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 칼럼] 한국 대만의 반도체산업 성공과 지정학적 리스크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대한민국이 인공지능(AI)시대 핵심국가로 부상했다. 산업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지식·정보혁명과 관련한 기술개발과 투자를 적극화하여 AI시대 핵심부품인 반도체 생산의 선진국이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봉에 섰다. 두 기업이 국내총생산과 수출, 주가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정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3대 메가 프로젝트’(반도체·AI데이터센터·피지컬AI)를 추진하기 위해 4755조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반도체 산업에 국가운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가 주목하는 AI 핵심국가로 부상한 것은 ‘유치를 통한 개발촉진 전략’에 따라 수출주도형 산업화정책을 추진하는 등 세계적 단위의 노동분업 구조에 공세적으로 편입하여 선진기술을 수용하고 발전시켰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핵심국가로 AI시대를 선도하게 된 것은 미국-일본-한국·대만으로 이어진 노동분업을 통해서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기술을 전수받고 창의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일본 반도체와 전자산업 견제의 덕도 봤다. 한국과 대만은 분단국가로 대 공산권 봉쇄의 전초기지로, 미국의 안보지원도 경제적 성공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거 등장한 신생독립국가들이 공산주의 진영으로 흡수되지 않도록 ‘근대화이론’을 제시하고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속하는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비동맹그룹을 결성하고 미국과 소련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남남협조(빈국들 사이의 협력)와 자력갱생 발전전략으로 중심부 국가들의 종속화 정책을 피하려 했다. 반자본주의 좌파운동의 기점인 ‘1968년 혁명’을 계기로 서구에서 ‘반체제운동’이 확산하고, 제3세계 국가들 중 일부는 ‘종속이론’을 신봉하며 사회주의 발전노선을 채택했다.

한국전쟁 직후 이승만 정부는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을 시행했다. 이 전략은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기반을 복구하고 외국산 완제품 의존을 줄여 경제자립을 꾀하려는 전후 재건전략으로, 관세인상, 수입제한, 정부보조금과 산업 육성 지원으로 내수시장을 보호해 국산제품 생산을 키우는 방식이다.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론에 따라 ‘수출주도형 발전전략(유치를 통한 개발 촉진전략)’을 시행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박정희 개발모델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중국 개혁·개방정책(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선행 경험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규모가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것은 이념의 차이에 불구하고 세계적 단위의 노동분업에 함께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초기 산업화는 미국-일본-한국-중국의 위계적 노동분업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한국의 기술수준이 중국이 수용하는 데 알맞았기 때문이다. 한때 일본이 경제적으로 미국을 추월할지도 모른다는 경계감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일본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하면서 한국·대만과 중국이 반사이익을 누리게 됐다.

미국이 세계화를 주창하면서 일부 첨단산업에 집중하고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들을 외주 하면서 기술이전이 빨라져 아시아신흥공업국들이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패권이 쇠퇴하면서 미국은 세계화를 거부하고 피아구분 없이 ‘관세폭탄’을 퍼붓고, 한국의 반도체, 조선, 방산 등에 도움을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 종속이론은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심화돼 선진국은 더욱 부유해지고 후진국(개발도상국)은 더욱 빈곤해진다는 기계적 이분법을 적용했다. 수입대체 산업화로 성공한 브라질,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많은 나라들은 미국의 ‘뒷마당’으로 인식되며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치·경제적 혼란을 겪고 있다. 쿠바는 친소련·사회주의노선을 고집하다가 미국의 봉쇄와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과 대만이 친미·친서방 ‘발전국가’로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데는 공산세력의 팽창을 막아야 한다는 미국과 대의를 함께 하는 ‘반공국가’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냉전 시대 제3세계에 해당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많은 나라들이 지금도 번영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새로운 패권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이들 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세계화에 편승하고 후발효과를 톡톡히 누린 중국이 ‘압축성장’으로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활용해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 등을 통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반도체로 호황을 누리는 한국과 대만의 가장 큰 위협요인은 분단국가의 지정학적 리스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독립·분열 세력을 단호히 타격하고, 외부 세력의 간섭을 반대한다”며 대만과의 완전한 통일을 호언장담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적대적 두 국가관계’ 주장을 펴며 대남 핵무력 사용과 ‘영토평정’을 공언하고 있다.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한국과 대만의 운명은 이들 국가와 평화공존을 어떻게 달성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운영하는 중국은 사실상 ‘국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중상주의 국가다. 따라서 대만문제도 중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심각히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자립경제로 자급자족하는 자력갱생체제를 운영하고 있고, 남북경협사업을 전면 중단한 상태라 대남정책을 추진하는 데서 경제문제는 심각한 고려사항이 아닐 것이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헌법의 영토조항으로 제도화하고 군사분계선(MDL)과 해상경계선을 국경선으로 획정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북한이 개정 헌법 서문에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을 명문화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정의 전면에 나섰다. 수령이 인민생활 향상 등 경제문제 해결에서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내부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할 경우 남북 사이의 경계갈등이 전면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공존정책’은 북한이 내부 위기를 남측으로 돌리지 못하게 하는 전략적 함의를 가질 수 있다. 북한이 수령체제 유지를 위해 ‘적대적 두 국가’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면 수령체제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평화공존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수령체제의 유지·강화·계승이 김정은 정권의 최우선 순위란 점을 감안하여 한반도 평화번영정책을 구체화하고 북한문제가 지정학적 위기로 작동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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