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피지컬 AI 열풍이 뜨겁다.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피지컬 AI는 로봇과 자율주행차, 드론에서 AI가 판단·제어하는 자율제조 시스템까지 아우른다. 그 열풍의 중심에는 사람처럼 움직이고 일하며 일상과 생산현장을 바꿀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큰 기대가 있다. 그러나 거대한 가능성이 곧 눈앞의 현실은 아니다. 우리가 이 열풍을 산업 도약의 기회로 만들려면 기대가 비추는 빛과 현실이 드리운 그림자를 함께 직시해야 한다.
휴머노이드가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는 사람을 닮은 외형보다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 있다. 가정, 사무실, 공장 등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는 공간과 시스템은 사람의 신체와 행동방식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로봇이 사람의 신체와 작업능력을 재현한다면 생활·업무·생산 환경을 전면 개조하는 막대한 투자 없이 기존 시설과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 단순·반복·위험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하고 인력 부족을 해소하며 생산성을 높일 잠재력이 여기에 있다.
다만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고 사람의 일을 곧바로 대신할 수는 없다. 공장의 정밀 작업부터 가정의 다양한 가사까지 능숙하게 수행하면서 경제성도 갖춘 범용 휴머노이드가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큰 난제 중 하나는 지능과 신체의 발전 속도 차이다. AI는 언어 이해와 시각 인식, 행동계획에서 빠르게 발전하지만 손끝의 감각과 정교한 조작, 관절의 내구성은 다른 문제다. 작은 부품을 집어 정확한 위치에 맞추고, 삽입 과정의 미세한 저항을 감지해 힘과 각도를 조절하려면 정교한 센서와 구동부, 제어 기술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손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구현할수록 구조가 복잡해져 무게와 발열, 내구성, 원가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인간에게 쉬운 일이 로봇에게는 어렵다는 모라벡의 역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계공학과 정밀제조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그렇다고 빠르게 발전하는 지능이 현장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이미 도달한 것은 아니다. 낯선 물체와 돌발 상황에 대응하고, 작업을 연속 수행하며 오류에서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은 여전히 검증이 필요하다. 짧은 시연의 성공이 하루 종일 안정적으로 일하는 능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 생산성과 경제성을 평가하려면 사람의 개입과 원격조작은 물론 충전·수리로 멈추는 시간까지 따져야 한다. 지능과 신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사람의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장밋빛 전망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미국의 주요 기업들도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는 중이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AI와 자동차 양산 경험을 바탕으로 옵티머스의 초기 생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AI부터 하드웨어까지 직접 개발하고 대량생산으로 연결할 역량이 강점이지만, 로봇 생산과 다양한 정밀 작업 수행은 별개의 문제다. 현대차그룹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축적된 동작제어 기술과 현대차의 제조 경험을 결합해 아틀라스의 실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 부품 분류·배치 작업에 투입하고, 2030년부터 조립 라인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실제 공장에서 배우고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은 유리하지만, 현장 훈련을 넘어 생산라인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며 경제성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피규어 AI는 BMW에서 부품 취급을 실증하고 차세대 모델로 적용 업무를 넓히고 있다. 시각·언어·행동의 통합이 강점이지만 제한된 공정의 성과를 다양한 현장으로 확장해야 한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디짓은 미국 물류기업 GXO의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옮기며 상용 운영 경험을 쌓고 있다. 명확한 용도의 작업부터 실용성을 입증한 사례지만, 이를 다양한 일을 수행하는 범용 능력으로 확대하려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1X 테크놀로지스의 가정용 네오는 부드러운 구조와 인간 친화적 설계가 특징이다. 아직 익히지 못한 작업은 전문가의 원격 지원을 받아 수행하고 학습하며, 자율성의 고도화와 가정 내 사생활 보호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과 탄탄한 부품 공급망을 바탕으로 제품화와 양산에 속도를 내며 휴머노이드 산업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유니트리는 뛰어난 운동 능력과 낮은 가격으로 연구·개발 시장을 넓히고 있다. 다만 민첩하게 움직이는 능력이 정교하게 일하는 능력으로 이어지려면 추가적인 기술 축적이 필요하다. 유비테크는 산업 현장 적용을 확대하고 로봇이 스스로 배터리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연속 작업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의 안정성과 유지비 절감이 확산의 관건이다. 2026년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 1위인 애지봇은 다양한 제품군과 대규모 데이터 수집을 기반으로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늘어나는 출하량을 고객의 생산성 및 투자회수율 향상으로 연결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갤봇은 바퀴형 하체와 양팔을 결합해 유통·산업 현장의 물체 취급에 집중한다. 사람의 외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작업에 필요한 이동성과 조작 능력을 우선한 접근이다. 딥로보틱스는 사족보행 로봇에서 쌓은 이동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방진·방수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를 개발하여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러한 강점이 실제 작업능력과 장기 운영의 신뢰성으로 이어지는지 많은 검증 단계가 남아 있다. 미·중 기업들도 장기적으로는 범용 로봇을 지향하지만, 당장은 특정 작업을 제대로 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쟁의 단위는 완성품을 넘어 생태계로 커지고 있다. 로봇 손과 그리퍼, 모터·감속기·액추에이터, 힘·토크·촉각 센서, 배터리와 전력제어가 휴머노이드의 신체 성능을 결정한다. AI 반도체와 로봇 파운데이션모델, 시뮬레이션, 작업 데이터는 학습능력을 좌우한다. 여기에 시스템 통합, 안전 검증과 유지보수까지 망라한다. 손의 자유도나 로봇 가격 하나로 경쟁력을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완성품의 화려한 시연 뒤에서 부품과 운영 기술의 병목을 해결하는 기업에도 큰 기회가 있다.
휴머노이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기술의 현실, 미·중의 경쟁 양상을 함께 보면 한국의 전략도 분명해진다. 인간을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서 해방하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목적을 중심에 두되, 기술의 성숙도와 현장의 경제성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미·중의 개발 속도와 투자 규모에 휩쓸리기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실질적 성과를 쌓아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의 강점 분야에서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특화 전략이다. 미·중의 범용 경쟁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제조현장의 숙련작업, 의료·돌봄 지원, 교육과 문화서비스에서 차별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 특히 제조 특화가 유력한 승부수다. 축적된 공정 노하우와 현장 데이터를 로봇 기술에 결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화는 집중할 분야를 정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성패는 고객이 비용을 지불할 만큼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둘째, 기술보다 목적을 앞세우는 전략이다. 제조 로봇의 목적은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고 작업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두 다리보다 바퀴가 효율적이고 다섯 손가락보다 전용 그리퍼가 유리하다면 그 형태를 택해야 한다. 사람을 닮는 데 집착할수록 불필요한 복잡성과 비용을 떠안을 수 있다. 구현해야 할 것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현장에 필요한 작업능력이다.
셋째, 비즈니스모델에 맞는 제조시스템을 설계하는 전략이다. 같은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대량생산에서는 전용 자동화 설비가 속도와 정밀도, 경제성에서 유리하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넘어 개인화 생산으로 갈수록 작업 전환의 유연성이 중요해지고 휴머노이드의 활용 가치도 커진다. 다만 학습과 작업 전환에 드는 시간과 비용까지 따져야 한다. 어떤 로봇을 도입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생산할지가 먼저다.
넷째, 로봇 단품을 넘어 제조시스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로봇 한 대의 작업이 빨라져도 앞뒤 공정과 물류가 막히면 공장 전체의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는다. 도입 대수보다 생산시간과 불량률, 가동률과 납기, 총소유비용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수요기업이 문제를 정의하고 로봇·부품기업, 시스템 통합기업, 대학이 함께 해법을 찾는 산학연 협력이 중요하다. 중소 제조기업도 활용할 수 있는 실증·지원체계를 갖춰 현장의 성과를 산업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
다섯째, 글로벌 협력 전략이다. 휴머노이드 생태계는 한 나라가 모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하다. 미국의 AI·컴퓨팅, 일본의 정밀부품과 생산기술, 중국의 공급망과 제품화 역량을 한국의 제조 강점과 연결할 필요가 있다. 한미·한일·한중 협력은 분야별 상호보완성을 바탕으로 추진하되 수출통제와 데이터 보안, 지식재산권과 공급망 의존도 등 지정학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핵심 기술과 부품에서는 독자 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협력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휴머노이드의 미래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실질적 가치를 입증하는 현장에서 결정된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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