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광복절에 성남시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다녀왔다. 비 소식에도 객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열기가 반가웠고, 재작년 필자가 작곡한 독립운동 뮤지컬 '페치카'의 ‘장부가’와 ‘출정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며 시민들과 함께 다짐과 환호의 눈시울을 붉혔던 바로 그 장소여서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그러나 축주로 울려 퍼진 엘가의 웅장한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으며 문득 서글픈 의문이 스쳤다. 어찌하여 하필 오늘, 조국의 빛을 되찾은 가장 성스러운 제단 위에서 대영제국의 팽창과 패권을 담은 선율을 빌려 우리의 해방을 기려야 한단 말인가. 정작 이 곡은 지난 2020년 영국 최대 클래식 축제인 ‘BBC 프롬스’에서도 식민 지배와 노예제, 제국주의 팽창을 찬양하는 시대착오적 곡이라는 이유로 현지 지식인과 문화계의 거센 비판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곡이 아니던가.
음악을 듣는 내내 만주의 눈벌판과 연해주의 칼바람 속에서 피 흘리며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군과 순국선열들이 떠올라 목이 메었다. 그들이 피로써 지키고자 했던 것은 외국의 교향악이 아니라 고향의 흙냄새 배어 있는 어머니의 노래이자, 장터의 서러움과 흥이 한데 녹아든 우리 민족 고유의 숨결이었을 것이다.
정성스레 차린 순국선열의 광복절 차례상에 영국 음식을 얹어놓은 듯한 이 기이하고 부끄러운 풍경 앞에서, 필자는 ‘익숙함’이라는 비겁한 이름 뒤에, ‘관행’이라는 무기력한 침묵 속에 우리가 던져야 할 마땅한 질문을 너무 오랜 시간 잃어버리고 살아왔음을 뼈아프게 느꼈다.
서양 고전음악의 숭고한 가치를 어찌 부정하겠는가. 특정 지자체나 예술단을 탓하려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이는 음악계의 역사적 인식 결여와 무비판적인 관행이 낳은 안타까운 자화상이다.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 교향악단과 지휘자라면, 적어도 광복의 날에 무대에 올릴 웅혼한 민족 창작 레퍼토리 하나쯤은 마땅히 연구하고 연주하는 것이 공적 소명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오늘날 민족음악은 공공 예술단과 문화재단의 시야 밖으로 밀려나, 영세한 민간 예술인들의 눈물겨운 희생에만 위태롭게 기대어 있다. 전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는 지금, K-팝의 화려한 조명 뒤 가장 짙은 사각지대에서 우리의 뿌리이자 영혼인 민족음악은 차갑게 소외되어 있다. 뿌리가 마른 나무는 결코 오랜 시간 꽃을 피워낼 수 없다. K-컬처 시대의 이 모순을, 우리는 문화주권의 이름으로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제도와 환경만을 탓할 수는 없다. 민족혼을 다룬 공연이 ‘지루하고 딱딱하다’며 외면 받아온 현실을 필자는 음악인으로서 겸허히 인정한다. 그렇기에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환호할 수 있는 역동적이고 세련된 무대를 빚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책무다.
◆ 애국가 앞의 침묵을 깨자… ‘분별의 지성’이 여는 온전한 광복
그동안 친일과 나치 부역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곡가 안익태, 그리고 친일 전향 논란의 윤치호 작사설이 얽힌 애국가를 비롯하여 다양한 일제 식민의 잔재들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우리 앞에는 묵직한 침묵의 벽이 놓이곤 했다.
당장 모든 것을 부정하고 갈아엎자는 조급한 외침이 아니다.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마다 우리 스스로 묻고 깨어나는 ‘분별의 지성’이 살아 숨 쉬기를 바랄 뿐이다. 낡은 익숙함을 깨고 관행을 바로잡는 ‘변혁의 지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꿈꾸는 완전한 독립과 광복, 그리고 정신문화 해방의 날은 끝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 반목과 방어를 넘어선 성찰, 후손들의 용기가 열어갈 ‘역사의 진보’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연예계의 가족 친일 논란도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상흔이 오늘의 우리를 아프게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문의 굴레를 안고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무조건적인 연대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침묵과 방어를 넘어 미래 세대에게 떳떳한 자긍심을 남겨주는 일은 미룰 수 없는 시대의 과제다. 갈등의 상처를 딛고 상생을 열어가는 문화독립·문화광복의 대장정에 오히려 친일파 후손들이 용기를 내어 당당히 동참해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적 치유이자 화해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마주할 가장 감격스러운 화해의 무대이며 위대한 역사의 진보가 아니겠는가.
◆ 꺾이지 않는 K혼(魂)의 선율, 광복 100주년 대서사를 향한 첫걸음
필자는 지난 광복 80주년, 광복 100주년까지 이어질 상징적인 보훈문호 공연를 위해 사재 2천만 원을 털어 8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을 기획했으나 무관심의 벽에 부딪혀 멈춰 서야 했다. 올해 역시 3천만 원을 마련해 공모 사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차가운 낙방만이 되돌아왔다.
혹한의 눈벌판에서 피 흘리며 스러져간 독립선열들의 헌신을 떠올리면, 오늘의 막막함과 외로움은 걸음을 멈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아울러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어떤 시련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교육자로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이자 소명이라 믿는다.
붉은 말의 해, 광복 81주년이 다 저물기 전에 외세에 가려졌던 민족의 혼과 기상을 깨우고, 우리 고유의 숨결과 아리랑의 얼이 담긴 웅혼한 해방의 무대를 선열들의 영전에 바치고 싶다. 광복 100주년을 향해 민족의 소리를 찾아가는 이 벅찬 여정의 길목에서, ‘여기 독립군 있소’ 하며 다가올 이 시대 K문화독립군들의 반가운 동참을 그리며 가슴이 벅차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