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형 랩 '고가매입·만기미스매칭' 제동…금감원 "증권사 60~70% 배상해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채권형 랩어카운트(랩) 상품을 운용하면서 기업어음(CP)과 채권을 시가보다 비싸게 매입하고 만기 미스매칭 전략으로 고객에게 손실을 입힌 증권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자본시장법상 투자일임업자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선관주의)와 충실의무 위반에 대해 민사상 배상 책임을 명시한 첫 분쟁조정 사례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전날 투자일임계좌 운용 과정에서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채권형 랩 분쟁 2건을 심의해 증권사가 고객 손해액의 60~70%를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채권형 랩은 증권사가 고객과 1대 1 투자일임 계약을 맺고 자산을 운용하는 상품이다. 법인 고객의 단기자금 운용 수단으로 활용돼 왔지만,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금리가 급등하고 채권 가격이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해 분쟁이 이어졌다.

분조위는 증권사가 고객 자산을 운용하면서 시가(민평금리)보다 높은 가격으로 CP와 채권을 매입한 행위와 상품 만기를 앞두고 잔존만기가 10개월에 이르는 장기 채권과 CP를 편입한 뒤 시장 변동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점을 선관주의 및 충실의무 위반으로 판단했다.

특히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상당수 고가 매수 거래가 다른 고객의 목표수익률을 맞춰주기 위한 이른바 '제3자 이익도모' 목적이었던 점과 과거 유사한 불건전 영업행위로 제재를 받고도 재발 방지 노력을 하지 않은 점도 책임을 인정한 근거로 제시됐다.

분조위는 손해액 산정 기준도 법원의 판단과 동일하게 적용했다. 증권사가 적법하게 운용했다면 고객이 만기에 목표수익률 수준의 원리금을 지급받았을 것으로 보고, 실제 상환금액과의 차액을 손해액으로 인정했다.

금감원은 증권사가 2022년 7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상환한 채권형 랩 1210건 가운데 93.6%(1133건)가 목표수익률 수준으로 상환됐고, 신청인들도 과거 수십 차례 목표수익률을 달성한 경험이 있어 이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분조위는 법원의 1심 판결에서 인정한 배상비율 70%를 참고하되 투자 목적과 운용 지시 이행 여부, 거래 양태, 투자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신청인별 배상비율을 달리 적용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는 신청인 A에게 손해액의 70%인 12억6000만원, 신청인 B에게는 손해액의 60%인 3억9000만원을 각각 배상하도록 결정됐다.

이번 결정은 자본시장법상 투자일임업자의 선관주의·충실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한 첫 분쟁조정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금감원은 투자일임 재산을 위법하게 운용할 경우 행정 제재뿐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올해 2월 채권형 랩·신탁의 자본시장법 위반과 관련해 9개 증권사에 기관경고·기관주의와 총 289억7000만원 규모의 과태료를 부과한 바 있다.

이번 조정안은 당사자들이 조정안을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수락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금감원은 앞으로도 채권 거래의 적정 가격 산정 등 건전한 운용 관행 정착을 유도하고 분쟁조정을 활성화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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