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계획이 4개월 만에 바뀌었다. 지난달 28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상향했다. 올해 1월 목표 비중을 한 차례 수정한 지 불과 넉 달 만이다. 코스피가 8000선을 돌파하며 국내 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크게 웃돌자 리밸런싱에 따른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한 조정이었다.
시장은 안도했다. 올해 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24.5%에 달하는 상황에서 기존 목표가 그대로 유지되면 수십조 원 규모의 매도가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의 기계적 매도는 증시 수급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목표 비중 상향은 국민연금에는 리밸런싱 부담 완화였고 시장에는 매도 압력 해소였다.
다만 숫자가 아닌 원칙에 눈길이 간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5월 '2026~2030년 중기자산배분안'을 확정하며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4%로 정했다. 이는 전략적 자산배분(SAA)에 따른 결정이었다. SAA는 향후 5년간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정하는 장기 운용 체계다. 단기 시장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방향을 바꾸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장기 기대수익률과 위험 수준을 토대로 자산 비중을 설정하고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그러나 시장이 계획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원칙도 수정됐다. 국민연금은 앞서 올해 1월 목표 비중을 14.9%로 상향했다. 전년도에 확정한 자산배분 계획을 변경한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불과 넉 달 뒤 목표 비중은 다시 20.8%로 높아졌다. 이와 함께 기금위는 변동성이 확대된 국내 증시 상황을 고려해 국내 주식의 SAA 허용 범위도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SAA의 존재 이유는 시장의 단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데 있다. 목표 비중을 맞추기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이를 수정한다면 자산을 계획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자산에 맞추는 것에 가깝다. 업계 일각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중기자산배분안의 취지를 고려할 때 올해 들어 두 차례 이뤄진 조정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5년 단위 장기 계획이 수개월 사이 연이어 수정되면서 예측 가능성이 약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나아가 파장은 국내 주식 비중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이 대폭 확대된 만큼 상대적으로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 등 글로벌 자산군의 비중 확대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국내 자산 편중을 완화하고 자국 경제와 동조화하는 위험을 낮추기 위해 해외 투자를 꾸준히 늘려왔다. 시장 변화에 대응해 국내 주식 비중을 높이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수년간 추진해 온 글로벌 분산투자 원칙 역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1500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원칙만을 앞세워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대규모 매도는 시장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가입자 수익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결정 역시 시장 안정과 기금 수익성을 함께 고려한 현실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동시에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계획은 시장 참여자들이 향후 수급을 가늠하는 기준점이자 국내 자본시장의 중요 신호로 기능한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수익률만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다.
결국 이번 결정이 남긴 쟁점은 시장 상황에 따라 목표를 수정하고 기준을 조정하는 일이 반복될 때 5년 단위 전략적 자산배분 계획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원칙의 가치는 지키기 어려울 때 증명된다. 국민연금이 추구해야 할 것은 안정적인 수익률만이 아니다. 장기 계획이 단기 시장 흐름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역시 지켜야 할 자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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