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중국이 약 6년 만에 히마찰프라데시주 시프키라(Shipki-La) 국경을 통한 무역을 재개한 것은 단순한 지역 경제 뉴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직접적인 수혜는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와 중국 티베트 자치구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겠지만, 이번 결정은 최근 수년간 경색됐던 양국 관계와 급변하는 국제경제 질서를 고려할 때 보다 큰 지정학적 함의를 지닌다. 이는 아시아의 두 거대 국가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양국 관계를 어떻게 재조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달 1일, 첫 번째 인도 상인 16명이 티베트로 향하면서 시프키라 무역로가 공식적으로 재개됐다. 인도 정부는 국경무역 활성화를 위해 시프키 마을에 현대식 무역센터(Trade Mart)를 개장했으며, 양국은 기존 국경무역 협정에 따라 수십 개 품목의 교역을 허용했다. 경제 규모 자체는 제한적이지만 정치적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 시프키라 고개는 오랫동안 인도 북부와 서부 티베트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히말라야 교역로 가운데 하나였다. 현대 국가체제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이곳에서는 소금, 양모, 농산물, 직물 등이 거래됐으며, 국경 지역 주민들 간 경제적·문화적 교류의 통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62년 중·인 전쟁이후 국경무역은 장기간 중단됐고, 양국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야 제한적으로 재개됐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19년 다시 중단되면서 양국 간 거의 유일하게 유지되던 제도적 경제협력 창구도 사실상 멈추게 됐다.
이번 무역 재개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는 또 다른 전략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20년 갈완 계곡(Galwan Valley)에서 발생한 유혈 충돌 이후 인도와 중국은 수십 년 만에 가장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겪었다. 양국은 국경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했고, 인도는 중국 기업의 투자 심사 강화, 중국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금지, 인프라 사업 제한 등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다. 이후 양국 관계는 전략적 경쟁이 중심이 되는 국면으로 전환됐다.
이는 최근 국제정치에서 나타나는 보다 큰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 10여 년간 국제사회에서는 공급망 재편,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 경쟁이 주요 화두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안보와 경제를 완전히 분리하기보다는 분야별로 선택적으로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사례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인도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중국에 대한 경계를 유지하면서도, 상호 이익이 존재하는 영역에서는 경제협력을 지속하려는 접근을 취하고 있다. 중국 역시 경제 성장 둔화와 복잡해지는 대외 환경 속에서 주변국과의 경제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더 나아가 이번 국경무역 재개는 국제경제 질서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은 관세 부과, 첨단기술 수출 통제, 반도체 및 전략산업 규제 등 다양한 일방적 경제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동시에 각국으로 하여금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경제 파트너를 다변화하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많은 국가들은 세계화를 '통합'과 '디커플링'이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기보다, 전략적 자율성과 경제적 실용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인도의 대외전략 역시 이러한 흐름과 일치한다. 인도는 미국, 일본,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지속하면서도 경제협력의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있다. 이는 특정 진영에 편입되기보다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려는 인도의 외교 원칙을 반영한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아시아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인도와의 관계 역시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현실적 접근을 통해 관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시프키라 국경무역 재개는 단순한 지방 행정 조치가 아니다. 이는 전략적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상호 이익이 존재하는 분야에서는 협력을 모색하려는 새로운 지역 경제질서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아시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안보 문제에서는 경쟁하면서도 무역과 투자, 공급망 협력은 지속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즉, 지정학적 경쟁이 반드시 경제적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들은 경쟁은 경쟁대로 관리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필요한 협력은 유지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인도와 중국 사이에는 국경 문제, 지역 패권 경쟁, 해양안보, 첨단기술 경쟁 등 해결해야 할 구조적 갈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양국 모두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단절이 가져올 비용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결국 이번 시프키라 무역 재개가 갖는 의미는 교역 규모 자체보다 그것이 보내는 정치적 신호에 있다. 즉, 전략적 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양국이 실질적인 경제협력 채널을 점진적으로 복원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향후 이러한 움직임이 보다 폭넓은 경제관계 정상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시프키라라는 오랜 히말라야 교역로의 재개는 앞으로의 아시아 질서가 단순히 대립과 블록화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오히려 새로운 국제질서는 전략적 경쟁과 경제협력이 동시에 공존하는 보다 복합적인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번 국경무역 재개는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라지브 쿠마르 필진 주요 이력
▷한-인도 포럼(India–Korea Forum) 회장,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초빙연구원, 전 미국 동서문화센터(East-West Center) 객원연구원, 인도 델리대학교 학사,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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