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말도 많던 뜨거운 감자인 대미 투자가 이제 첫 단추를 끼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대미 제1호 투자 사업으로 텍사스주 엔시날(Encinal) 지역의 가스복합화력발전 건설사업을 확정한 데 이어, 제2호와 제3호 프로젝트로 원전 8기 건설 및 알래스카 LNG 개발사업에 대한 막바지 검토 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미·중 양강의 패권 경쟁이 국제 정치경제의 상수로 굳어진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안보·통상 환경은 위태롭기 짝이 없고, ‘정치가 경제를 뒤흔드는’ 현실이 일상화되었다. 정치 절대 우위의 환경 속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은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렵다.
뭐니 뭐니해도 경제의 본질은 실물(實物)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금융·주식시장과 달리 든든한 실물이 우리의 자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 원리의 확립된 교훈 앞에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은 과거의 유물로 물러난 듯하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와 시진핑식 국가자본주의가 힘을 쓰면서 산업정책은 다시금 국가 생존의 핵심 전략으로 부활했다. 실물의 주무 부처지만 가장 상위의 부처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있던 산업통상부. 산업정책의 컴백은 산업부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한·미 간 통상교섭에서도 산업부는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재주만 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예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여러 차례 그랬듯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산업부가 나름 온 힘을 다하고 열정을 쏟아붓지만, 정권 교체나 정책 환경이 변하면 '욕만 먹고 문책이나 당하는' 억울한 일이 또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지정학적으로 낀 존재이고 북한이라는 안보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수입 시장과 막강한 기술력 등 강력한 경제적 무기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고, 우리와 치열한 세계시장의 점유율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은 파트너로서 투명하지 못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구조적 딜레마 속에서 고육지책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우방국인 미국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정치·군사·경제적 비용 분담을 늘릴 것을 요구한다.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자니 강력한 통상 보복과 동맹의 균열이 두렵고, 그렇다고 중국이나 다른 곳에 기댈 여지도 없다. 시장 다변화를 외쳐보지만, 유럽도 우리에게 호락호락한 시장이 아니고, 개도국들은 구매력이 약하다. 결국, 한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의 압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미 투자의 합리성에 대한 논의는 몇 개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안보까지 고려한 가장 큰 관점의 메가 합리성이다. 한·미 간 경제적 협력은 단순히 미국의 한국산 수입 관세나 대미 투자보다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이다. 메가 합리성으로 평가하면 대미 투자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넘어 정치·안보 등 비경제적 측면까지 포괄하는 가장 큰 이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적 합리성이다. 대미 투자는 미국의 우리에 대한 관세율을 10% 포인트(25%에서 15%로 인하) 낮추기 위해 출발하였다. 2025년 우리의 대미 수출은 1200억 달러 수준이니 한국 상품에 대해 10%의 관세를 매기지 않음으로써 미국 측의 관세수입 상실은 120억 달러로 추정된다. 한편 한국의 대미 수출은 10% 즉, 120억 달러(탄성치 1로 가정)만큼의 감소를 겪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손실을 커버하는 경제적 합리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한·미 양국은 한국의 대미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로서는 대미 수출 감소보다는 대미 투자가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셋째, 상업적 합리성은 가장 협의의 기준이고 메가 합리성, 경제적 합리성에서 더 나아가 대미 프로젝트에서도 상업적으로 수익을 남기겠다는 것이다. 이 합리성에는 전제 조건과 이슈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제1호 텍사스 프로젝트만 하더라도 상업적 합리성이 과연 확보되는지 여러 의문이 있다. 정부는 223억 달러를 투입하고 20년간 430~454억 달러를 회수할 수 있어 상업적 합리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원리금 상환을 위한 이자 비용은 20년 만기 미 국채금리(연리 5%)에 자금조달 비용과 투자위험도 등 가산금리가 더해지는 것이 기준이다. 이 이자 비용에 대응하고 상업적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부수익률이 16%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텍사스 지역의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등의 전력수요 증가 전망에도 불구하고 전력구매계약(PPA) 부재, 데이터센터의 불확실성 등 부정적 요인이 있고 미래 가격 전망도 어렵다. 상대적으로 추진이 쉬워 보이는 제1호 프로젝트도 상업적 합리성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시간이 걸리는 국회 동의 절차 대신, 상업적 합리성을 선언하고 보고로 가름하는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제2 프로젝트로 검토되는 원전 8기 건설(1200억 달러 추산)에 대해서는 상업적 합리성에 대한 의문이 더 크게 제기되고 있다. 제3 프로젝트인 알래스카 LNG 개발(600억 달러 추산)은 막대한 초기 비용과 인프라 구축의 높은 어려움으로 상업적 합리성이 더욱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제2, 제3의 프로젝트들은 상업적 합리성의 근거가 미흡하여 대미투자특별법상 국회 동의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원전 건설의 경우 웨스팅하우스 이슈, 한국 원전의 미국 진출 등 종합적인 경제적 실익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국회의 상업적 합리성에 대한 동의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회 동의를 받지 않은 제1 프로젝트의 상업적 합리성 문제까지 소환되어 정치적 공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유사한 처지인 일본의 대응은 우리와 다르다. 일본 등은 MOU에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일본이 한국보다 대미 협상을 잘 못했다는 일부의 평가도 나온다. 과연 일본이 상업적 합리성을 경시한 때문일까. 오히려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기준을 넘어 외교·안보·통상 및 공급망 확보라는 메가 합리성이나 경제적 합리성을 계산하는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이익을 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국익을 보호하겠다는 장치로 도입된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기준이, 정작 국내에서는 소모적인 정쟁의 도구로 쓰이면서 자승자박이 되어 대미 투자의 진행을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 상업적 합리성은 우리의 판단에서 끝나지 않고 미국과 협의를 거쳐서 결정되는 사항이다. 양측의 견해가 다를 경우 향후 한·미 관계의 원활한 협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국가적 생존을 위해 내린 정책 결정들이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협의의 잣대로 평가되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나중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또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케이더블유 경제연구소 대표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