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신임 주한 미국 대사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무려 18개월의 공백 끝에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 주 서울에 도착했다. 미셸 스틸 신임 대사에게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간 지 51년 만의 금의환향이다. 그러나 스틸 대사의 앞날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2010년대 초 성 김에 이어 두 번째 한국계 미국인 대사로 부임하는 스틸 대사는 모국 땅에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한국과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점은 격동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한미 양국 관계를 재정립하는데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스틸 대사의 지나치게 선명한 정치색은 안보,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한미 간 마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점은 스틸 대사의 한국 도착 첫날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인천 공항을 입국하는 과정에서부터 지지자들의 환영 집회와 비판자들의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지지자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임을 크게 얻고 있는 스틸 대사가 산적한 한미 관계의 여러 이슈들을 잘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그러나 동시에 비판자들은 그녀를 극우 보수 반공주의자로 규정하며 공격했고 진보적인 한국 정부와의 갈등을 예고했다.
 
한국 내 이러한 미묘한 분위기를 인식해서인지 신임 대사의 도착 일성은 원론적 수준이었다. “우리(한미)의 철통같은 동맹이 역내 평화와 안보를 위한 핵심축(linchpin)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한국과 협력하기를 기대한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아울러 한미 관계를 피로 맺어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먼저 스틸 대사의 가장 큰 자산은 한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양국 간 외교를 보다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오래 이어진 대사 공백 이후 이러한 점은 더욱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는 과거 양국 간 종종 발생했던 오해나 소통 부족에서 비롯된 외교적 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계 이민 여성으로서 미국에서 이러한 고위직에 오른 그의 이력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그의 임명은 한국과 주미 한국인의 위상이 함께 상승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는 100여 년 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미국에 건너갔던 초기 한인 이민 시대와는 크게 대비된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군사·경제적 지원에 의존하던 가난한 국가였고, 한인 사회 역시 미국 사회의 하층에 머물렀다. 그러나 한국이 외교·경제·문화적으로 세계적 위상을 높여감에 따라, 한인 사회 역시 성장하여 오늘날에는 의회와 주요 기관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자리 잡았다.
 
스틸의 개인적 여정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현재 71세인 그는 1975년 이민자로 한국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으며, 이후 공화당의 유력 인사가 된 변호사 남편과 함께 생활했다.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된 것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었다. 당시 한인 사회가 겪은 큰 피해를 목격한 그는 정치 참여를 결심하고 공화당에 입당했다.
 
페퍼다인대학교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이후 지방정부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와 한인 인구가 많은 오렌지카운티에서 세무 행정 등 업무를 맡으며 공직 경험을 쌓았다. 2020년에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최초의 한국계 여성 하원의원이 되었고, 2022년 재선에 성공해 두 차례 임기를 수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충실한 지지자인 그는 4월 주한 대사로 지명되어 6월 상원 인준을 받았다.
 
하지만 스틸 대사의 부채 역시 분명하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세계관에 대한 강한 추종이 문제로 지적된다. 스틸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중국 견제를 강조하며, 한국이 인도 태평양 전략 경쟁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한미동맹을 한반도를 넘어 보다 넓은 지정학·지경학적 틀로 확장하려는 워싱턴의 구상은, 역내 갈등에 깊이 휘말리는 것을 경계하는 한국의 입장과 충돌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직접적인 대립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 문제 역시 잠재적 갈등 요인이다. 신임 대사는 부모가 북한 출신 실향민으로 강한 반공주의적 성향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적극적 입장을 보여왔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 북한과 평화선언을 추진하려던 과거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대해왔다. 이러한 강경한 입장은 북한과 대화와 협력을 추구하려는 이재명 진보 정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민감한 이슈가 예상된다. 스틸 대사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강하게 지지해왔으며,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도 한국의 대미 3,500억 달러 투자 이행을 촉구하고 한국 내 미국 기술 기업 보호 강화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에 상장된 쿠팡의 정보 유출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제재에 대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사실 스틸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정치 임명직 인사라는 점에서, 정파적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직업 외교관과 달리 정치적 논란에서 거리를 두거나 엄격한 중립성을 유지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그의 역할은 당파적 시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의 임명을 둘러싼 반응은 이미 엇갈리고 있으며, 서울의 진보 진영은 비판적인 반면 보수 진영은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상원 인준 과정에서도 이러한 분열이 드러났다.
 
반면 과거 성 김 전 대사는 이러한 논란을 비교적 피해갔다. 직업 외교관이었던 그는 국내 정치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서 활동할 수 있었고, 당시 미국 외교는 지금보다 덜 정치화된 환경 속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미국 외교는 이전보다 훨씬 정치화되었으며, 스틸 대사가 워싱턴과 서울 양측의 정치적 균형을 맞추려 할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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