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이후 7년 만에 북한을 국빈 방문했다.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지 9개월 만에 시 주석이 평양을 답방했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과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서 ‘다극화된 세계질서’의 신흥 강국임을 과시한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중 사이의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질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러·우 전쟁이 4년째 지속하고,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중동전쟁이 종전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와중에, 시진핑 주석이 전통 우방인 러시아·북한과 연이어 정상회담을 갖고 중·러·북 연대를 강화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관계’ 설정을 요구했고, 미국은 대중국 ‘관계 관리’에 치중했다. 미·중 정상회담 닷새 후에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를 지적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총알의 이익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미국의 대 이란전쟁을 비판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공동성명을 내지 못했다. 미국이 공개한 팩트시트(설명자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공유된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북한의 반발을 의식하여 이와 관련한 공개 언급을 자제했다. 곧이어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외교고립, 경제 제재, 강압적 압박,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기타 수단에 반대한다”며 북한을 두둔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전후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란 핵개발을 문제 삼아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이 핵보유를 고집하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이란 핵개발과 북한 핵개발에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중동전쟁을 마무리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북한의 요구대로 비핵화 의제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조중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 65주년을 기념하고, 지난해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전승절 참가에 대한 답방으로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하지만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데는 미국과 같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종전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핵 확산에 반대하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는 중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반미삼각연대를 강화하여 ‘신냉전 구조’를 만드는 것은 ‘신형대국’의 국제적 책임을 다한다고 보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 핵개발로 유엔안보리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은 ‘신냉전 다극질서’에 편승하여 국익을 챙기려 하겠지만, 미국과 ‘상호존중’과 ‘전략적 안정의 건설적 관계’라는 새로운 대국관계 모델을 모색하는 중국은 러시아, 북한과 전략적 협력은 강화하되 ‘신냉전 구도’로 얽히는 데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진핑 주석이 방북을 결행한 것은 미·중, 중·러 정상회담의 결과를 설명하고 북·중·러 3국의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전략적 소통과 두만강지역에서의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출해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018∼2019년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시기에 다섯 차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서 양국이 전략적 소통을 한 적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진핑 주석의 방문이라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지난달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밝힌 “북한과 함께 3자 형식으로 두만강을 통한 해상접근에 합의를 도출할 것”이란 의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동해 출해권을 확보하는 것은 중국의 오랜 숙원이다. 중국은 동북3성 개발과 태평양으로의 물류 수송로 확보를 위해 북한의 나진항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중·러 정상이 2024년 공동성명에서 발표한 “건설적인 대화를 추진할 것”이란 내용보다 진전된 3자 형식의 두만강을 통한 해상접근 합의 도출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북·중·러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고 북한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두만강을 통한 해상접근에 협력하고 2009년에 탈퇴 통고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에 다시 합류한다면 훈춘-블라디보스토크-나진이 동북아 초국경 협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두만강지역에서 물류·교통·항만·에너지·산업·관광 등 다방면의 협력 가능성이 열리면 이를 통한 남북협력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두만강을 통한 해상접근의 핵심은 나진항 개발이다. 두만강을 통한 해상접근 통로가 열리고 두만강지역에 동북아의 초국가적 경제협력지구가 만들어진다면 역내 국가들의 공동번영과 평화·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주된 목적이 ‘북한 비핵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되지 않고, 중간선거를 앞둔 성과 만들기나, 반미연대의 세력권 만들기로 흘러서는 안 된다. 6·25전쟁의 교전당사국이자 정전협정 서명당사국인 미·중이 한국전쟁을 끝내는 결단 없이는 북핵문제 해결도 어려울 것이다. ‘북한 비핵화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미·중정상의 의례적인 말보다는 최장기 휴전상태인 한국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미·중정상의 행동이 필요하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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