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윤의 플러그인] "2053년까지 못 기다린다"…삼성·SK가 HVDC에 사운 건 이유

  • 전력망 사업비 '선부담'…2042년 완공으로 11년 단축

  • 지자체 반발에 3년째 LNG 열병합 발전소 표류

  • 평택 5년 지연 잔혹사 재현되나…지자체 행정력이 관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용인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용인시]


"팹(Fab)만 올린다고 끝이 아닙니다. 당장 전기가 안 들어오면 수십조 원짜리 공장도 거대한 콘크리트 껍데기에 불과해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이 불과 수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근 반도체 업계 관계자가 털어놓은 고충이다.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경쟁이 칩 기술력에서 인프라 확보로 빠르게 옮겨가는 양상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 팹의 핏줄이 될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 확보에 나선다. 차세대 반도체 개발과 수율 잡기도 숨 가쁜 시기에 막대한 재원 부담을 짊어지며 전력망 조기 구축에 사운을 건 것이다.

양사는 전날 정부, 한국전력 등과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전력공급 협약(MOU)'을 체결했다. 동해안과 호남권 전력을 용인으로 끌어올 HVDC  완공 시점을 당초 2053년에서 2042년으로 11년 앞당기는 게 골자다. 정부와 한전이 인허가와 건설 패스트트랙을 맡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조 원대 사업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전력 인프라 비용은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기업이 내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번 협약이 주목받는 이유는 '비용'이 아닌 '시간'에 있다. 누적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의 노력만 기다려선 2053년에나 전기가 들어올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두 기업은 '사업비 선부담'이라는 승부수를 통해 11년의 긴 세월을 끌어당기기로 했다.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난을 뚫기 위한 자구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용인 산단 내에 1GW급 LNG 열병합 발전소를 직접 짓거나 자회를 통해 집단에너지를 공급받는 '자가 발전' 방안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지자체 인허가 난항과 주민 반발에 가로막혀 3년째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6기 팹과 SK하이닉스 4기 팹이 들어설 오는 2040년대 초반이면 용인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은 14GW 이상이다. 원자력 발전소 10기 이상이 내뿜는 전력과 맞먹는 규모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도입이 일반화되고 3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직 적층 공정이 고도화되면서 팹 한 곳당 소모하는 전력량은 과거 대비 2~3배 이상 폭증했다. 자가 발전으로 충당할 수 있는 전력은 전체의 고작 10%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 90% 이상은 외부 송전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놓은 최후의 수단은 초고압 전력 케이블의 속전속결 구축이다. HVDC는 기존 교류 방식보다 장거리 전송 시 전력 손실이 적어 호남의 태양광·해상풍력과 동해안의 원전 전력을 수도권 팹으로 실어 나르는 최적의 '전력 고속도로'로 불린다.

수조 원의 인프라 재원을 '미리 대기'로 확정했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남아있다. HVDC 케이블이 통과하는 수십 개 지자체의 인허가 협의와 송전탑·지중화 건설을 둘러싼 지역 주민의 보상 및 반발 문제는 기업의 재원 부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역시 당진-평택 송전선로 건설 과정에서 지자체 간 갈등과 주민 반대 등으로 전력 공급이 5년 이상 지연되는 곤욕을 치렀다. 공장을 지어놓고도 전원 스위치를 켜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가 반도체 업계에 또다시 반복되는 셈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전무는 "기업이 인프라 재원을 선부담하더라도 결국 핵심은 정부와 한전의 행정력"이라며 "지자체 인허가와 송전선로 주민 보상이라는 산을 넘지 못하면 2042년 완공 역시 머나먼 구호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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