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누군가는 나를 돌봐주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돌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한다. 그러나 돌봄이 반드시 사랑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의존과 욕망, 책임과 부담이 공존한다. 이솔희 감독의 영화 ‘비닐하우스’는 바로 그 돌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치매 노인 화옥을 돌보는 문정(이서형)은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그는 시력을 잃은 화옥의 남편 태경(양재성)과 화옥을 돌보며 요양원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와 소년원에 있는 아들이 출소하면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문정이 돌봐야 할 사람은 많지만 정작 문정을 돌봐줄 사람은 없다. 그래서일까, 아들을 만나기 위해 소년원을 갔다가 아들의 냉담한 반응을 보거나 화옥의 냉대가 느껴질 때마다 문정은 자신의 머리를 반복적으로 때린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몰두하면서도 그녀는 아무런 자각 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그런 문정에게 단 하나의 꿈은 바로 ‘집’이다. 남들처럼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증거이자 아들과 함께할 미래 말이다. 이런 단 꿈도 잠시 문정이 화옥의 괴롭힘을 막는 과정에서 화옥이 사망하게 되고 문정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119에 신고하려던 순간, 그토록 바라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오고 자신과 함께할 미래를 이야기하는 아들의 말에 그녀는 이 상황을 은폐하기로 한다.
문정이 사는 비닐하우스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공간이자 무덤으로 작용한다. 문정은 화옥의 시신을 비닐하우스에 숨기고, 치매를 앓는 자신의 어머니를 화옥으로 위장해 태강의 앞에 데려다 놓는다. 이때부터 문정의 순수한 돌봄은 비틀리기 시작한다. 단 한 번의 사고는 범죄가 되고, 또 한 번의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태강에게도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감각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인 그는 치매 초기 판정을 받았다. 어느 날부터 평생 함께한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는 그는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돌린다. 사랑했던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조차 잃어버렸다며 자책하던 태강은 아내가 죽었는지도 모른 채 함께 삶을 끝내려 하고 아내라고 믿었던 이가 낯선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끝없는 절망 속으로 빠진다. 결국 문정의 거짓 말로 태강은 스스로를 의심하고 급기야 삶을 놓아버리는 선택까지 하게 된다.
‘비닐하우스’ 속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문정은 태강의 경제적 도움 속에서 집을 얻고 싶어 하고 태강은 문정의 돌봄 없이는 살아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 중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안전하게 기대어 있을 수 없다.
영화 속 돌봄은 어느 순간 사랑이 아니라 의존이 되고, 의존은 집착과 이용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역시 흐려지게 된다.
문정은 분명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지만 동시에 가난과 불안정한 주거, 가족에 대한 책임과 돌봄의 부담에 짓눌린 피해자이기도 하다. 태강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누군가를 일부러 해치려는 의도를 가진 악인은 없다. 다만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으로 인한 불행이 찾아올 뿐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비닐하우스는 불타오른다. 문정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공간이자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함께 불태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문정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아들도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른 듯하다. 문정의 모든 선택은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한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했는데 되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을 잃게 만드는 결과로 돌아온다. 비닐하우스에 불을 지름으로써 문정이 붙잡았던 모든 욕망 또한 무너진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이 누군가에겐 너무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현실이 된다는 사실이 서글퍼진다.
극 중 인물들은 치매 노인, 간병인, 주거 불안, 빈곤 등 사회적 보호망에서 소외된 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솔희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선택의 결과가 비극일지언정 누가 이들에게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지 관객에 질문을 던진다.
영화가 바라보는 것은 범죄 이전의 사람들이다. 오래 혼자였고 많은 것을 책임졌으며 누구에게 제대로 기대지 못했던 사람들. 문정이 무너진 것은 한순간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삶의 무너지기 전에 아무도 그를 붙잡아주지 않았기 떄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행동를 감쌀 순 없는 현실. 이 불편한 사실을 ‘비닐하우스’는 우리 앞에 세워놓는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결국 그 선택이 피해자에 돌아가는 굴레. 선택은 비극을 만들었지만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누구일까. 문정의 선택은 비단 단 한 사림만의 문제인가, 사회적 제도의 미비함인가. 이 물음은 관객의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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