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장기금리 쇼크] '운신의 폭' 좁아진 한은…금리 올리기도, 내리기도 어렵다

  • 기준금리 인상 한 달 만에 30년물 연중 최고치

  • 내리자니 물가·환율·집값 부담…올리자니 '빚 2000조'

  • 동결해도 시장금리 고공행진…통화정책 효과 제약

서울 중구 소재 한국은행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소재 한국은행 전경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신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물가와 환율, 가계부채를 생각하면 기준금리를 다시 내리기 어렵지만 2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빚과 자영업자 등 취약 차주의 부실을 감안하면 추가 인상도 부담스럽다. 기준금리를 동결하더라도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에 국내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사실상 긴축 효과가 이어질 수 있다. 금리를 올려도, 내려도, 그대로 둬도 부담인 상황이다.

한은은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올렸다.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강화되고 있지만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고 금융안정 위험도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 이후 시장금리는 한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국고채 30년물 금리는 4.75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기준금리 인상 당시와 비교하면 통화정책에 민감한 3년물은 오히려 5bp(1bp=0.01%포인트) 하락한 반면 10년물은 5bp, 30년물은 23bp 상승했다. 단기금리는 향후 기준금리 전망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장기금리는 미국 등 글로벌 금리와 물가 전망, 국채 수급 등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움직여도 장기 시장금리까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다시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한은은 지난달 금리 인상 배경으로 목표 수준을 웃도는 물가와 금융 안정 위협을 직접 꼽았다. 중동 불안과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물가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섣불리 낮추면 원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주택가격과 가계대출 증가세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도 부담이다.

반대로 금리를 더 올리기도 어렵다. 올해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8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부채 규모가 커진 만큼 추가 금리 인상이 차주의 원리금 부담과 소비에 미치는 충격도 과거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자영업자와 다중채무자 등 취약 차주가 약한 고리다. 한은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의 연간 이자 부담은 1조8000억원 늘어난다. 자영업 다중채무자만 놓고 봐도 1조1000억원 증가한다. 자영업자 1인당 이자 부담은 평균 약 56만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미 상환 여력은 악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은 22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였고 연체율은 2.04%로 2015년 2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12.79%에 달했다. 추가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이미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는 차주부터 연체와 부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기준금리를 더 올리지 않는다고 금융 여건이 저절로 완화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등 주요국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국내 국고채와 은행채·회사채 금리도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한은이 향후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장기 시장금리가 충분히 내려가지 않으면 주택담보대출이나 기업 조달금리의 하락 폭도 제한된다. 금리를 내려 경기를 지원하려 해도 통화정책의 효과가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한은은 물가와 환율·가계부채를 잡기 위해서는 긴축 기조가 필요하지만 긴축을 강화할수록 취약 차주의 부실과 내수 부담을 키우는 딜레마에 놓였다. 여기에 글로벌 장기금리가 한은의 통제 밖에서 국내 금융비용을 끌어올리면서 정책 선택지는 더 좁아졌다. 기준금리를 올려도 부담이고 내리기도 위험한 상황에서 시장금리마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통화정책의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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