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불리는 중국 D램 선두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27일 증시에 상장하면서 최대 수혜자로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가 주목받고 있다. 허페이시 산하 국유 투자 플랫폼이 CXMT에 10년 가까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온 만큼 상장에 따른 막대한 평가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CXMT·BOE 등 투자 큰손 '허페이시 벤처투자'
메모리 반도체는 기술 난도가 높은 데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필요하고 투자금 회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산업이다. 허페이시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CXMT에 1000억 위안(약 21조5870억원) 이상의 자금을 장기간 투자하며 사실상 벤처캐피털 역할을 해왔다. CXMT 상장을 계기로 지방정부가 전략산업의 벤처투자자로 나서는 이른바 '허페이 모델'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허페이산업투자그룹을 비롯한 허페이시 산하 국유 투자 플랫폼들이 보유한 CXMT 지분은 약 45%에 달한다. 중국 기업 매체 중국경영보는 CXMT 상장 이후 이들이 보유한 CXMT 지분 가치가 약 1조 위안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CXMT가 처음은 아니다. 허페이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처했던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에 175억 위안을 투자했고, 2020년 초 적자에 허덕이던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니오에도 70억 위안을 투입했다. 또 중국 상업용 드론 제조업체 이항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무인 전기 수직이착륙기(VTOL)의 중국 내 상업 운항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도 디스플레이 기업 비전옥스, 반도체 기업 넥스칩 등이 허페이시 투자 플랫폼이 투자한 대표적인 첨단기술 기업으로 꼽힌다. 투자 대상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전기차, 드론 등 중국 정부가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분야에 집중됐다. 지방정부가 직접 지분을 확보하고 장기간 자금을 공급해 산업 생태계 전체를 키우는 것이 허페이 모델의 핵심이다. 중국 사모펀드 투자 황제로 불리는 단빈이 "허페이가 중국의 최대 벤처 캐피털 기관"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투자펀드를 활용해 첨단기술 기업과 공급망을 허페이로 끌어들인 결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내륙 도시 허페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허페이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8%로, 연간 GDP가 1조 위안을 넘는 중국 도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
허페이 모델은 글로벌 신용평가사로부터도 주목받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스는 지난달 허페이시 정부의 지배력과 감독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허페이산업투자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라모나 첸 피치 부이사는 "허페이산업투자의 전략적 투자 포트폴리오가 허페이시의 5개년 계획과 점점 더 긴밀하게 연계되고 있으며, 경제 전반에서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침체에 각 지방정부 '허페이 모델' 모방
허페이 모델은 최근 중국 전역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수년간 이어진 부동산 침체로 부채를 활용한 인프라 투자와 부동산 개발 중심의 전통적인 성장 방식에 대한 중앙정부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지방정부 투자 플랫폼이 새 투자처를 찾아 첨단산업 스타트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 중부 내륙의 후베이성 우한은 최근 인공지능(AI)에 특화된 10억 위안 규모의 신규 펀드를 출범시켰다. 이 펀드는 후베이성 정부와 우한시 산하 투자 플랫폼이 공동으로 자금을 출자했다. 우한 남쪽의 후난성 창사에서도 국유 산업단지 개발업체가 건설기계와 신에너지차 등 첨단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대규모 산업펀드를 조성했다.
미·중 기술 경쟁으로 중국 첨단기술 기업을 둘러싼 해외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한 것도 지방정부 투자 플랫폼의 역할이 커진 배경이다. 미국의 대중국 투자 규제가 강화되고 중국도 핵심 기술과 전략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접근을 경계하는 상황에서 전략 신흥산업 분야 스타트업들의 지방정부 투자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허페이 모델이 중국 전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투자할 만한 우수 첨단기술 기업은 한정돼 있는 반면 여러 지방정부가 앞다퉈 비슷한 전략산업을 유치하면서 중복투자와 과잉생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방정부가 중앙정부가 육성하는 전략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사한 기업에 경쟁적으로 투자할 경우 자금이 생산성이 낮은 분야로 흘러가거나 지역 간 과도한 경쟁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벤처 투자를 경계한 중국 정부도 지방정부의 신규 투자펀드 설립을 엄격히 통제하는 내용을 담은 사모투자펀드의 감독 강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지난달 발표해 시행에 돌입하기도 했다. 데이비스 선 피치 선임이사는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정부 간 과도한 경쟁을 억제하고 동일 분야에 대한 반복적인 투자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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