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한화에어로 이어 SK하이닉스까지…첨단산업의 기본은 안전이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은 무엇인가. 반도체와 방산, 배터리와 인공지능(AI)을 꼽는 데 이견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첨단산업 육성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고,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르는 산업 현장 사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첨단산업 경쟁력의 출발점은 기술인가, 아니면 안전인가.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공장에서 장비를 옮기던 작업자 2명이 유독 화학물질로 추정되는 액체와 접촉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해당 물질은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수산화테트라메틸암모늄(TMAH)으로 추정됐지만, 1차 성분 측정에서는 독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원인과 성분은 관계 당국의 조사를 통해 확인돼야 한다. 다만 TMAH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서 쓰이는 강알칼리성 물질로, 피부나 호흡기 접촉 시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고위험 화학물질이다. 작은 노출 가능성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SK하이닉스 청주공장
SK하이닉스 청주공장



문제는 이번 사고가 단발성 사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에서는 최근 불소 누출, 설비 화재, 인산 접촉 사고 등 안전사고가 잇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두 번의 우연한 사고라면 개별 현장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된다면 안전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


이는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도 폭발 사고로 근로자들이 숨지거나 다쳤다. 이 사업장은 2018년과 2019년에도 폭발 사고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다. 사고 직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애도와 사과의 뜻을 밝히고 그룹 차원의 안전관리 체계 전면 점검을 약속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사고 앞에서 국민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반도체와 방산은 대한민국의 대표 전략산업이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하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방산 수출의 핵심 기업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국가 전략산업의 현장에서 사고가 반복된다면 산업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첨단산업이라고 하면 AI와 로봇, 반도체와 우주산업 같은 화려한 미래 기술을 떠올린다. 하지만 첨단산업은 동시에 위험 산업이기도 하다. 반도체 공장은 다양한 화학물질을 다루고, 방산 공장은 화약과 추진체, 고압 설비를 취급한다. 산업이 첨단화될수록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의 성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최근의 생산 환경이다. AI 수요 확대로 반도체 투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글로벌 지정학 불안으로 방산 수주도 확대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확대와 납기 준수가 절실하다. 그러나 생산 속도가 안전 점검 속도를 앞질러서는 안 된다. 수주와 생산이 늘어날수록 안전 투자는 더 앞서가야 한다.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현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생산성과 납기, 비용 절감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안전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은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을 최우선 가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안전경영은 사고 이후의 사과문이 아니라 사고 이전의 예방 투자에서 드러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생산설비 확충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안전 인력, 보호장비, 위험물 관리 시스템, 비상대응 훈련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해서는 안 된다.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뿐 아니라 생산 차질, 기업 신뢰 훼손, 국가 산업 이미지 손상까지 이어진다. 결국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가장 비싼 비용이 된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기업들은 생산성 혁명을 말한다. AI가 개발 속도를 높이고 로봇이 생산 효율을 끌어올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전해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기술을 위해 희생돼서는 안 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 당국은 사고 이후 특별감독과 합동조사에 나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반도체와 방산, 배터리 등 국가 전략산업에 대해서는 상시적인 예방 중심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생산량 증가와 신규 투자 계획까지 고려한 선제적 점검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안전을 ESG 보고서의 한 항목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최고경영자 성과 평가에 안전 지표를 반영하고, 생산 목표만큼 안전 목표를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현장 노동자가 위험을 느끼면 즉시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한도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방산 강국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강국은 기술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 문화를 갖춰야 한다.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기본은 생명이다. 원칙은 안전이다. 상식은 아무리 중요한 산업이라도 사람의 목숨보다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화에어로 사고에 이어 SK하이닉스 사고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더 이상 우연으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가장 큰 적은 해외 경쟁사가 아니라 안전을 비용으로 여기는 낡은 인식일 수 있다. 이제 생산성만큼 안전성을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 대한민국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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