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성장하려면 투자가 필요합니다."
기업들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할 때마다 반복하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왜 성장 비용을 기존 주주가 부담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2차전지 대장주로 꼽히는 에코프로비엠이 대규모 유상증자가 나서면서 '성장 투자'와 '주주가치 보호'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날까지 6거래일 연속 하락했습니다. 유상증자 발표 직전인 15만4500원이던 주가는 12만200원까지 22.20% 급락했습니다. 모회사 에코프로 역시 동반 약세를 보이며 시장의 우려를 반영했습니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달 30일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신주 990만990주를 발행하며 예정 발행가는 12만1200원입니다. 조달 자금 가운데 9150억원은 타법인 증권 취득, 1500억원은 시설자금, 약 135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회사는 이번 유상증자가 전기차 시장 회복에 대비한 선제 투자라고 설명합니다.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 프로젝트를 통해 핵심 원재료 공급망을 확보하고, 헝가리 공장 투자로 생산능력을 확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입니다. 단기 실적보다 장기 성장 기반 마련에 초점을 맞춘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했습니다. 기존 발행주식의 약 10%에 달하는 신주가 새로 발행되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와 주당순이익(EPS)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에 즉각 반영됐습니다. 할인 발행이 이뤄지는 유상증자의 특성상 단기적으로는 주가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습니다. 주주 플랫폼 액트는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 중점심사를 요청할지를 결정하는 주주 투표에 착수했습니다. 액트는 유상증자 발표부터 증권신고서 제출, 주주 설명까지 하루 만에 이뤄진 점을 지적하며 충분한 사전 소통이 없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조달 자금의 76%인 9150억원이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소 투자에 투입되는 만큼 투자 구조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모회사 에코프로가 보유한 기존 제련소 지분의 평가 방식, 에코프로비엠 투자금의 지분 투자와 주주대여금 비중, 생산되는 니켈의 계열사별 배분 기준 등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논란은 올해 처음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화솔루션입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3월 채무 상환 등을 위해 2조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금융감독원의 반복된 제동에 직면했습니다. 금감원은 4월 9일과 30일 두 차례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고, 회사는 유상증자 규모를 1조7000억원으로 변경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계획을 수정한 끝에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심사의 핵심은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차입금을 갚기 전에 다른 자금조달 방안을 충분히 검토했는지, 기존 주주의 부담은 최소화했는지, 조달 자금의 필요성을 충분히 소명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이는 올해 금융당국의 심사 기조가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공시 요건을 충족하는지가 주된 심사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유상증자가 일반주주의 이익을 과도하게 훼손하지 않는지까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까지 확대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같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회사는 성장 투자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하지만, 금융당국과 시장은 실제로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투자 구조는 합리적인지, 기존 주주 보호 방안은 충분한지를 함께 살펴볼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이번 유상증자의 성패는 규모가 아니라 설득력에 달렸습니다. 조달한 1조2000억원이 실제로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장에 입증해야 하는 것이지료. 이제 유상증자는 단순한 자금 조달 절차를 넘어, 주주를 얼마나 설득하고 주주가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평가 받는 과정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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