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14년 만에 다시 베네치아의 시상대에 섰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에 이은 두 번째 상으로, 한국영화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한국영화의 베네치아 경쟁 부문 수상은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후 14년 만이다. 이 감독 개인으로는 2002년 '오아시스' 감독상 이후 24년 만의 수상이다. 2018년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 거둔 결실이기도 하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시상대에서 이 감독이 꺼낸 말이다. 그는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수상의 기쁨을 말하기보다 자신이 왜 영화를 만드는지부터 꺼낸 셈이다. 해고 노동자 부부와, 그들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얽히며 서로의 삶과 숨긴 욕망을 들여다보는 '가능한 사랑'에서 이 감독이 다시 파고든 것도 결국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와 인간의 얼굴이다.
한국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힘을 발휘해온 지점도 다르지 않다. '기생충'은 계급의 벽을, '버닝'은 청년 세대의 불안과 분노를 들여다봤다. 익숙한 흥행 공식을 따르기보다 한국 사회의 불편한 단면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들이 국경을 넘었다. 거대한 제작비나 화려한 볼거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취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창작자의 질문에 세계 영화계가 다시 주목한 것이다.
수상의 환호와 별개로 국내 영화산업의 고민은 여전하다. 지난해 극장 매출은 전년보다 12.4%, 관객은 13.8% 줄어 각각 1조470억원, 1억609만명에 그쳤다.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과 관객이 각각 41.9%, 34.2% 증가하며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몇몇 흥행작의 성과만으로 산업의 체질까지 달라졌다고 보기는 이르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검증된 소재와 유명 배우, 속편과 시리즈에 투자가 몰리기 쉽다. 그럴수록 당장의 흥행 가능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작품과 새로운 시도는 설 자리를 잃는다.
'가능한 사랑'이 이 감독의 첫 넷플릭스 영화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의 제작과 유통 경로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대립 구도로만 바라볼 때도 지났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까지 세상에 나올 수 있느냐다. 창작자가 흥행 공식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여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한국영화의 다음 경쟁력이 달려 있다.
정부와 영화계도 이번 수상을 'K콘텐츠의 또 하나의 쾌거'로 소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천만 영화 몇 편을 더 만드는 것만으로 영화산업의 힘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 신인과 거장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 흥행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기획이 제작 단계에 오르기도 전에 사라지는 구조부터 돌아봐야 한다. 이 감독은 이번 상을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질문은 한국 영화계에도 향한다. 흥행 공식과 알고리즘이 콘텐츠의 성패를 재단하는 시대에도 오래 남을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 베네치아가 다시 확인한 것은 한 감독의 명성만이 아니다. 한국영화가 세계와 만나는 힘은 결국 자기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고 끈질기게 질문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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