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상처가 상처를 안을 때 - 영화 '도희야'

  • 시선의 폭력 혹은 직접적 학대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도희야 스틸컷
[사진=영화 '도희야' 스틸컷]

상처를 가진 사람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때로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제3자의 입장으로 내가 받은 상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영화 ‘도희야’ 속 영남(배두나)과 도희(김새론)가 그러하다. 결핍과 상처로 얼룩진 두 사람이 그리는 연대는 슬프지만 현실적이어서 더 와닿는다.

영화는 영남(배두나)이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파출소 소장으로 부임하며 시작된다. 어쩐지 쓸쓸한 모습의 영남은 술을 물처럼 마시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부임 후 그저 부유하는 듯 보이는 영남의 삶에 14살 소녀 도희가 불쑥 끼어든다. 깡마른 채 상처로 점철된 소녀의 모습이 영남은 자꾸 눈에 밟힌다. 

도희는 이 바닷가 마을에서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도희에게 집은 안전하거나 포근한 곳이 아니다. 용하는 도희에게 수시로 폭력을 쓰고 할머니 또한 용하의 핏줄이 아닌 도희가 못마땅한 듯 “너 같은 년이 왜 사냐”며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쓰기 일쑤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실을 동네 사람들 모두 알고 있으며 누구도 도희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바닷가 마을에선 용하가 운영하는 인력사무소에 속한 외국인 노동자들 외엔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인력이 없기에 사람들은 용하의 행위를 눈감아주기 바쁘다. 더군다나 도희는 학교에서도 또래 아이들에 괴롭힘을 당하면서 이 마을 어디에서도 마음 붙일 곳이란 없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던 영남은 자신의 눈에 밟히는 도희를 그냥 둘 수 없었다. 용하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도희를 보자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밥을 짓고 책을 읽어준다. 도희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주는 어른이 생겼다.

그런 도희는 영남의 옆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 따뜻함이란 없는 오로지 폭력만 있는 집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험한 순간에 손을 내미는 사람인 영남에게 무언가 모를 미묘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영남은 자신의 비밀을 용하에게 들키고 만다. 영남의 헤어진 연인인 은정(장희진)이 호주로 떠나기 전 영남을 찾아오고 격렬한 감정을 느낀 두 사람이 나눈 스킨십 장면을 용하에게 들키고 만 것.

도희에게 잘해주는 영남이 못내 못마땅했던 용하는 도희를 데리고 있는 영남을 아동 성추행으로 고소하고 결국 영남의 주변 모든 이들이 영남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다. 
 
영남은 도희에 대한 신체 접촉이 있었는지 여부를 취조받자 기막힌 듯 “두들겨 맞은 상처를 보기도 하고 목욕도 시켰다. 상처가 너무 아파 보여 안아주기도 했다. 그게 문제가 되느냐”고 되묻는다. 형사는 “동성애자가 그렇게 하니 문제가 되지”라며 비아냥대지만 영남은 자신의 감출 수 없는 수치심 속에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 대신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이유가 없다”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킨다.
 
사진영화 도희야 스틸컷
[사진=영화 '도희야' 스틸컷]

이렇듯 영남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타인의 시선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남은 자신과 비슷하게 이 마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도희를 보호하는 사람인 동시에 사회로부터 그 역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방식의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난 셈이다.

영남의 눈에 한없이 순수해보였던 도희 역시 입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고 그것은 때로 거짓말로 나타나며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에 어쩌면 도희의 행동은 영악하다. 그러나 도희는 사랑받는 법보다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다. 누군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오히려 이 부분이 도희에 대한 영남의 믿음이 흔들리는 지점이 된다. 자신과 닮은 도희에게 손을 내민 영남은 트라우마가 있다. 동료 경찰의 성추행을 목격하고 침묵했다는 것. 그 댓가는 참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료가 자살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영남이 이 바닷가 마을까지 오게 된 이유였기 때문. 

도희는 이같은 이야기가 든 영남의 일기장을 읽은 후 용하를 성추행으로 고발한다. 그것이 도희가 용하를 벌하는 방법이었다. 비록 비뚤어진 방법일지라도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배운 적이 없는 도희는 용하를 궁지로 몰았지만 어쩐지 도희는 더욱 외로워진다. 용하는 범행을 부인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고 그럼에도 영남은 도희를 보호하려 하지만 두 사람 앞엔 이별이 성큼 와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도희야’가 인상적인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한 구원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남이 나타났다고 해서 도희의 삶이 단번에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도희와 만났다고 해서 영남의 상처가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여전히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의 시선과 소문, 폭력과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게 작은 변화를 만들어낸다. 도희에게는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이 생겼고 영남에겐 자신이 보호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때로 삶을 다시 견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결국 ‘도희야’가 이야기하는 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 혼자 두지 않는 것. 어쩌면 돌봄의 시작은 그처럼 작고 평범한 행동일지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모든 사람이 나에게 안전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한 사람의 존재가 중요해진다. 나를 판단하기보다 바라봐주고, 내가 무너졌을 때 떠나지 않는 사람. 

‘도희야’ 속 도희와 영남은 서로에게 완벽한 구원자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잠시라도 서로의 곁에서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감각을 경험한다. 어쩌면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상태보다 힘든 순간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데서 시작되는 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나는 네 편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의 곁에는 우리가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이 있는가. 당신 또한 당신의 상처를 안고서 누군가를 안을 수 있는 사람인가. 우리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어줄 준비가 됐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진영화 도희야 스틸컷
[사진=영화 '도희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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