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경제발전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신흥국 기업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채택한다. 선진 기업의 상품과 기술을 모방하여 신속하게 추격하는 데에 열을 올린다. 반면 선진국 기업은 시장을 만들고 주도하면서 ‘우월적 선도자(First Mover)’의 위상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후발 주자와의 격차 혹은 초격차를 유지하려고 사력을 기울인다. 한편 시장 선점자와 빠른 추격자 사이의 중간 지대에서 양쪽의 장점만을 채택한 ‘병행자(Parallel Mover)’ 전략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빠른 추격자 전략이 과거에는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었으나, 기술 변화가 극심한 AI 시대에서는 단순 모방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고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의 산업화와 기술축적 과정은 특이하다. 구태여 따지자면 병행자 전략을 채택한 것 같지만 여기에 하나의 더 큰 전략이 숨겨져 있다. 바로 ‘시장 지배자(Market Dominator)’ 전략이다. 기존 산업군에서는 빠른 추격자 전략을 구사하지만 미래 산업, 특히 확실한 우월적 선도자가 없는 산업군에서는 집중력을 높여 단숨에 세계 1등이 되는 초강수 전략을 둔다. 14억이라는 거대 내수시장과 막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을 통해 단순한 추격자 혹은 선도자 수준을 뛰어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주력산업을 장악하는 지배자로 등극한다. 미래 산업에 국한되지는 않고 한국이나 일본 등 비교적 만만한 국가들이 장악하고 있는 산업 분야도 중국의 노리는 지배자 대상 산업군에 속한다.
중국의 전략이 가능한 이유는 국가와 민간이 효율적 결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혼합경제의 틀에서 비롯된다. 표면적으로는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주도면밀한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가 혼합된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다. 시장의 왜곡과 역기능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시장 지배 전략은 태양광을 필두로 가전(로봇 포함), 고속철, 원전에 이어 미래 먹거리의 핵심인 친(親)환경차로 이어져 온다. 전기차는 그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과 AI 패권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중이다. 다른 나라들은 주변국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휴머노이드 시장에도 미·중 만 보인다. 중국이 운동능력 향상에 집중하는 반면 로봇 지능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다.
왜 미국과 중국이 이토록 첨예한 경쟁을 벌이나? 섬뜩하지만 매우 선명하다. 미래 기술의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시장을 지배하는 자가 기술의 표준을 정하게 되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의 우월적 위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의 국력은 경제력·국방력에 더해 소프트 파워(문화·예술·소프트웨어 기술 등)가 모두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중국이 미국에 가장 뒤지고 있다는 영역이 소프트 파워이기 때문에 이 부문에 엄청난 국력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의 딜레마는 미국과의 격차를 단기간에 만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미래 먹거리 산업에 중국이 기를 쓰고 덤벼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지금까지는 중국의 전략이 대체로 먹혀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1등 분야 고수 전략 필요
이미 전기차는 중국의 기술 표준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고 있다. 유럽에 이어 일본의 메이커들도 전기차는 중국에서 만들거나 만들 예정이다. 중국산 부품 없이는 생산되지 않고, 현지에서 조달(95%)해야 하므로 울며 겨자 먹기가 된 셈이다. 한국 메이커도 예외가 아니다. 부품 공용화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결국 중국이 기술이나 부품 개발을 선행하면서 원가 절감이나 시장 흐름에 뒤지지 않으려면 중국이 하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상반기에만 한국 시장에서 생산지 기준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이 41.2%에 달해 독일을 제치고 수입차 생산국 1위 자리를 꿰찼다. 이러한 추세라면 연 판매 1위 자리도 거의 떼놓은 당상이다. 비단 한국 시장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시장에서도 유사한 양상이다.
전기차에 이어 자율주행 부문에서도 중국의 ‘룰 세팅(Rule-setting)' 강풍이 거세다. 중국 주도의 자동차 분야 국제과학기술기구 설립이 추진되고 있고, 신흥국 중심으로 협력을 다변화하고 있다. 중국이 종래의 양적 성장에서 탈피하여 질적 표준화로의 도약을 서두르고 있어 경쟁국들의 위기감을 극도로 부추긴다. 중국의 거센 파고는 전기차에 그치지 않고 향후 인공지능이나 피지컬 AI(휴머노이드), 원전(소형모듈 포함), 이차전지·LFP 배터리, 양자·항공우주 등 전방위적으로 시장 지배력과 표준 선점화를 위해 거칠게 몰아붙일 태세다. 미국 홀로 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고, 미국 편에 동조하는 국가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뒷걸음질 치면서 자칫 중국이 주도하는 더 많은 글로벌 표준을 수용해야 할 형편이 되고 있다.
중국이 지배하는 시장과 기술 표준이 되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훨씬 가혹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한국 같은 나라에 더 큰 고충이 따를 것이 매우 분명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미국·중국과 같이 모든 분야에서 첨예한 선두 경쟁을 펼칠 필요는 없다.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만큼은 1등을 고수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표준을 만들 수 없는 처지라면 강자들과 합종연횡하여 표준화 그룹에 올라타야 한다. 격차 혹은 초격차는 말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은 악착같이 지켜내야 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제조 생태계를 완성해 나가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씁쓸하다.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 국내의 기준이나 규범을 언제까지 내팽개쳐 둘 것인가.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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