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잡으려 中 공급망 썼는데…美 규제에 삼성·LG '로청 딜레마'

  • "어느 회사냐" 아닌 "어디서 만들었냐"…FCC, 해외생산 로봇 인증 봉쇄

  • 국내선 판매 신기록 쓰는데…미국 문턱서 발목 잡힌 ECM 전략

삼성전자 비스포크 AI 스팀 신제품 이미지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비스포크 AI 스팀 신제품 이미지. [사진=삼성전자]

미국이 국경 밖에서 만들어진 첨단 로봇에 신규 인증 문을 걸어 잠그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로봇청소기 사업이 뜻밖의 변수를 만났다. 화살이 향한 곳은 중국이지만 잣대가 '어느 회사냐'가 아니라 '어디서 만들었느냐'인 탓에, 중국의 제조 기반을 지렛대 삼아 가격과 개발 속도를 확보해온 국내 기업도 사정권에 들어왔다. 중국을 잡겠다며 중국을 끌어안았던 전략이 정작 미국 앞에서는 짐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달 말 공공안전국을 통해 해외에서 만들어진 '첨단 로봇 장치'와 전력 인버터 두 품목을 안보위해 장비 목록(커버드 리스트)에 새로 올렸다. 여기에 이름이 오르면 미국에서 팔기 위한 장비 인증 자체를 얻지 못해 시장 문이 닫힌다. 걸리는 조건은 네 가지다. 거치대를 합쳐 무게가 4.4파운드(약 2㎏)를 넘고, 주변을 읽는 센서와 초당 200킬로비트 이상의 양방향 통신 기능, 여기에 AI·머신러닝으로 스스로 길을 찾는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갖춘 지상 이동형 로봇이 대상이다. 요즘 팔리는 로봇청소기라면 대부분 이 네 조건을 충족한다. 

이미 인증을 마치고 진열대에 오른 제품이나 소비자가 쓰고 있는 기기는 손대지 않는다. 칼끝은 앞으로 나올 신제품을 향한다. 해외 기업이 이 문을 통과하려면 미국 내 생산 투자 계획 등을 내놓고 국방부 등으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따로 받아야 한다. 더 까다로운 대목은 적용 기준이 기업의 국적이 아니라 제품이 만들어진 나라라는 점이다. 태극기를 단 기업이라도 중국 공장을 거쳤다면 중국 업체와 같은 심사대에 서게 된다. 

이 여파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로봇청소기 신제품의 해외 출시 시계를 뒤로 돌린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는 2026년형 '비스포크 AI 스팀'의 글로벌 판매 시점을 못 박지 않은 채 당분간 안방 시장에 화력을 모으기로 했다. 
 
LG 홈봇 AI 오브제컬렉션 로니RONi 사진LG전자
LG 홈봇 AI 오브제컬렉션 로니(RONi) [사진=LG전자]

셈법이 더 복잡한 쪽은 LG전자다. 2026년형 라인업을 3개로 짜면서 최상위 제품군은 중국 피세아(PICEA)에, 중저가는 기존 파트너였던 실버스타에 맡기는 그림을 그렸다. 류재철 최고경영자(CEO)가 내걸었던 '중국 생태계 활용 생산(ECM)' 기조가 로봇청소기에서 실체를 드러낸 셈이다. 피세아는 선전에 자리 잡은 로봇청소기 전문 ODM 업체로, 파산보호 절차를 밟은 미국 아이로봇(룸바)의 지분 전량을 손에 넣은 곳이기도 하다. 원가와 속도를 동시에 쥐려던 선택이 미국에서는 공급망 약점으로 뒤집힌 것이다. 

국내 성적표와의 간극은 더 도드라진다. '비스포크 AI 스팀'은 6월 한 달 5만대 고지를 넘었고, LG전자가 7월 2일 내놓은 '홈봇 AI 오브제컬렉션 로니'는 앞선 신제품들의 같은 기간 실적을 3배가량 웃돌았다. GfK 집계로 국내 시장은 2023년 4300억원 수준에서 올해 1조원대로 몸집을 불릴 것으로 점쳐진다. 반면 세계 무대는 로보락(17.7%)과 에코백스(14.3%), 드리미(10.5%)를 포함한 중국 상위 5개사가 절반이 넘는 54.5%를 쥐고 있다. 

결국 미국향 물량만 떼어내 생산지와 부품 조달선을 따로 짤 수 있느냐가 갈림길이다. 업계에서는 완제품을 어디서 조립했는지뿐 아니라 통신 모듈과 반도체 같은 속부품, 소프트웨어를 누가 관리하는지까지 진입 여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을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보다 어디서 만들었느냐가 먼저 검증되는 시장이 열린 것"이라며 "미국향 물량만 떼어내 공급망을 이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지만, 핵심 부품이 중국에 몰려 있어 단기간에 답을 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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