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으면 팔리고, 싸면 경쟁력이 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제품이라도 어떤 원료를 사용했는지, 포장재는 재활용이 가능한지, 건강 기준을 충족하는지까지 시장의 평가 대상이 된다. 이제 식품기업은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기준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환경과 안전, 소비자의 알 권리까지 기업 경쟁력을 평가하는 새로운 잣대로 자리 잡으면서 경쟁의 룰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는 8월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다. 이 규정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순환경제를 확립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장 8월부터 식품 접촉 포장재에 대한 유해물질 규제가 시작되고, 2030년부터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재활용 가능성을 갖춘 포장재만 시장 출시가 가능해진다. 연간 수출액 3조원 돌파를 앞둔 국내 라면업계의 고심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소재를 결합한 복합재질 라면 봉지는 현재 기술로는 쉽게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농심과 삼양식품 등 주요 기업들은 새로운 포장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품질을 유지하면서 재활용성까지 확보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다.
변화는 포장재 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럽 거래선들은 이미 국내 식품기업에 포장재 관련 시험성적서와 적합성 선언서(DoC) 등 각종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제품이 기준에 맞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도 기업의 중요한 업무가 됐다. 여기에 지난 4월 독일에서 발생한 삼양식품 까르보 불닭볶음면의 리콜 사례는 또 다른 시사점을 남겼다. 식품 원료에 대한 국가별 해석 차이가 변수로 작용한 사례였다. 앞으로도 어느 나라에서 어떤 기준이 새로운 장벽으로 등장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연말부터는 GMO(유전자변형식품) 표시제가 강화된다. 앞으로는 최종 제품에서 유전자변형 성분이 검출되지 않더라도 GMO 원료를 사용했다면 이를 표시해야 한다. 원료 관리부터 포장재 교체, 표시 변경까지 기업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가당음료를 대상으로 한 설탕부담금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제품 개발과 가격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하나의 변수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이는 적지 않은 비용이다. 새로운 포장재를 개발해야 하고, 공급망을 다시 관리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레시피와 제품 전략까지 수정해야 한다. 연구개발 비용과 행정 부담은 물론 시장의 불확실성도 함께 커진다. 규제가 늘어날수록 기업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마냥 족쇄로만 볼 수는 없다.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운 만큼 더 높은 환경·안전·건강 기준을 요구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도 하다. 까다로운 글로벌 기준을 선제적으로 충족한 기업은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이는 후발 주자가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규제는 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정부 역시 예측 가능한 제도와 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기업의 혼란을 줄여야 한다.
진화론을 상징하는 말이 있다.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라는 것이다. K-푸드의 경쟁력 역시 맛과 가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변화하는 기준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가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의 다음 성장을 좌우할 핵심 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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