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광' 하지원 "추락한 톱스타役…제 고민과도 맞닿아 있어"

영화 비광 배우 하지원 사진_해와달엔터테인먼트
영화 '비광' 배우 하지원 [사진=_해와달엔터테인먼트]
배우 하지원이 화려함을 지우고 생활감으로 채워진 낯선 얼굴을 꺼냈다. 영화 '비광'에서 추락한 톱스타 남미를 연기한 그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거친 현실을 버텨내는 인물의 시간을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 배우이기에 더욱 납득할 수 있는 감정선으로 남미의 무너짐과 버팀을 함께 보여준 하지원은 '비광'을 통해 또 한 번 자신을 증명해냈다.

"'비광'에 들어가기 전에 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어요. 하지원이라는 사람과 배우 하지원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고, 그때 페인팅 작업도 하고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만 사는 배우가 아니라 세상에 놓인 나,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가고 있었죠. 그런 시기에 남미를 만났어요. 남미도 배우로 살면서 상처와 고민을 안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1년이라는 시간이 그냥 지나간 게 아니라, 그런 고민을 계속하면서 작품을 기다린 시간이었어요."

영화 '비광'은 2021년 9월 크랭크업해 개봉까지 긴 시간을 거쳤다. 하지원은 오랜 기다림 끝 완성본을 다시 마주해 촬영 당시와는 다른 감각으로 작품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너무나 기다렸던 개봉이라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정말 손꼽아 기다렸어요. 촬영하고 후시하면서 가편집본을 본 적은 있었는데, 감독님이 끝까지 완성하신 버전은 이번에 다시 봤어요. 예전에 찍은 작품을 시간이 지나 다시 마주하니까 남미의 입장만이 아니라 관객의 입장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안 보이던 것들도 보였고, 제 영화인데도 즐기면서 봤어요."

개봉이 늦어진 데 대한 불안감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작품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 컸다. 준비 기간이 길어진 시간 역시 그에게는 남미를 더 오래 품을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불안함은 없었어요. 저는 일단 제가 선택하면 그 작품을 믿고 기다리는 편이에요. 촬영도 코로나 때문에 밀렸고, 1년 정도 준비가 더 길어졌는데 저는 그 시간이 남미를 더 오래 품을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생각해요."
영화 비광 배우 하지원 사진_해와달엔터테인먼트
영화 '비광' 배우 하지원 [사진=_해와달엔터테인먼트]

하지원은 남미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남미가 처한 관계와 상처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인물이 지닌 고통과 성숙의 시간을 함께 느꼈다는 부연이었다.

"시나리오 안의 상황을 하지원이라는 사람이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남미가 놓인 관계나 상황이 굉장히 힘들잖아요. 남미가 겪는 상처와 배경을 고스란히 바라봤고, 그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동주라는 아이도 남미와 닮아 있는 존재처럼 느꼈어요.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배우가 됐고, 그런 점에서 남미가 그 아이를 거둘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아픈 존재로 봤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하지원은 추락한 여배우 남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는 남미와 같은 추락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배우로서 느끼는 감정들과 맞닿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 상황에 더 놓여보려고 했어요. 그 상황에 놓이다 보면 감정들이 느껴지잖아요. 제가 더 이입할 수 있었던 건 제 직업도 배우이고 남미도 배우이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저는 남미처럼 큰 추락을 경험한 건 아니지만, 여배우로 살아가면서 사회에 놓인 하지원이라는 존재가 있잖아요. 하나하나 더 조심하게 되고, 한 번 더 생각하고, 더 신중하게 되고, 책임도 크게 느끼면서 살아가요. 더 크게 보면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사회가 원하는 나로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엄마가 바라는 나, 회사가 바라는 나, 학교가 바라는 나 같은 것들이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남미를 이해했던 것 같아요"

톱스타였던 시절과 추락한 뒤의 남미는 외형부터 확연히 달라야 했다. 하지원은 화려했던 과거와 생활감이 밴 현재의 간극을 보여주기 위해 외형부터 말투까지 세밀하게 조율했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설정을 정말 잘해주셨어요. 그 갭 차이가 남미의 매력이기도 하잖아요. 톱스타였을 때는 말투도 조금 더 거칠고 세고, 화려한 골드 드레스 같은 비주얼이 있었어요. 반대로 추락한 뒤에는 헤어도 탈색해서 더 상하게 만들고, 피부 관리도 안 한 느낌으로 갔어요. 초반의 남미는 건강한 느낌이 있었다면 8년 뒤에는 생활감이 더 느껴져야 했거든요. 그래서 외적인 변화와 말투, 언어, 대사 톤, 호흡까지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하면서 잡아갔어요."

극 중 중구와 남미는 복잡한 감정으로 얽혀있는 관계. 하지원은 류승룡이 관계의 무드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오빠가 저보다 먼저 중구 역으로 캐스팅돼 있었어요. 저는 오빠와 꼭 같이 해보고 싶었고 너무 영광이었어요. 평소에는 정말 재미있으신 분이고 아재개그도 많이 하시는데, 촬영할 때는 안 하셨어요. 저희 역할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복잡 미묘한 부부 관계잖아요. 그래서 리허설을 맞춘다기보다 오빠가 현장에서 그 무드 자체를 만들어주셨어요. 너무 잘 받아주셔서 감사했고, 함께한 장면이 더 많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였어요."
영화 비광 배우 하지원 사진_해와달엔터테인먼트
영화 '비광' 배우 하지원 [사진=_해와달엔터테인먼트]

김선영, 김해숙과의 호흡도 남미의 생활감을 완성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하지원은 가족들과 함께한 장면들이 짧게 느껴질 만큼 아쉬웠다고 말했다.

"선영 언니랑은 정말 영광이었어요. 리허설하면서 나오는 생활감이 너무 좋았고, 마요네즈 머리나 김치 냄새 같은 표현들도 너무 많이 배웠어요. 언니랑 또 같이 연기하고 싶어요. 김해숙 선배님과 함께한 것도 너무 영광이었고요. 이 영화의 가족들과 함께 촬영한 선배님들이 다 너무 좋았어요. 생활감 있는 삶이 느껴지는 연기였잖아요. 너무 재밌었고, 가족들과 너무 짧게 만나서 아쉬울 정도였어요."

생활감 있는 연기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둔 것은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일이었다. 하지원은 남미의 공허함과 버티는 힘이 눈빛과 호흡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고 봤다.

"가슴으로 많이 느껴져야 대사 톤이나 호흡이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남미는 힘들게 버티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니까 눈빛도 무언가를 쏘는 느낌이 아니라 때로는 공허해야 했어요. 프리 단계에서는 정말 치열하게 준비했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저를 더 비웠어요. 공허함이나 힘을 주지 않는 눈빛이 필요했고, 사연도 많고 상처도 많지만 버틸 힘조차 없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감정에 놓여서 느끼는 게 중요했어요."

최근 하지원은 유튜브 콘텐츠 '26학번 지원이'를 통해 새로운 세대와 만나고 있다. 그는 이 작업 역시 무대 위 배우 하지원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무대 위의 하지원이 아니라 제가 사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어요. 세상을 이해하려면 나와 다른 제너레이션과도 소통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그런 시기에 '26학번 지원이' 제안을 받았어요.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하게 됐고요. 고마웠던 건 동기들과 선배들이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말 저를 26학번 신입생으로 대해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몰입할 수 있었고 감사했어요."
영화 비광 배우 하지원 사진_해와달엔터테인먼트
영화 '비광' 배우 하지원 [사진=_해와달엔터테인먼트]

배우로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하지원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일이기도 하다. 음악방송, 유튜브 콘텐츠, 다시 해보는 액션까지 쉽지 않은 선택들이지만 그는 그 과정이 자신을 확장시킨다고 믿는다.

"요즘 음악방송도 하고, '26학번 지원이'도 하고, 예전에 했던 액션도 다시 해보고 있잖아요. 사실 저한테 쉬운 건 아니에요. 어렵고 떨리고 도전이에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힘들어도 하고 나면 확장이 되는 것 같아요. 마음도 그렇고 제가 보는 세상도 조금씩 넓어져요. 깊이와 내공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보는 세상의 시야를 넓혀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제가 세상에 더 나아가고 다양한 캐릭터나 장르의 작품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원에게 '비광'은 남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그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자신에 대해 한 번쯤 숨을 고르고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랐다.

"나라는 사람이 조금 숨을 쉬고 볼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잖아요. 가족 안에서의 나일 수도 있고, 회사 안에서의 나일 수도 있어요.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한 번 더 숨을 갖고 생각하게 되면, 그 생각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알아갈수록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비광'은 그런 걸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보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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