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5개국은 더 이상 자원 공급처나 신흥 수출시장으로만 볼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풍부한 에너지와 핵심광물, 젊은 인구, 산업 현대화 수요를 바탕으로 제조업과 인프라, 디지털 경제를 키우면서 한국 기업에 새로운 산업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국가별 강점은 뚜렷하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천연가스와 우라늄·구리 등 핵심광물을 기반으로 정유·석유화학, 물류와 제조업을 확대하고 있다.한국 기업도 삼성전자와 LG전자,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롯데와 건설기업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최대 인구를 바탕으로 자동차·기계·섬유 등 제조업 기반을 갖춘 데다 금·우라늄·구리와 천연가스도 풍부하다.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포스코인터내셔널·대한항공·롯데 등 한국 기업의 진출 기반도 가장 두텁다.
세계적인 천연가스 보유국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한국 기업이 가스처리·석유화학·비료 플랜트를 중심으로 존재감을 쌓았다.
앞으로의 과제는 수출과 일회성 플랜트 수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핵심광물의 공동 개발과 가공, 현지 생산, 기술 이전과 인력 양성, 금융·디지털 인프라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 중앙아시아의 자원과 성장 잠재력에 한국의 제조 기술과 사업 경험을 결합한다면 양측 관계는 ‘한국이 팔고 중앙아시아가 사는’ 단계를 넘어 함께 투자하고 생산하며 제3국 시장까지 진출하는 장기 산업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전자제품 제조와 제과 사업에서부터 무역, 대형 인프라 사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업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 중앙유라시아법인은 단순한 전자제품 판매를 넘어 현지 생산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2024년 12월 TV 공동생산 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2025년부터 카라간다주 사란에 위치한 실크로드 일렉트로닉스 공장에서 삼성 TV와 세탁기 생산을 시작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8월에는 카자흐스미스 발라우와 협약을 맺고 지질 탐사와 현장 업무에 삼성의 기업용 모바일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LG전자 카자흐스탄법인도 오랫동안 현지 전자제품 및 생활가전 시장에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4월에는 카자흐스탄 지식재산권 당국과 협약을 체결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위조 제품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롯데라하트(LOTTE Rakhat)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국계 제조기업 가운데 하나로, 현지에서 초콜릿과 과자 등 제과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롯데라하트는 2026년 7월 1일 기준 550억4,000만 텡게의 영업수익과 34억7,000만 텡게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SK에코플랜트는 카자흐스탄 최초의 대형 인프라 민관협력사업(PPP)인 알마티 순환도로(BAKAD) 건설에 참여했다. 총연장 **66㎞**인 이 도로의 전체 사업비는 약 7억4,000만 달러, 이 가운데 건설비는 약 5억4,000만 달러에 달한다. 2023년 6월 도로가 개통된 이후 SK에코플랜트와 한국도로공사는 16년간 운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내 한국 기업의 진출 규모는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보다 상대적으로 작지만, 직접판매와 소비재, 금융, 난방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애터미 키르기스스탄은 비슈케크에 현지 법인을 두고 직접판매 방식으로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식품,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2026년 9월 기준 키르기스스탄 온라인몰에는 약 190개 제품이 등록돼 있어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화된 제품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애경산업의 케라시스(Kerasys) 헤어케어 제품도 키르기스스탄에서 판매되고 있다. 애경산업은 키르기스스탄 개별 매출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CIS 지역 전체 케라시스 매출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8.4% 증가했다. 이어 2026년 1~5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37% 성장했다. 해당 수치는 키르기스스탄 단독 실적이 아닌 CIS 지역 전체 실적이다.
한국 BNK캐피탈이 지원하는 BNK파이낸스는 보다 직접적인 현지 금융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2022년 키르기스스탄에서 영업을 시작했으며, 대출잔액은 2025년 7월 4억 솜을 돌파한 뒤 같은 달 말 4억430만 솜까지 늘었다. 현재 소비자금융과 자동차대출, 주택담보대출, 소상공인 대출 등을 제공하고 있다.
타지키스탄
타지키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소비재보다는 정부 주도의 에너지와 교통, 디지털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인에너지는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진행되는 한국 정부 지원 전력공급사업 2단계의 사업관리 컨설팅을 맡고 있다. KOICA가 추진하는 전체 사업 규모는 1,400만 달러로, 신규 변전소 건설과 기존 변전소 증설, 약 60㎞에 달하는 송·배전선 구축 등이 포함된다. 사업이 완료되면 15개 마을, 8,000명 이상의 주민에게 전력이 공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신엔지니어링은 한국의 교통 관련 연구기관들과 함께 타지키스탄 남부의 잘롤리디니 발히와 판지 포욘을 연결하는 신규 철도에 대한 타당성조사에 참여했다.
한국IT컨설팅은 최근 추진되고 있는 타지키스탄 정부 디지털 전환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회사는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총 650만 달러 규모로 진행되는 ODA 사업의 사업관리 컨설팅 업체로 선정됐다. KOICA와 타지키스탄 정부는 2026년 8월 한국IT컨설팅과 퓨처누리 컨소시엄이 참여하는 해당 사업을 공식 출범시켰다.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주로 정부 주도의 대규모 에너지 및 산업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업 기반을 구축해왔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 당시 LG상사였던 LX인터내셔널은 일본 기업과 함께 키얀리 가스화학단지 건설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이 시설은 연간 50억㎥의 천연가스를 처리하고, 에틸렌 40만 톤과 폴리프로필렌 8만 톤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 도요엔지니어링에 따르면 컨소시엄의 계약 규모는 8억 달러 이상, 전체 사업 투자 규모는 약 30억 달러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당초 단지 건설 이후에도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키얀리 폴리머 플랜트의 2단계 정상화 사업과 후속 운영·유지보수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외에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13억 달러 규모 갈키니쉬 가스 탈황설비 사업, 4억7,000만 달러 규모 투르크멘바시 정유공장 사업 등 다수의 석유화학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현대건설 역시 현대엔지니어링과 LG상사, 도요엔지니어링과 함께 키얀리 가스화학단지 컨소시엄에 참여하며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주요 사업 실적을 쌓았다.
대우건설은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한국 기업의 가장 큰 신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를 수행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2025년 5월 투르크메나바트 광물비료공장 건설을 위한 최종 EPC 계약을 부가가치세 포함 7억8,400만 달러, 당시 환율 기준 약 1조800억 원에 체결했다. 이 공장은 연간 인산비료 35만 톤과 황산암모늄 1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착공 후 공사기간은 37개월이다.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한국 기업의 진출 역사가 가장 길고 사업 분야도 가장 다양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발전과 가스처리, 섬유, 호텔, 항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당시 포스코대우와 함께 탈리마르잔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다. 2017년 완공된 이 사업은 8억6,200만 달러 규모로, 총 929MW의 발전용량을 추가했다. 완공 당시 신규 발전설비가 우즈베키스탄 전체 전력 생산의 약 6.6%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가스 프로젝트 가운데 일부를 수행해왔다. 칸딤 가스전 개발사업의 기본설계(FEED)에 참여한 데 이어 같은 사업에서 26억6,000만 달러 규모의 EPC 계약을 수주했다. 완공된 칸딤 가스처리시설은 연간 81억㎥의 천연가스를 처리할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에 따르면 건설 당시 약 1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으며, 완공 이후에는 약 2,000개의 상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1996년부터 우즈베키스탄 면방산업에서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장기 진출 한국 기업이다. 2006년 페르가나, 2008년 부하라에 방적공장을 설립했으며 현재 연간 약 5만 톤의 면사를 생산하고 있다. 2022년 3월에는 페르가나 지역의 5,210㏊ 규모 면화 농지를 확보하며 원료 재배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대한항공은 여객 운송을 넘어 우즈베키스탄 항공·물류산업 발전에도 참여해왔다. 2008년 우즈베키스탄항공과 함께 나보이국제공항 복합물류센터 개발에 착수하고 나보이를 거점으로 화물기 운항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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