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 칼럼] 통일부와 외교부의 영역 다툼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북문제 전문가에게 배석하여 정부의 대북·통일정책 추진 현황을 파악하고 자문하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회의장에 들어서니 자리를 정부 당국자들과 함께 상석에 배치하여 놀랐다. 통일부 장관의 업무보고가 끝나자 노무현 대통령은 민간 학자들이 의견을 내보라며 정부 당국자들보다 먼저 발언권을 주었다. 노 대통령은 학자·전문가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참여정부는 정책기획위원회, 동북아위원회 등 12개 국정과제위원회를 만들고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관련 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이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위원회 회의가 겹칠 경우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이정우 교수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틀에 박힌 형식적 보고, 상투적 보고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각 부처 업무보고에는 “장차관, 실국장들은 물론이고 국회의원, 관련 전공 교수들도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만기친람형이 아니라 소수 과제 집중형”으로, “일상 정책을 장관과 총리에 맡기고, 국정과제위원회를 지휘해 국가적 장기과제와 씨름”했다고 회고했다.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이재명 정부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국무회의와 부처업무보고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지난 5일에 있은 통일외교안보 관련부처 업무보고는 대통령이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이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관련부처 고위공직자들과 산하기관장들이었고 전공 학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선발된 시민참관단은 보고말미에 의견을 개진했다. 3개 부처 업무보고를 제한된 시간에 동시에 진행하느라 시간에 쫓겨 토론을 진행할 겨를이 없었다.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의 실시간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정부정책에 관한 국민이해도를 높인다는 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과 집행의 책임성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사전 조율 없이 공개된 정책추진 방향과 과제에 대한 불협화음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번 업무보고 이후 통일부와 외교부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하는 볼썽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의도가 무엇이든 정부 부처의 수장인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공개된 정책을 둘러싸고 타 부처의 정책추진을 폄하하거나 영역다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연출하면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통일·대북 정책은 국민의 안위와 관련한 문제라 주요 정책을 사전에 조율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통일 의무를 부여하고, 때론 ‘통치행위’란 명분으로 헌법과 법을 초월하여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대북·통일정책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고유권한이다. 이와 관련한 불협화음은 대통령의 통치권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평화 선순환을 구축하는 평화체제 논의를 개시할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특사 파견과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회담 구상, 북한에 대한 주적 표현을 삭제하고 국호인 ‘조선’으로 호칭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한반도 정세변화 대응을 위한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플러스)’를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조현 외교부 장관은 ‘평화체제·4자회담’ 추진 구상에 대해 “이상주의에 근거한 어떤 희망”, “조율되지 않은 것”이라며 “정 장관이 이상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니 디스카운트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꾼다”고 반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정치철학을 강조했다. 이상과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필요는 없다. 통일부는 바늘구멍도 뚫기 어려울 정도의 현재의 단절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평화특사 파견과 4자회담 추진과 함께, 조선 호칭 사용과 주적 표현 삭제 등 신뢰조성 조치를 검토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외교부 장관이 이상주의라고 디스카운트했다. 이전 업무보고에서 보지 못한 이례적인 장면이다. 평화특사, 4자회담, 동방경제포럼 등이 외교부 소관업무란 점에서 외교부와 협의하지 않은 통일부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것인지, 정부 내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인지, 아니면 청와대의 의중을 반영한 외교부 장관의 총대 메기인지 알 수 없지만 어색한 장면을 반복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북한이 한반도 ‘적대적 두 국가’를 헌법에 명문화하고 남북 사이의 ‘잠정적 특수관계’를 부정하고 있어 통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위축됐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통일부는 신뢰조성 조치와 함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외교’ 필요성을 강조하며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외교부가 이상주의라고 디스카운트했다.

사실상 두 국가시대가 본격화함으로써 통일부의 역할 재정립이 불가피해졌다. 북한이 정책을 바꿀 때까지 ‘통일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시대를 안착시키고 경계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상황관리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통일부의 주 업무였던 남북대화, 교류협력, 대북지원 등이 어려워진 조건에서 통일부는 통일문제와 대북문제를 국가전략 차원에서 다루는 ‘미래전략부’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헌법에 대통령에게 통일의무를 부여하고 있어 통일부의 명칭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역할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 ‘통일외교’와 관련한 부분을 통일부가 담당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통상외교’를 산업통상부가 담당하는 것과 같다. NSC가 조율하고 통일부와 외교부가 협의채널을 구축하면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부의 오랜 불만은 대북정책과 남북대화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도하고, 대북정보는 국가정보원이 독점하며, 정책연구기관은 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소속돼 있어 활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통치구조와 북한의 두 국가정책으로 통일부의 위상이 약화됐지만 ‘미래전략부’로서 그동안 금기시 했던 통일·대북정책과 관련한 ‘근본문제’와 어젠다(한국전쟁을 끝내는 문제, 헌법의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 문제, 북미, 북일 수교문제, 북한전문가 양성 등)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서 활로를 찾길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