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빚만 늘리는 '포용금융' 되지 않으려면

하나, 둘, 셋, 넷. 얼마 전 오랜만에 고향 동네를 걷다가 건물마다 붙은 '임대 문의' 종이를 세어봤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키던 점포들마저 문을 닫은 모습에 자영업자가 직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장의 어려움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말 기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 10명 중 6명은 세 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로 나타났다. 여러 금융권에서 돈을 끌어와 생계를 유지하고 기존 대출을 상환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구조가 고착됐다는 의미다.

이에 정부는 해법으로 '포용금융'을 제시하고 있다. 취약계층과 자영업자 등에게 금융 지원을 확대해 금융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접근성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서민금융안정기금을 통해 새희망홀씨와 햇살론, 청년 미래이음 대출 등 정책 상품도 잇따라 큰 폭으로 금리를 낮추고 있다. 중·저신용자의 금융 문턱을 낮추기 위한 신용평가체계 개선 논의도 함께 진행 중이다.

포용금융 확대 자체는 분명 필요한 정책 방향이다.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 속에서 취약계층이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막고 최소한의 금융 안전망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돈을 성실히 갚아 신용을 쌓은 차주에게는 정책서민금융을 졸업하고 제도권 금융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제공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다만 포용금융 논의가 자칫 '대출 확대' 자체에만 머무르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현재 자영업 현장은 단순한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소비 위축과 비용 부담 증가가 동시에 이어지는 구조적 어려움에 놓여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국회미래연구원이 전국 자영업자 30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원자재·재료비 부담'과 '동종업계 경쟁 심화'로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는 비중이 각각 68.7%와 66.2%로 집계됐다. '신규 고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대답도 65.9%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 대출 공급만 반복될 경우 금융 지원이 재기의 발판이 아니라 기존 부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단순 대출 지원을 넘어 금융 취약계층의 실질적인 자립을 돕는 포용금융으로 확대돼야 한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1월 '포용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하며 취약계층의 제도권 금융 안착과 자립을 핵심 가치로 설정한 바 있다. 이 선언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영업자 등 금융 취약계층의 재기와 회복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변화한 내수 시장과 사회 구조 안에서 다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단순히 대출 총량만 늘리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취약계층의 실질적인 재기와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실히 빚을 갚는 이들에게는 이자 부담을 덜어주고,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는 신속히 조정해주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무리한 영업 연장을 유도하기보다 임금 근로자로의 전직이나 질서 있는 폐업을 돕는 지원이 효과적일 수 있다.

자영업자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비금융적 지원도 필수적이다. 배달 플랫폼과 온라인 유통이 주류가 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디지털 전환 교육과 판로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업종 전환이나 재취업 과정에서 필요한 직업 교육과 생활 안정 지원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포용금융의 성공 여부는 시장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공급했느냐 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시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는가로 평가돼야 한다. 그랬을 때 포용금융이 실질적인 금융 정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김지윤 기자
[사진=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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