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진짜 공포란, 정해진 길로 반드시 가게 돼 있는 것

종구(곽도원)가 무명(천우희) 말대로 닭이 3번 울기 전까지 딸 효진(김환희)에게 가지 않았다면 종구의 가족은 그 참혹한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영화 ‘곡성’에서의 마지막 비극은 어차피 일어났을 일이었다.
 
닭이 세 번을 울든, 백번을 울든, 악귀가 씌인 효진이는 망설임 없이 칼날을 휘둘렀을 것이다. ‘이 구역의 미친 X’이 콘셉트였던 무명의 ‘신력’이랄까, 아무튼 그 힘은 외지인에 비하면 비교가 안되게 약체였던 것 같다. 효진에게 달려가려 했던 종구를 창백하고 퍼런 작은 손으로 무명이 붙잡고 있었던 건 종구라도 살리려고 했던 걸지도.
 
영화 곡성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 '곡성'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 ‘곡성’을 두고 인간의 나약함과 의심으로 불러들인 비극이라고, 혹은 잘못된 인간의 선택으로 인한 파멸이라고, 짐짓 안타까워하면서 이 영화를 설명하려고 한다. 허나 필자는 그러한 설명에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의 의심과 나약함에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인지.
 
무작위로 아무 사람을 택하여 혼을 어지럽히고, 그들의 가족까지 다 해치도록 만드는 외지인과 일광의 패악적 수집활동이 죄라면 죄. 나는 오롯이 외지인과 일광, 두 사람의 죄만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람들의 혼을 수집하며 전국 팔도강산을 헤집고 다니는가. 미끼를 문 물고기 마냥, 불쌍하고 나약한 사람들은 끝이 정해진 파멸의 길을 속절없이 들어선다.
 
정해진 길, 비극의 새벽을 맞는 여정이 영화 ‘곡성’에 있고 그 여정에 동화된 관객은 무력하기 그지 없는 공포에 빠진다. 나름 화목했던 종구의 가족을 기어코 절단 내버리는 영화 속 악의 기운은 너무 강력하다.
 
종구는 동네 사람들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나름 이 정해진 결말을 바꿔보겠노라 뼈 빠지게 애를 쓰는데 어림도 없다. 이 일을 통해 도대체 어떤 이득을 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외지인과 일광, 이 원팀은 루틴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누구보다 침착하고 간교하게.
 
영화 ‘곡성’이 한국의 오컬트 장르로서는 뛰어난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런 무기력과 속절없음을 관객들이 생생하게 느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곡성’의 기운은 더욱 공포스럽고 괴기하며 무참하다.
 
이렇듯 인간의 무력감이 공포로 환원되는 또 하나의 오컬트 수작이 있다. 웬만한 공포·호러 영화로는 무서움을 느끼지 못했던 필자에게는 21세기 들어 최고의 공포영화다. 바로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이다.
 
영화 제목인 ‘유전’은 ‘Hereditary’, 즉 부모의 체질, 성격, 형상 등이 자손에게 전해진다는 뜻의 ‘유전’이다. 영화는 악마 ‘파이몬’을 대대로 숭배하고 모시는 어떤 가문에서 가업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친절하고 거침없이 안내하는 작품이다.
 
영화 유전 사진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유전' [사진=(주)팝엔터테인먼트]

파이몬이 지정한 이 가문의 업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 된다. 흔히 대부분의 악은 다 물리칠 수 있다고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모성, 그 고귀한 사랑의 힘도 파이몬 앞에서는 쓸모가 없다.
 
평범한 상업 공포영화였다면 ‘유전’의 애니(토니 콜렛)는 어머니로서 자신의 자식에게 파이몬의 대리자로 행세해야 하는 업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테고 결국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 애스터 감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애니의 모든 노력은 다 그저 맨땅에 헤엄치는 것만 못한 발버둥에 불과했고 그는 오롯이 파이몬의 ‘몸’이 될 아들을 바친다. 그리고 필요 없어진 자신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숭배의 들러리로서 엎드려 절한다.
 
한 가정의 몰락에 이은 성공적인 의식. 영화는 마치 파이몬이 자신이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특별한 의식을 잘 치러야 한다고 이 가족에게 확실히 알려주겠다는 듯 온갖 시련을 퍼붓다시피 한다. 그 과정은 모두 공포의 요소가 되어 관객을 질리게 만든다.
 
애니의 딸 찰리(밀리 샤피로)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것, 애니의 남편 스티브(가브리엘 번)가 불에 탄 것 모두 파이몬이 이 가정에 친히 내려준 양질의 불행들이다.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는 반복되는 파이몬의 강요에 못 이겨 자신의 몸을 창밖으로 던져 추락까지 감행하였으나 부여 받은 숙명이 있기에 그는 일어나 아담한 의식의 방으로 이끌리듯 들어간다.
 
그러니까 영화 ‘유전’을 가리켜 ‘파이몬의 로드무비’라고 칭한 어떤 평론가의 말마따나 이 영화는 정해진 길을 향해 거침없이 간다. 그 과정에서 초토화된 한 가정의 사정은 파이몬이 알 바가 아니다. 무심하게 가던 길을 가는 파이몬의 여정 뒤로 파괴된 애니, 스티브, 찰리, 피터의 흔적이 엄청난 공포로 남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오큘러스’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 2014년에 개봉해서 30만명도 안되는 관객수를 기록해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은 영화다. 이 영화 역시 한 가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오큘러스 사진씨네그루
영화 '오큘러스' [사진=씨네그루]

어디선가 주워 온 대형 거울을 집 안에 들여놓은 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서로 오해하고 저주하게 되면서 사달이 난다. 미쳐버린 어머니를 어떤 존재에게 장악당한 아버지가 총을 쏴 사망케 하고, 자식인 어린 남매에게까지 그 위험이 뻗친다.
 
한참 동안 아버지를 피해 추격전을 벌인 남매는, 살짝 깨진 거울의 틈을 타 잠깐 정신을 차린 아버지가 스스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공포의 시간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일단락된 줄 알았던 이 거울의 저주는 11년이 지나 남매가 장성한 후에 고스란히 이어진다.
 
남동생 팀(브렌튼 스웨이츠)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저 몹쓸 거울이 벌인 일임을 증명하려고 누나 카일리(카렌 길런)는 출소한 팀과 함께 옛집으로 굳이 걸어들어간다. 기세등등하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거울에 깃든 정체 모를 어떤 존재의 증거를 밝히려 든다.
 
하지만 예상대로 이 남매 역시 정해진 길을 향해 간다. 흉악한 그 어떤 것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큰 거울은 그저 자신이 하던 대로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 존재는 거울을 중심으로 반경 수십미터 안에서 자유자재로 환각을 일으키는 능력 있고, 그 능력으로 거울 주변을 알짱거리는 대부분의 존재를 사망하게 만든다. 딱히 이유도 없고 감정도 없다. 마치 매일 하던 일을 직업인 양 계속 할 뿐이다.
 
카일리는 거울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밤새 그 주변을 들쑤시고 다니다 결국 사망하여 그 집에 지박령처럼 묶여 버렸다. 아마 아주 오랜 세월 그 집에 붙들려 다른 사냥감을 기다릴 것이다.
 
부모를 잃고 유일하게 남겨진 가족으로 애틋하게 관계를 이어 온 남매의 슬픈 사연은 거울에 깃든 존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거울과 연관된 이상 그들의 죽음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곡성’, ‘유전’, ‘오큘러스’ 이 세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압도적인 힘에 의한 필연적인 파멸이 담겨 있다. 그 ‘필연성’은 생각보다 강력한 공포를 자아내며, 동시에 슬픔도 가져온다.
 
공포는 언제나 어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애써도 끝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큰 공포가 된다. '곡성'의 종구도, '유전'의 애니도, '오큘러스'의 카일리도 결국 그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무섭기 이전에, 오래도록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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