로 포교하던 일제강점기 발상에서 빚어진, 소수 표본조사는 연원도 얼마 않되는 무개념의 주권이 없는 잘못된 발상에서 행해진 것입니다.5,000만 한국인뒤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일본에서는 천황). https://blog.naver.com/macmaca/224090602113
  • (Eastern Orthodox Church)계열도, 고대 세계종교 성립당시의 역사적 지분이 있어왔음. 하느님과 예수님을 숭배하는 이 역사적 종교지분은, 지속성이 있어왔으므로, 전쟁, 경제등과는 별개문제임. 기타 가톨릭에 대항해 새로 만든 영국 성공회나 미국 개신교는 항거형태의 신흥 종교에 해당되는데, 종교보다는 군사력이 강해서 국력을 인정받는 영국과 미국임. 다만, 세계종교 가톨릭은 세계사의 수천년 전통으로, 세계종교 유교국 일원인 한국에서는 세계종교 가톨릭의 세계종교 자격을 존중해 주는게 옳습니다.일본기준인, 인, 유교는 종교
  • 패전국에 UN적국,전범국이며, 한국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한 영원한 적국 일본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나 그 추종세력들이, 주권없이 불러대는 원숭이 노예합창도 무서운 시대입니다.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고대에,하느님 숭배하는 세계종교로 성립되어 수천년 이어진 유교와 가톨릭. 서로마는 가톨릭,동로마는 정교회로 이어짐. 그리스,러시아,동유럽의 동방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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