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2026년 세계 산업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피지컬 AI다. AI가 현실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해 스스로 행동하는 피지컬 AI가 새로운 핵심 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휴머노이드 로봇이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그 출발점은 지난해 CES(소비자전자쇼) 2025였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인식 AI, 생성형 AI, 에이전트 AI에 이어 다음 단계로 피지컬 AI를 제시한 이후 세계적인 관심과 투자가 로봇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올해 1월 CES , 3월 MWC와 엔비디아 GTC, 4월 하노버 산업박람회, 7월 상하이 WAIC(세계AI대회), 8월 베이징 WRC(세계로봇컨퍼런스)를 거치면서 피지컬 AI는 더 이상 미래의 개념이 아니라 본격적인 산업 경쟁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CES 2026이 그 전환의 시점이었다. 현대차그룹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연구개발을 넘어 생산과 고객 배치를 전제로 한 완전 전동식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최초로 공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전 배치는 2028년부터 조지아주에 위치한 HMGMA에 우선 투입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데이터와 학습, 시뮬레이션에서 인지·추론과 실제 로봇 구동까지 연결하는 피지컬 AI 생태계를 확대했다. 로봇 경쟁이 더 이상 개별 하드웨어의 성능 경쟁이 아니라 ‘AI 모델, 데이터, 시뮬레이션, 반도체·컴퓨팅, 하드웨어·제어’를 아우르는 풀스택 경쟁으로 바뀐 것이다.
3월 MWC에서는 AI 로봇이 통신과 엣지 컴퓨팅의 새로운 수요처로 등장했다. 중국 애지봇과 차이나텔레콤, ZTE 등이 다수의 휴머노이드와 클라우드·엣지를 저지연 통신으로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GLOMO상을 받았다. 같은 달 엔비디아 GTC에서는 휴머노이드용 AI 모델인 GR00T N1.7, 가상공간에서 훈련하는 Isaac Lab 3.0, Newton 물리엔진 등이 공개됐다. 실제 로봇에서 데이터를 일일이 수집하는 대신 가상공간과 합성 데이터를 활용해 로봇을 대규모로 학습·검증하는 개발체계가 본격화된 것이다.
4월 하노버 산업박람회에 이르러 질문은 한 단계 더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공장에서 실제 돈을 벌 수 있는가”로 이동한 것이다. 애자일로봇, 헥사곤의 산업용 휴머노이드가 생산현장의 작업을 시연했고, 쉐플러는 파일럿 성공을 전제로 향후 7년에 걸쳐 약 1000대의 휴머노이드를 글로벌 생산망에 투입하기로 했다. 피지컬 AI가 연구개발을 넘어 제조업의 생산성과 원가 경쟁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중국에서 나타났다. 7월 WAIC 2026에서는 전체 1100여 개 참가기업 가운데 피지컬 AI 분야에만 애지봇, 유니트리, 갤봇 등 20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범용 휴머노이드와 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로봇 손과 액추에이터·센서 등 핵심 부품, AI 모델과 소프트웨어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강력한 피지컬 AI 생태계를 보여줬다.
8월 베이징 WRC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뚜렷해졌다. 올해 주제부터가 ‘인간과 로봇의 공생, 생산과 수요의 융합’이었다. 373개 기업이 3000여 개 로봇 제품을 전시했다. 로봇들은 춤과 격투를 넘어 휴대전화 생산, 소포 분류, 의약품 피킹, 봉제, 가사, 수소충전, 소방 등 실제 업무를 시연하거나 현장 배치 사례를 제시했다. 갤봇은 최대 50㎏급 화물을 취급하는 물류 작업과 약국에서 의약품을 피킹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DexForce의 휴머노이드는 휴대전화를 포장하는 작업을 시연했다. 중국 로봇산업의 경쟁축이 이제 ‘현장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일하고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휴머노이드가 제시하는 가능성은 첫째로 과거 로봇 자동화의 근본적 약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존 로봇은 사람 중심의 생산라인을 전면 재설계해야 해서 설비투자 부담이 큰 반면 휴머노이드는 추가 인프라 투자 없이 자동화 구현이 가능하다. 둘째로 로봇의 세 가지 핵심 능력인 이동, 조작, 지능이 동시에 발전하면서 사람의 언어와 시각정보를 이해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는 지능형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 가상세계에서 로봇을 훈련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어 디지털 트윈과 월드모델, 합성 데이터를 활용하면 로봇 수천 대를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도 수많은 상황을 학습시킬 수 있다. 로봇산업에서도 AI의 ‘스케일링 법칙’이 작동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WRC와 함께 열린 세계휴머노이드로봇대회에서 중국의 톈궁 울트라가 100m를 8.64초에 달려 인간 기록을 앞서는 놀라운 기술발전을 보였다. 하지만 같은 대회에서 로봇들은 사람에게는 훨씬 쉬운 물건 정리, 케이블 연결, 장애물 대응 같은 작업에서 넘어지고 실수를 반복했다. 사람보다 빨리 달리는 로봇을 만드는 것과 사람보다 경제적으로 일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 손이 문제다. 걷고 뛰는 능력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물체를 인식하고 적절한 힘으로 집어 돌리고 끼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촉각, 정밀제어, 양손 협업이 필요하다.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는 일반화 능력과 장시간 무고장 운전, 배터리, 안전성도 해결해야 한다. 더 큰 벽은 투자수익률(ROI)이다. 로봇의 경제성은 구매가격만이 아니라 작업속도와 성공률, 가동률, 고장률, 배터리 충전, 유지보수, 안전설비, 소프트웨어와 생산시스템 통합비용까지 포함한 총소유비용(TCO)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해진 위치에서 초고속·고정밀 반복작업을 하는 자동차 용접이나 반도체 이송 같은 업무라면 수십 년간 발전해 온 기존 산업용 로봇이 휴머노이드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그렇다면 로봇 선도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은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가? 기술, 자본, 인력과 시장규모에서 압도적인 두 나라를 상대로 한국이 정면승부를 벌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200여 척의 일본 대함대와 넓은 바다에서 정면승부하지 않고 좁은 울돌목에 끌어들여 대승을 거뒀듯이 우리에게도 ‘울돌목’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동차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조선, 기계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기업과 공장을 갖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조기반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축적된 방대한 제조 도메인 노하우와 현장 데이터다. 우리의 전략적 방향은 첫째로 범용보다 제조 특화 피지컬 AI에 집중해야 한다. 가공, 조립, 검사, 물류, 설비관리, 위험작업 등 산업현장에서 ROI가 나오는 작업부터 공략해야 한다. 여기에는 꼭 두 발 휴머노이드만 포함될 필요도 없다. 기존 산업로봇, 협동로봇, 자율이동로봇(AMR), 모바일 매니퓰레이터에 AI를 결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면 그것도 답이다. 둘째로 로봇산업은 ‘로봇으로 제조업을 혁신하는 산업’으로 관점을 넓혀야 한다. 제조기업과 로봇기업, AI기업이 공동으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게 해야 한다. 성공의 기준도 생산성이 얼마나 올라갔고 불량률과 인건비, 산업재해가 얼마나 감소했으며 투자회수기간이 얼마나 짧아졌느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 제조현장을 세계 최고의 피지컬 AI 데이터 공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로봇이 실제 조립과 검사, 물류작업에서 만들어내는 데이터와 숙련공의 작업 데이터를 축적해 최고의 로봇 파운데이션모델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로봇 경쟁력은 하드웨어보다 고품질 실제 작업 데이터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넷째로 모든 것을 국산화하려는 사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미국의 AI·로봇 파운데이션 모델과 컴퓨팅 플랫폼, 중국의 경쟁력 있는 모터·감속기·액추에이터·센서와 부품 생태계, 일본과 유럽의 정밀기계 및 산업자동화 기술을 과감하게 활용해야 한다. 대신 우리는 자동차·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제조 도메인에서 시스템 통합과 응용기술, 데이터와 실제 생산성 향상 능력을 장악해야 한다.
미국이 피지컬 AI의 ‘두뇌와 플랫폼’을 선점하고 중국이 ‘몸과 규모’를 앞세운다면 한국은 ‘제조 도메인 노하우 및 데이터’에서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해야 한다. 화려한 범용 휴머노이드 경쟁을 뒤쫓는 대신 우리가 이미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제조현장을 AI 로봇의 거대한 실증장으로 만들고, 여기에서 검증된 제조 특화 피지컬 AI를 세계에 수출해야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우리의 승부처는 제조 피지컬 AI라는 울돌목이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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