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서 쌓아 올린 군대…사우디 국방의 허상

2022년 3월 25일,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홍해 연안 도시 제다. 세계 최고 속도를 겨루는 자동차 경기인 포뮬러원(F1) 그랑프리 연습 주행이 한창이던 서킷 너머로 시커먼 연기 기둥이 치솟았다. 불과 10여㎞ 떨어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유류 저장시설이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이다. 공격을 감행한 단체는 국경 너머 예멘의 후티 반군이었다. 미국산 첨단 방공망을 도입하고 한 해 수십조원을 국방비에 쏟아붓는 중동 최대 군사 강국이, 세계가 지켜보는 F1 무대 한복판에서 반군에 체면을 구긴 순간이었다.
 
사진AI 제작
[사진=AI 제작]
 
1. 후티 반군은 누구인가: 소총 들던 산골 반군, 미사일 쏘는 군대가 되다
후티 반군은 예멘 서북부 상당 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이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은 ‘사다 전쟁’을 벌였다. 후티 반군은 전쟁 초기에 소총과 경무기를 중심으로 전투를 치르는 지역 무장 세력이었다. 그들은 예멘 정부군과 치열한 장기전을 벌이며 실전 전투 경험을 축적했다. 주로 게릴라전과 산악 전투로 정부군과 맞섰다. 2014년에는 수도 사나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정부군이 보유하고 있던 군사시설과 무기체계에도 접근하며 전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특히 전차, 탄도미사일을 대거 확보하며 단순 지역 무장 세력에서 위협적인 군사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같은 시아파 계열인 이란의 군사 지원으로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드론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란은 단순히 무기를 지원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립·개조 기술까지 전수하며 후티 반군의 성장을 도왔다.
 
로이터 통신,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후티 반군의 최고 지도자 압둘말리크 알후티가 배후에서 후티 반군을 이끌고 있다. 알후티는 주로 영상 연설을 통해 대중 앞에 나서며 공개 석상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스럽게 활동한다. 영상에서도 대부분 예멘 전통 복장에 전통 단검 ‘잠비야’를 차고 등장한다. 그와 직접 대면한 사람을 찾기가 거의 어렵고 외국 관리를 만날 때조차 화상으로 만난다고 한다. 알후티는 후티 반군을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이념적으로 무장한 전투 세력으로 결속시켰다고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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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우디는 왜 예멘 전쟁에 뛰어들었나: 해협과 동맹을 잃을 수 없었던 사우디
수니파인 사우디는 후티 반군을 이란의 대리 세력으로 간주했다. 시아파인 이란이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에 이어 사우디 남쪽 국경 너머까지 영향력을 넓히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지역 패권 경쟁이 예멘으로 옮겨붙은 셈이다. 패권 경쟁은 곧장 국경 충돌로 이어졌다. 2009년에 후티 반군은 사우디군과 국경에서 충돌했다. 적대 세력이 예멘 전체를 장악하는 것을 사우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로 33년간 집권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물러났다. 2012년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넘겨받았지만, 과도정부는 정치·경제난을 수습하지 못했다. 이때 후티 반군은 세력을 급속도로 넓혔고, 2014년 9월 수도 사나를 장악했다. 궁지에 몰리자 하디 대통령은 2015년 초 남부 아덴을 거쳐 사우디로 망명했다. 후티 반군이 예멘 북부를 장악하고 남부 지역인 아덴까지 밀고 내려오며 예멘을 집어삼키려 했다.
 
사우디는 같은 해 3월 아랍 국가 연합군을 모아 후티 반군에 공습을 시작하면서 예멘 전쟁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사우디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하디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합법 정부를 복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홍해 남쪽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후티 반군 손에 넘어가면 사우디의 원유 수출로와 국제 해운이 위협받는다는 전략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공습에는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 등 걸프 4개국과 이집트·요르단·모로코·수단이 참여했고, 사우디(100대)를 포함한 9개국이 전투기를 약 185대 가까이 동원했다고 사우디 계열 위성방송 알아라비아가 보도했다.
 
3. 사우디는 왜 후티 반군에 쩔쩔매나: 세계 8위 국방비, 반군을 못 꺾는다
후티 반군은 예멘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면서 체급을 키웠다. 예멘 인구는 약 4000만 명이다. 미국 국무부는 이 가운데 70~80%가 후티 반군 지배 지역에 사는 것으로 추정한다. 수도 사나와 호데이다, 이브 등 서부 고원과 홍해 해안에 인구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예멘 정부가 지배하는 하드라마우트, 마흐라 등 동부는 땅은 넓지만 대부분 사막이어서 사는 사람이 적다. 국토의 3분의 1 정도를 쥔 후티가 인구는 3000만 명 안팎을 거느리게 된 셈이다. 병력을 모으고 세금을 걷을 기반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다. 반군이라는 이름과 달리 웬만한 중동 국가에 맞먹는 체급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패권국인 사우디는 국방비 지출에 수백억 달러를 쏟는 나라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사우디의 지난해 국방비는 832억 달러로 세계 국방비 지출 8위를 기록했다. 478억 달러를 국방비에 쓴 한국보다 약 1.7배 더 쓴 것이다. 사우디는 70년대부터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고 국방비에 투자했다. 70년대 중반부터 사우디는 거의 모든 해 세계 국방비 지출 ‘top 10’ 자리에 있었다. 심지어 2015년과 2017년에는 미국, 중국에 이어 국방비 지출 3위를 기록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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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제작]

천문학적인 국방비 지출이 무색하게 사우디는 10년 넘게 후티 반군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군사 전문가들은 실전 경험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볼프크리스티안 파에스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 통신에 "장비와 돈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훈련과 사기, 지휘력이 승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나타샤 린드스테트 영국 에식스대 교수도 포브스 기고에서 "사우디는 군의 구조적 약점을 고치기보다 눈에 띄는 무기 구매를 우선해 왔다"고 지적했다.
 
군을 일부러 약하게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레이 타케이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사우디 왕정이 쿠데타를 방지하려고 "군을 약하게 유지해 왔다"고 진단했다. 1952년 이집트, 1958년 이라크, 1969년 리비아에서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왕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1962년에는 예멘에서도 장교들이 이맘 왕정을 뒤엎었다. 이를 지켜본 사우디 왕실은 군에 힘이 쏠리지 않도록 정규군과 별도로 왕실에 충성하는 국가방위군을 두고 지휘 계통을 쪼갰다. 쿠데타는 방지했지만, 그 대가로 부대 간 엇박자라는 약점을 떠안은 셈이다.
 
이달 들어 후티 반군의 공격은 사우디 본토 깊숙이 파고들었다. 후티는 6일부터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과 남부 아브하 공항에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잇달아 쏟아부었다. 8일에는 활주로에 있던 사우디아항공 여객기가 파괴돼 기장 등 3명이 숨졌다. 10일에는 탄도미사일이 리야드 공항 3·4터미널을 직격해 13명이 숨지고 300여 명이 다쳤다. 이달 공항 공격으로 지금까지 최소 17명이 숨지고 330명 넘게 다쳤다. 하늘길은 끊겼다. 사우디 민간항공청은 리야드 공항을 폐쇄했고, 루프트한자·에어인디아 등 외국 항공사도 리야드 노선 운항을 멈췄다. 공항은 25일에야 국내선과 일부 국제선만 부분 재개했고, 피격된 3‧4 터미널은 여전히 문을 닫은 상태다. 동부 담맘 공항도 11일 공격 받았다.
 
동맹국 미국도 몸을 사리고 있다. 미 국무부는 21일 사우디 주재 공관의 비필수 인력과 가족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후티 반군은 정유시설 등 에너지 기반 시설까지 겨냥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 공격받자, 국제유가도 요동치고 있다. 후티가 사우디 내 주요 시설을 다시 공격했다고 밝힌 22일(현지 시각)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은 하루 새 4% 뛰어 배럴당 113달러를 넘어섰다.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사우디에 기대는 한국으로서도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이제 후티의 미사일은 수도 리야드의 관문까지 날아든다. 사우디는 2030년 리야드 엑스포와 2034년 월드컵을 유치하며 세계의 손님을 불러 모으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정작 손님을 맞을 공항조차 반군의 미사일로부터 지키지 못하고 있다. 최신 무기를 쌓는 것만으로는 강군이 되지 못한다. 모래 위에 쌓아 올린 사우디의 군대가 11년째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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